남공심돈과 남수문 사이 성은 왜 이 모양일까?
화성은 1970년대 후반 대대적 복원공사를 거쳐 성역 당시의 전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복원되지 않은 구간은 남은구에서 남수문까지 평지남성 구간이다. 복원될 시설물은 남은구, 남서적대,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 5곳이다.
현재 수원 특례시에서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팔달문에서 남수문까지 구간에 대한 복원에 기대가 크고 복원을 끝내면 화성은 지금보다 수십 배 가치가 될 것이다. 가치가 높은 만큼 복원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남서적대, 남동적대, 남암문, 남공심돈은 팔달문을 기준으로 각각의 기준 높이 레벨(Level)을 원형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높이 자체가 그 시설물의 목적과 기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높이가 맞지 않으면 시설물 개념이 손상된다. 원형보다 더 높거나 더 낮게 복원된다면 해당 공간의 개념과 전략적 가치가 훼손(毁損)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남공심돈에서 남수문까지 성벽 구간은 성의 노선(루트)을 원형대로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구간의 모습은 화성 전체에서 매우 특이하다. 남공심돈에서 90도로 꺾이고, 짧은 구간임에도 여러번 굴절되기 때문이다.
유구(遺構)가 잘 남아있기에 문제는 안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원형과 다른 노선(路線)이나 다른 모양으로 복원된다면 이곳 성의 전략적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남공심돈에서 남수문 사이 성(城)은 왜 이 모양일까?
사연을 살펴보자.
성의 노선은 지형지세와 양쪽 시설물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남공심돈과 남수문 위치가 왜 이 위치여야 했는가를 살펴보면 이유가 나올 것이다.
수문(水門)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원천 위에 설치되어야 한다. 수원천 주변은 북수문에서 구천까지 모두 평지다. 오로지 현재 남수문 동쪽에만 산이 있다. 일자사(一字砂)가 시작되는 곳이다. 일자사란 동남각루부터 창룡문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산을 말한다.
남수문과 일자사 사이 지형을 의궤에 "수문의 동쪽으로부터 다시 산상의 터로 접어드는데 그 형세가 자못 험난하다(而更起山之址 其勢頗峻)"라 설명하고 있다. 남수문 옆으로 산이 시작됨을 말해준다.
수문 위치는 옆에 이런 높은 지형을 꼭 끼고 있어야 한다. 방어가 아주 취약한 수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에 산상성은 최고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일자사 산 아래에 터를 잡은 것이다.
팔달문과 남수문 사이에 남공심돈을 배치하였다.
그런데 왜 남수문 쪽으로 치우쳐 배치했을까?
팔달문에는 이미 문루, 옹성, 그리고 좌우에 적대를 두어 공심돈까지는 필요 없다. 따라서 남수문 쪽으로 남공심돈을 배치하여 남수문과 남암문 방어를 맡긴 것이다. 평지를 감안하여 시설물 중 가장 높은 공심돈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남수문에서 앞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했을까?
남수문 앞쪽은 평지라서 방어 효과를 높여야 했다. 방법은 성의 길이를 길게 앞쪽으로 빼서, 마치 남수문 앞에 "악마의 목구멍"을 설치해 놓은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이 진입할 때 긴 진입거리로 인한 두려움을 적에게 주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진입한 적군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리하면, 왼쪽(동쪽)에서는 고저차(高低差)를 활용해 산상에서 적을 공격하고, 오른쪽(서쪽)에서는 긴 거리감(距里感)과 측면 방향성(方向性)을 이용해 진입을 저지하며 측면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 배치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수문과 남공심돈의 위치에 대한 선택이 그저 주장이 아님을 검증해 보자.
바로 화홍문, 즉 북수문(北水門)이 증명해 준다. 남수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남수문과 화홍문, 동남각루와 동북각루, 남공심돈과 북동포루가 서로 짝(매칭)을 이룬 형국이다.
화홍문은 북쪽 수원천에서 가장 높은 용두암(龍頭巖) 동북각루 아래에 배치하였고, 평지 쪽은 성을 앞으로 길게 빼서 북동포루를 배치하였다. 남수문도 남쪽 수원천에서 가장 높은 동남각루 아래에 배치했고, 평지 쪽은 성을 앞으로 길게 빼서 남공심돈을 배치했다. 판박이 배치다.
앞으로 뺀 거리(돌출거리)가 남수문이 80m, 화홍문이 조금 더 긴 110m가 되고, 남수문과 남공심돈, 그리고 북수문과 북동포루와 벌어진 전개 각도(展開角)는 남수문이 25도, 화홍문이 37도로 계산된다. 모두 100m 전후, 40도 미만이다.
화홍문에서도 오른쪽(동쪽)에는 높은 산상성에서 공격하고, 왼쪽(서쪽)은 앞으로 성을 길게 빼서 긴 진입 거리와 측면 공격으로 적을 저지할 수 있게 배치하였다. 이는 남수문 배치 전략이 한낱 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은 남공심돈에서 남수문까지의 특이한 성(城) 모양을 살펴보며 정조(正祖)의 "수문 사수전략(水門死守戰略)"을 엿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