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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Dec 22.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0

동북공심돈은 왜 원통형일까?

동북공심돈은 화성 유일의 원통형 모양이다. 왜 원통형으로 만들었을까?


동북공심돈은 왜 원통형일까?

화성에서 독특한 외형을 갖고 있는 시설물 중 으뜸은 동북공심돈이다. 국내 유일의 원통형으로 동북성 높은 터에 우뚝 서 화성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공심돈(空心墩)이란 무엇일까?


첫째, 치 위에 세운 2층 구조로 높이가 제일 높기 때문에 적을 두렵게 하는 적대(敵臺) 역할을 하고, 둘째, 건물 속을 비우고 대포로 무장하여 포루(砲樓)의 기능과 같고, 셋째, 맨 위층에 집을 지어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지휘부에 연락을 취할 수 있어 포루(舖樓)와 포사(舖舍)의 역할도 한다. 한마디로 다목적 전투시설이다.


오늘의 주제인 동북공심돈을 살펴보자.


우선 구조에 대해 알아보자. 의궤에 "벽돌로 쌓아서 동그랗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그란 형태(圓墩)이며, 내원과 외원의 두 겹(重匝) 구조임을 말하고 있다. 즉 구조로 보면 원돈(圓墩), 중잡(重匝)이 키워드다.   

공심돈은 건물 속을 비워 구멍을 내고 대포로 무장을 하여 포루(砲樓)의 기능도 하고, 적대나 척후의 역할도 한다.

다음으로 동북공심돈 터에 대해 살펴보자. 위치는 동북노대와 동장대 사이의 90도로 꺾이는 곳이고, 성 밖으로 둥글게 지형이 돌출되었다. 주변보다 완연히 높은 위치이다. 성 밖 맞은편에는 높이가 거의 맞먹는 산이 버티고 있다. 


의궤에 "성탁의 위, 성가퀴 안에 동북공심돈을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탁(城托)"이란 표현은 여기에만 나오는 유일한 용어다. 성탁이란 "성이 터를 민다"라는 의미로, 너른 터가 3면의 성에 의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위치로 보면 "성탁 위, 성탁지상(城托之上)"과 "여장 안, 여장지내(女墻之內)"가 키워드다.

동북공심돈은 성 밖 쪽으로 돌출된 터 안과 여장 안에 지었다. 사진은 동북노대에서 본 모습으로 튀어나간 상태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동북공심돈만 원형 평면으로 하였을까?


공심돈은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동북공심돈 순으로 준공되었다. 남공심돈은 유효 면적이 매우 작고, 포혈도 없고, 사다리의 급한 경사로 위아래의 이동이 위험하여, 총체적으로 척후와 방어에 실패작이라고 이미 필자가 발표한 바 있다. 


서북공심돈은 남공심돈의 실패한 부분을 대부분 개선하였다. 하지만 사각형 평면의 한계 때문에 몇몇 문제점은 존재한다.


동북공심돈은 성탁(城托) 위에 원돈(圓墩)으로 만든 가장 현대화된 공심돈이다. 서북공심돈이 지닌 한계까지도 완전히 극복하였다. 이처럼 공심돈은 건설하면서 점차 진화한 것이다. 그것도 화성에서.

서북공심돈은 남공심돈의 실패를 거울삼아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사각형 평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원형 평면의 장점은 무엇일까?

왜 동북공심돈만 원형일까에 대한 답은사각형과 비교해 원형의 장점을 찾으면 된다. 장점을 찾으려면 형식상 차이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형식은 기능을 지배한다. 


차이점은 다음 2가지로 파악된다. 첫 번째 차이는 서북공심돈은 사각형 평면인데 반해 동북공심돈은 원형 평면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차이는 서북공심돈은 성 밖으로 돌출시킨 인공으로 만든 치(雉) 위에 지었으나, 동북공심돈은 자연 그대로의 땅 위에 바로 지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동그란 형태인 점(圓墩), 내원과 외원의 두 겹 구조인 점(重匝), 성탁 위에 지은 점(城托之上)이다. 

동북공심돈은 그냥 원통형이 아니라 외원(外圓)과 내원(內圓)의 두 겹 구조이다. 사진의 좌측이 외원이고 우측이 내원이다.

원돈(圓墩), 중잡(重匝), 성탁(城托) 별로 장점을 살펴보자.


첫째, 동그란 원돈(圓墩)과 사각돈(四角墩)은 무엇이 다를까?

서북공심돈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속이 빈 사각형이기 때문에 벽돌 벽체가 두꺼울 수밖에 없고, 두꺼운 벽체에다 정면과 측면이 만나는 각(角)이 진 코너 때문에 감시 사각(死角)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원통형은 어느 부분에도 감시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고, 360도 전 방향에 대해 맞춤 대응이 자유롭다. 적이 있을 맞은편 산의 높이와 좌우 범위에 대응하는데 최적의 평면이며 입면이다. 원형 평면은 사용 유효면적이 넓어져 포혈의 수를 충분히, 그리고 필요한 위치에 자유롭게 설치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맞은편 적군의 위치에 맞춤형이다.

서북공심돈의 평면이다. 코너 부분에 감시 사각지대가 생긴다. 코너의 각(角)을 둥글게 한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둘째, 중잡(重匝)구조는 공심(空心)구조와 무엇이 다를까?

동북공심돈은 내원과 외원의 이중 구조이다. 2겹인 중잡(重匝)구조는 가운데가 온통 빈 공심(空心)구조보다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하나는, 공심인 1겹보다 2겹이 곡선구조에 유리하다. 1겹은 내부에 지지체가 없는 공심(空心)으로 벽체가 두껍게 되어 곡선 구조에 불리하다. 2겹인 경우 내원이 지지체 역할을 하여 구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므로 곡선 구조와 높이 조절에 유리하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 평면은 포혈의 위치와 수량 계획에 자유스럽다.


다른 하나는, 두 개의 원 사이를 활용하여 경사진 바닥 판(개판, 蓋板)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로는 첨단인 경사로 램프(Ramp)가 된 것이다. 경사로를 이용하여 병사는 물론 포탄 등 물자의 이동도 안전하고 신속해졌다. 반면에 사각형 평면에서는 경사가 급한 나무 사닥다리를 이용해 늘 위험하고 이동이 신속하지도 못했다.

동북공심돈은 두 겹 구조로 그 사이에 경사로를 만들어 상하 이동에 사용했다. 급한 경사의 나무 사다리보다 안전하고 신속하다. 

셋째, "성탁(城托)"과 "치성(雉城)" 위에 지은 것은 무엇이 다를까?

"성탁 위"이란 입지가 아니었더라면 화성에 원형 동북공심돈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남공심돈과 서북공심돈은 원성에서 성 밖으로 돌출된 치(雉)를 먼저 먼든 후 그 위에 설치했으므로 공사기간, 공사비 등이 더 투입되었다. 무엇보다 인공적으로 만든 치에는 평면 형태, 평면 크기, 높이에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동북공심돈은 돌출된 성탁 위의 너른 터이기에 평면과 높이를 마음껏 선택할 수가 있었다. 동북공심돈이 획기적인 원통형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은 "성탁(城托) 위"라는 터에 있었다. 치가 필요하지 않음으로 많은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것은 그저 부차적인 혜택이었을 뿐이다.  

"성탁" 위에 지을 수 있었기에 원형 평면이 가능했다. 원형 평면이라서 맞은편에 있을 적군에 맞춤 대응이 가능했다.

결론은 사각형 평면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구상한 결과물이 원통형 공심돈이었다. 또한 맞은편 산 위의 적군에 대응할 최적의 형태가 원통형 구조이었다. 맞은편 산의 위아래와 산의 좌우에 있을 적군의 위치를 반영하여 방어 목표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원통형 동북공심돈이 태어난 것이다.


필자는 "중국 계성(葪城)의 평돈(平墩)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의궤의 내용에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계성의 평돈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중국 평돈이 원통형일까? 경사로가 있을까? 확인해 보고 싶다. 만약 중국 평돈이 원형 평면이 아니라면, 경사로가 없다면 원통형 공심돈은 화성의 동북공심돈이 원조가 된다.  

남공심돈은 몰라도 동북공심돈이 "중국 계성의 평돈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기록에 강한 의문이 있다. 원통형 동북공심돈은 화성에서 개선의 결과이다. 

필자는 남공심돈은 중국의 제도를 충실히 따른 공심돈이라고 이미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남공심돈의 실패를 서북공심돈에서 대폭 개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동북공심돈에서 마주하는 산 위의 적군에 가장 알맞은 맞춤형으로 원통형 공심돈을 창조한 것이다. 개선이 아니다.


요구에 최적화하고, 아름다운 외형으로 화성 심벌의 모티브가 된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의 원형 평면에서 정조(正祖)의 혁신(Innovation)과 독창성(Ingenuity)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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