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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Dec 15.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29

동장대에 하마석(下馬石)은 몇 개일까?

화성의 시설물 중 하마석은 유일하게 동장대에만 있다. 과연 몇 개일까?


동장대에 하마석(下馬石)은 몇 개일까?

화성의 시설물 중 동장대가 가장 규모가 크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복원이 잘못된 것도, 연구할 과제도, 자랑거리도 시설물 중 챔피언이다. 원래 동장대의 자랑거리는 기죽석, 와장대, 문석대, 영롱장, 조장(操場) 등이 있는데 복원이 잘못되어 너무 아쉽다.


이 중 와장대(臥長臺)는 조선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말을 타고 하대(下臺)에서 중대(中臺)까지 직접 오를 수 있게 만든 길로, 지금으로 말하면 경사로, 즉 램프(Ramp)이다. 원래 와장대는 계단이나 경사로 옆에 경사지게 설치한 돌의 명칭이다.

말을 타고 오르는 와장대 아래에도 좌우로 하마석이 붙어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하마석일까?

와장대가 있기 때문에 말을 타고 오르고, 말에서 내리는데 필요한 하마석(下馬石)이란 시설물이 동장대에 있다. 동장대에 하마석은 모두 3개로 하대의 와장대 아래 양쪽에 각각 1개씩 2개, 그리고 중대에서 상대(上臺)로 오르는 3칸 돌계단의 아래쪽 정 중앙에 1개가 박혀있다. 하마석은 화성에서 유일하게 동장대에만 있다.


그런데 정작 의궤 도설(圖說) 동장대도(圖)에는 하마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설명(說)에도 마찬가지로 "중대에서 위로 오르는 곳에 3칸의 보석(步石)이 있는데 각각 6 층계씩이다"만 기록되어 있다. 그림(圖)에도 안 보이고 설명(說)에도 하마석에 대한 언급이 없다.

유일하게 하마석을 지닌 동장대는 장수가 전투나 평시 훈련을 지휘하던 곳이다

하마석의 원래 명칭은 노대석(路臺石)이고, 우리말로는 노둣돌이라 부른다. 말에서 내릴 때 밟는 용도라서 "하마(下馬)"란 단어를 붙여 "하마석"이라 부르는 것 같다. 도(圖)와 설(說)에 없고 실제로 있다면 복원 시 현장에 이런 형태의 돌이 발굴되어 이를 설치했거나, 아니면 후대에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 5 재용(財用) "실입(實入)" 중 동장대 투입 자재 목록에 "노대석 1 덩이"가 기록되어 있다. 의궤에서 재용(財用)이란 성역에 투입된 모든 자원에 대한 총체적 경영을 말하고, 그중 실입(實入)이란 실제로 사용된 자원을 말한다. 도설(圖說)과 실입(實入)에 차이가 있을 때 실입이 우선한다고 보면 된다.

중대에서 상대로 오르는 돌계단 정 중앙에 박힌 돌덩이가 하마석이다. 말에서 내리는 장수나 전령이 발을 딛는 곳이다.

정리하면 성역 당시 동장대에 노대석 1 덩이가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도설"보다 "실입"이 우선함으로 노대석은 동장대 그림에서 누락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의궤는 논리적이고 일관된 기록을 보이고 있으나, 이 경우 아쉬운 케이스다.


그러면 하대에서 중대로 오르는 경사로가 시작되는 곳 양쪽에 있는 2개의 하마석은 어찌 된 것일까? 이곳의 하마석 2개는 그림(圖)에도, 설명(說)에도, 실입(實入)에도 기록이 없다. 만일 하마석이라면 중대의 하마석은 장수나 긴급한 전령이, 하대의 하마석은 장수 아래의 장교가 이용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실입에는 동장대에 하마석 즉 노대석 1덩이가 투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역의궤나 한글본 정리의궤의 도설 어디에도 하마석은 보이지 않는 다.

하지만 상상일 뿐이다. 하대의 2개 돌은 하마석이 아니고, 우석(隅石)이라 부른다. 우석은 돌계단 보석(步石)이나 돌층계 석제(石梯)의 와장대 끝에 붙는 돌로, 경사져 흘러내리는 와장대를 끝부분에서 흐름을 막아주는 디자인 요소가 있는 부재이다.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의 돌층계 끝에도 붙어 있다.


정리해보면 동장대에는 화성에서 유일한 하마석(下馬石) 즉 노대석(路臺石)이 단 1개로 성역 당시부터 있었음이 밝혀졌다. 중대에서 상대를 오르는 웅장한 3칸 돌계단 보석(步石)의 정 가운데에 있다. 하대의 와장대 끝에 붙은 돌은 하마석이 아니고 우석(隅石)이다.  


"하마(下馬)"라는 이름을 붙인 돌로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더 이상 말을 타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이다. 화성행궁 입구 석교 앞에 세워져 있다. 하마비는 아니지만 절에도 이와 유사한 시설물이 있다. 수원 용주사에도 있다. 


절의 입구에 큰 돌이나 일주문 주련으로 되어 있다.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는 글이다. "이 문에 들어서면 모든 지식(知解)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핵석된다. 왕(권력) 앞에서는 말에서 내리고, 부처 앞에서는 세상 지식을 내려놔야 한다.    

하대의 와장대(臥長臺) 아래에 박은 돌은 하마석이 아니고 우석(隅石)이다.

동장대 하마석은 왕(王)을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니다. 전쟁 시 급히 달려오는 전령(傳令)과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를 위해 설치한 하마석이다. 동장대 하마석(下馬石)에서 정조(正祖)의 "전쟁 우선 시설"과 "부하 사랑"을 동시에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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