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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ug 22.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

1,000보(步) 늘어난 공사비는 어디서 조달했을까?

건설공사는 공사 중 필요에 의해 당초 계획보다 공사비가 늘어날 수 있다. 이를 흔히 "설계변경(設計變更)"이라 말한다. 화성 성역(城役)에서는 설계변경이 얼마나 있었을까?


1,000보 늘어난 공사비는 어디서 조달했을까?


건설공사에서 "설계변경(設計變更)"이란 용어를 많이 쓴다. "설계변경"이란 원래 "설계변경에 의한 계약금액의 조정"을 줄여서 쓰는 말이다. 계약금액의 조정이란 당초 계약한 공사비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말한다.


화성 공사에서도 설계변경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화성 건설에 든 공사비를 발표한 사람은 있었지만, 예산보다 늘어난 공사비를 언급한 문헌은 보지 못했다. 최초의 탐구를 시작해보자.


의궤(儀軌)에 보면 투입된 공사비의 기록은 있으나, 예산서는 없어 얼마에서 얼마로 얼마만큼 변경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변경의 큰 흐름을 파악할 단초를 찾아보자. 단서는 "어제 성화 주략(御製城華籌略)"이다.

"어제 성화 주략(御製城華籌略)"의 푼수(分數)는 성(城)의 전체 규모를 먼저 정하고, 투입되는 자재, 인력, 공사기간, 공사비 등의 기준을 삼으려 한 것이다.  

"어제 성화 주략"은 정조의 지시에 의해 정약용이 만들고 정조가 발표한 화성 건설의 기본계획이다. 내용은 8개 항목으로 푼수(分數), 재료(材料), 호참(濠塹), 터 쌓기(築基), 돌 뜨기(伐石), 길 내기(治道), 수레 만들기(造車), 성의 제도(城制)로 각각의 계획과 전략을 담았다.


이 중 첫 번째 푼수(分數)는 성의 전체 규모를 먼저 정하고, 이 규모를 기준으로 삼아 투입되는 자재, 인력, 공사기간, 공사비 등을 실행하려 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둘레가 곡성(曲城)을 포함하여 약 3,600보(步) 라야 겨우 계획한 바에 들어맞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당초 화성의 규모는 총 둘레 3,600보를 계획한 것이다. 

시설의 현대화, 백성의 민원해결로 당초 계획보다 1,000보의 성이 늘어나게 되었다. 정조는 어떻게 반대파를 설득하고, 어떻게 추가 자금을 확보했을까? 

그런데 실제 공사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儀軌) 도설(圖說)의 "성지전국(城之全局)"에 보면 "둘레의 통계가 27,600척이므로 4,600보가 되는 셈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두 곳의 기록이 보여주는 것은 화성 건설의 최초 계획은 3,600보(步)이었으나, 실제로 건설한 화성은 4,600 보(步)라는 의미이다.


이 두 사실을 비교해 보면 공사량은 1,000보가 증가했고, 비율로는 계획 대비 128%이다. 이 수치는 지금으로 봐도 엄청난 공사범위의 변경이다. 여기에 정조는 두 가지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하나는 화성 건설 반대파에게 공사비 증가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고, 다른 하나는 늘어난 공사비를 어디서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가의 실질적 어려움이다. 화성 공사 시작 전 정조가 갖고 있던 2가지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막대한 돌을 어디서 조달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공사비를 어디서 조달하느냐? 였다.  

예산은 3,600보의 성(城) 길이인데, 실제로는 4,600보를 집행했다. 지금으로 보아도 엄청난 예산과 계약의 증가다. 정조의 복안(腹案)은 무엇일까?

정조의 복안(腹案)은 무엇일까? 아마 꼭 필요한 공사는 늘리되 당초의 의도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대안을 정조는 마련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사량은 늘리되, 공사비와 공사기간은 늘어나지 않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정조는 "성의 높이(城之高)"를 눈여겨봤다. 화성은 평지성(平地城)과 산상성(山上城)으로 나뉜다. 평지성은 1,356보 5척, 산상성은 3,243보 1척으로, 비율로 보면 평지성 대 산상성은 30% 대 70%이다. 이처럼 화성은 산상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성 높이는 성 밖의 지형지세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성의 높이를 조정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화성은 70%가 산상성이다. 성 높이는 성 밖의 지형지세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을 파악하고, 이를 분석하여 대안을 찾아보았다.

당초 계획은 성 높이를 일률적으로 2장 5척으로 삼았다. 권일 어제성화주략 푼수(分數)에 "그 높이는 약 2장 5척으로 넘어오지 못할 정도이다(其崇約二丈五尺 可無踰越) 대체로 석재 및 공역에 든 비용은 모두 이것을 기준으로 삼는다(以此爲準)"라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실제 공사한 기록을 보면 "성의 높이는 2장이 기준인데 산상에서는 그 5분의 1을 감(減)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실제로는 평지성에서 2장으로, 산상성에서 5분의 1을 줄인 1장 6척으로 당초 계획 높이보다 낮추어 시공한 것이다.


그러면 공사비로 보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공사비는 성(城)의 면적에 따라 다르다. 성의 면적은 길이 곱하기 높이로 계산된다. 먼저 성의 길이가 증가했으므로 증가를 계산하면 계획 3,600보에서 실제 4,600보로 늘렸으므로 당초 대비 128%이다. 공사비 증가다.

산상성은 적에게 불리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이라 평지성보다 높이를 5분의 1을 줄였다. 사진은 산상(山上) 서성(西城)으로 성 밖 경사가 심하다

다음으로 성의 높이를 낮추었으므로 발생한 감소를 계산하면 계획 높이 2장 5척에서 실제로 평지성은 2장(20척)으로, 산상성은 1장 6척(16척)으로 낮추었으므로 등가(等價) 평균 높이 17척 2촌으로 당초 대비 69%가 된다. 이 부분은 공사비 감소다. 등가 평균 높이란 평지성 30%와 산상성 70%를 감안한 전체 평균 높이를 말한다.


공사비는 길이와 높이를 곱한 면적에 영향을 받으므로, 이 두 가지의 증감을 모두 반영하면 전체 공사비의 증감이 나온다. 길이 변경 128% x 높이 변경 69% = 면적 변경 88%가 된다. 즉, 전체 공사비는 당초 계획의 88%이고, 순 12% 감소한 결과가 나온다.

성의 길이는 늘었으나 높이를 줄여 전체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줄이는 결과를 얻었다. 반대파에게 공사 중단 빌미를 주게 될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역전(逆轉)시켰다

결론은, 필요에 의해 성의 길이를 28% 늘렸으나 높이를 조정하여 전체 공사비를 오히려 12% 낮춘 결과가 됐다. 결과적으로 공사비가 늘지 않아 반대파에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고, 공사비 증가에 따른 추가 자금조달도 없었다. 오히려 정조는 절약된 예산을 동북공심돈처럼 시설물을 업 그레이드 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백성의 민가를 최소한으로 철거하고, 수원이 확장될 미래를 계산하여 화성의 길이가 계획보다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공사비를 성의 높이를 지형에 맞게 조정하여 공사비가 늘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는 정조의 경영능력을 모르는 경우의 얘기다.


필자는 정조가 이미 성의 높이를 2장으로 할 것을 착수 전부터 알면서도, 성의 높이를 일률적으로 2장 5척으로 계획했다고 판단한다. 이유는 2장 5척은 8미터 높이로 성으로는 당시 조선에서 매우 높은 계획이었다. 특히 산상성에서 8미터는 상상이 안 되는 높이다. 내탁(內托)에 필요한 흙의 량이 어마어마하다. 흙 량이 문제가 아니라 산에서 흙을 구해 운반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페루 쿠스코의 12각 돌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관광객은 누구나 보러 온다. 앞 쪽에 실은 "화성의 16각 돌"이 더 아름답다

공사 중 공사비는 항상 늘어난다는 건설공사의 특성을 이미 간파하고, 여분의 비상금을 성 높이에 숨겨둔 것이다. 바로 정조의 컨틴젠시 플랜(Contingency Plan)이다. 위험요소에 대한 대비책이다. 비상금은 얼마만큼일까? 2장 5척과 2장의 차이만큼인 총공사비의 25%를 비축(秘蓄)한 것이다. 비축(備蓄)이 아니다.  


방어력 향상, 백성의 애로 해결, 수원의 확장성 대비 등으로 공사량인 화성(華城)의 길이가 1,000보가 늘어났으나, 오히려 성 높이를 조정하여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절약한 정조(正祖)의 지혜와 가치경영(價値經營)을 엿보았다. 조선 최초이자 최후의 밸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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