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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ug 22. 2020

3 동북포루를 왜 각건대라 부를까?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

용연과 방화수류정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동북포루에 특별히 각건대란 고유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동북포루를 뢔 각건대라 부를까? 사진은 각건대 야경이다.


동북포루를 왜 각건대(角巾臺)라 부를까?


동북포루(東北舖樓)는 방화수류정, 화홍문, 용연, 북암문과 이웃하고 있다. 이 일대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하나의 시설물도 아름답고 독특하지만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를 이루어 화성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동북포루는 별칭으로 각건대(角巾臺)라 불린다. 별칭(別稱)이란 별도로 고유의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중요한 건물, 아름다운 건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건물에 부여한다. 화성에서는 4 대문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화양루, 그리고 각건대로 8개뿐이다.


동북포루를 왜 각건대(角巾臺)라 불렀을까?  

동북포루의 별칭이 된 각건의 모습으로 선비가 머리에 쓰던 각(角)이 진 관(冠)에서 각건(角巾)이라 하였다 

동북포루의 상량문에 "사안(謝安)이 동산을 세운 뜻을 따서 이름을 각건이라 지었네"란 기록이 있다. 사안은 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재상으로 은자(隱者)로 지내다가 동산에서 새롭게 출발해 재기한 인물이다.


또한 각건(角巾)은 모시나 베로 만든 머리에 쓰는 것으로 각(角)이 잡힌 관(冠)을 말한다. 이를 보아 은자가 쓰던 각건과 동북포루의 형태가 유사해 별칭을 정한 것으로 여러 자료에서 말한다. 문제는 여러 방문자들이 "동북포루 모습이 각건의 모양과 다르다"라고 지적하는 데 있다.


각건대 모습이 각건 모양과 왜 다르게 보일까? 

방화수류정, 용연, 북암문, 각건대가 조화를 이루어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동북포루를 보는 곳은 주로 방화수류정, 용연, 그리고 동암문 쪽에서 보는 모습일 것이다. 시점(視點)이 다르니 달리 보일 것 같지만 언덕 위에 우뚝 선 모습은 어느 시점이나 유사하다. 각건으로 안 보이는 이유는 시점이 아니라 대상(對象)에 있다.


사람이 동북포루를 볼 때 포루(舖樓)로 보느냐 대(臺)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같은 동북포루가 두 개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고 집을 포함해서 보면 포루이고, 집이 없는 상태에서 보면 대라는 의미이다. 아무 곳에나 서서 갖고 간 각건 그림을 먼저 보고, 다음에 동북포루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포루에서 집을 지우면 각건의 모습과 유사하게 보일 것이다.  

성 안에서 본 각건대 모습으로 높은 산 위에 위치하여 방화수류정과 동암문을 좌우로 두고 방어해준다

근거도 있다. 하나는 "각건대"라는 명칭 자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만일 집을 포함한 모습을 보고 각건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이름을 "각건대(臺)"로 짓지 않고 "각건루(樓)"로 지었을 것이다. 집이 없는 "대(臺)"를 본 모습이 각건의 모습이라는 증거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동북포루가 처음에는 동산루(東山樓)였다가 각건대 상량문을 지어 올린 시점부터 "각건대(角巾臺)"라 불리게 되었다. 상량문은 완공 후 6개월이 지난 병진년 11월에 예문관제학 김재찬(金載瓚)이 이어 올렸다. "동산루"도 사안(謝安)의 동산(東山)에서 나온 이름으로, "특별히 작은 누(樓)를 동쪽에 두었다"란 내용을 보면 완성된 누(樓)를 보며 "동산루"라 한 것이다. 만일 대(臺)를 보고 이름을 지었다면 "동산대(東山臺)"라 하였을 것이다.


각건대는 누가 아닌 "높은 대(臺)"와 "대(臺) 위에 평평하게 넓은 창해를 바라보니"란 상량문의 내용처럼 대(臺)를 본 모습을 말한다. 누(樓)만 보는 관점과 대(臺)와 함께 그 아래 높은 지형 전체를 보는 관점의 차이다. 

동암문 쪽에서 본 새벽안갯 속 각건대로 노송이 늘 지켜주고 있다

각건대가 각건을 닮았는지 아닌지 문제보다 더 큰 이슈는 화성 시설물 중 위계(位階)가 한참 뒤인 포루(舖樓) 에 왜 이름을 별도로 부여했을까? 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학자, 소설가, 예술가, 건축가, 인문학자 등이 해석하는 내용은 각자의 전공(專攻) 속을 맴돈다. 정조(正祖)의 생각을 알고 싶다. 


화성은 본래 전투시설이므로 전략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위치에 세웠으므로 별칭을 주었을까? 아니면 포루를 세웠지만 각루급(角樓級) 이상의 건물을 세울 자리라서 역할에 부담을 주려고 별칭을 주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방화수류정, 용연, 각건대의 아름다움을 찍은 적외선 사진으로, 녹색이 희게, 하늘과 물이 검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하찮은 포루에 위계를 뛰어넘어 그 쓰임새를 인정하고 별칭을 지어준 각건대(角巾臺)에서 정조(正祖)의 실용정신과 균형감각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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