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웅 Aug 22. 2020

2 화성 길이는 얼마일까?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2

수원 화성의 성(城)에서 서북각루(西北角樓)에서 서1치(西一雉)까지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같은 성이라도 서북각루 앞의 돌출한 성은 원성(元城)이고, 서1치의 돌출한 성은 곡성(曲城)이다. 원성과 곡성의 개념은 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화성의 길이는 과연 얼마일까? 


사람들은 성(城)을 말할 때면 어디?라는 장소와, 얼마?라는 규모를 먼저 궁금해한다. 아마 성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빙 둘러싼 모양이라 그런가 보다. 화성도 예외는 아니다. 안내 책자나 문화해설사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성의 길이는 과연 얼마일까?


"과연"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수많은 화성의 안내문이나 자료에 일치하는 수치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해 보자.


화성의 길이에 대해 의궤(儀軌)에 수치가 나오는 것은 권수(卷首) 도설(圖說) "성지전국(城之全局)"으로, "둘레의 통계(通計周圍)가 27,600척(尺)이므로 4,600보(步)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네 군데 옹성의 둘레(四甕城之周)는 163보이다. 용도의 둘레(甬道之周)는 367보이다"라고 기록됐다. 화성의 규모에 대한 매우 중요한 근거이다. 길이에 대한 용어로 "주위(周圍)" 또는 "주(周)"를 사용한 것을 보면, 처음 얘기란 "빙 둘러싼 모양"의 "둘레"와 일치한다.

화성 전도(華城全圖)를 단순화시킨 안내도이다. 성(城)이라서 빙 둘러싼 모양을 하고 있다. 의궤에도 "둘레"란 의미의 "주위(周圍)" 또는 "주(周)"란 용어를 사용했다

화성 길이는 의궤를 기준으로 성(城)은 4,600보, 옹성(甕城)은 163보, 용도(甬道)는 367보이다. 성의 길이 4,600보는 시설물 간 거리 인 원성(元城)과 시설물을 형성하는 곡성(曲城)의 길이를 합(合)한 길이이다. "화성의 길이는 얼마입니까?"에 대한 답은 "4,600보"로 하면 된다. 옹성과 용도를 빼도 문제가 안 될까?


용도(甬道)는 성이 아니기 때문에 성의 길이에 포함시키면 안 되고, 별도로 언급하는 것이 맞다. 옹성(甕城)은 문의 외성(外城)으로 원성도 곡성도 아니다. 문의 길이는 곡성(曲城)으로 이미 성의 길이에 포함되어 있다. 의궤에도 옹성의 길이를 성의 길이와 분리해 기록하고 있으므로 옹성 또한 별도로 언급하는 것이 맞다.


장안문을 예로 들어보자. 장안문은 곡성으로 길이가 26보이고, 장안문의 외성(外城)인 북옹성은 길이가 55보이다. 성의 길이 4,600보에 26보는 이미 포함된 수치이므로, 북옹성 55보는 별도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의궤에도 별도로 언급했다.

용도(甬道)의 3면 길이는 367보이다. 이 길이는 화성 길이 4,600보와 별도다. 이유는 용도는 3면이 여장인 길(道)로 성(城)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4,600보는 몇 km입니까?"란 질문이 바로 나온다. 누구나 언뜻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단위(單位)가 "보(步)"이기 때문이다. 매우 생소한 단위로 환산이 문제다. km로 환산하려면 1척(尺)이 몇 m인지를 알아야 한다. 환산 기준이 기록에 없다. 당시엔 미터법 자체가 없었으니 당연하다.


필자는 "화성에 한하여" 1 영조척(營造尺)을 310mm로 사용한다. 합당한 근거도 있다. 이 값은 화성을 대규모로 복원할 당시, 유효한 유구(遺構)를 측정한 후 의궤와 비교하여 만든 값으로, 당시 전문가와 정부가 310mm로 정해 사용한 값이다. 즉, "수원성 복원 정화사업 복원용척(復元用尺)"이다. 


최소한 정부가 사용한 수치이다. "화성에 한하여"라 한 것은 다른 유적의 경우 복원용척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유효한 유구"란 전쟁, 파괴 등의 유적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겪었어도 당초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문(門)의 성 밖 쪽으로 반원형으로 나온 옹성(甕城)은 원성도 곡성도 아니다. 별도로 "화성의 옹성은 163보"라고 언급하면 된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을 해 보자. 우선 보(步) 단위를 척(尺) 단위로 바꾸어보자. 보(步)에 대해 의궤에 "주척(周尺)으로 따져서 6척이 1보가 되고, 영조척(營造尺)으로 따져서는 3척 8촌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4,600보(步)는 주척(周尺)으로 27,600척이고, 영조척으로 17,480척이 된다.


주척(周尺)은 중국 "주례(周禮)"에 규정된 단위라 한다. 영조척(營造尺)은 성역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척도의 하나로 건물 짓기, 성 쌓기, 수레나 선박 제조에 사용해 "영조(營造)"를 붙인 것이다. 간혹 정조 할아버지 영조(英祖)가 만든 척도라 말하시는 분도 계신다. 재미있는 분이다. 1 영조척의 복원용척인 310mm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화성 전체 길이는 5,419m 즉 5.4km이다. 

화홍문에서 화서문까지 평지북성의 모습이 경관조명으로 확연히 보인다. 화성 전체의 성의 길이는 4,600보로, 5.4km이다.

필자는 환산 값을 확인차 장안문 홍예의 선단석(扇單石) 간 거리를 실측했다. 실측 빈도는 수직으로 바닥면과 만나는 위치와 허리 위치 2군데, 수평으로는 같은 선단석을 2군데 실측하였다. 실측 장비는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측정단위는 1mm까지다. 선단석은 홍예에서 땅과 만나는 맨 아래부터 2 내지 3단 쌓은 큰 돌을 말한다.


측정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유는 돌(石)이라는 재료와 가공 특성상 같은 부재라도 표면에 좁쌀 크기 1mm 정도의 구멍이 무수히 많았고, 같은 돌 한 덩이도 정밀하게 보면 평면이 아니다. 정확하다 해도 인증이 안 된다. 수많은 곳을 실측해 평균을 냈다 해도 기준(基準)은 될 수 없다. 장안문 홍예 너비 18척 2촌(5,6m)을 실측할 경우, 누가 실측해도 플러스 마이너스 1mm 차이다.

필자가 장안문 홍예 너비를 실측해 보았다. 돌(石)이라는 자재의 특성상 차이 발생은 당연하다. 평균치는 근사치일 뿐 기준은 아니다.

결론으로 첫째, 범위를 보면 화성(華城)의 길이는 성, 옹성, 용도 중에서 성(城)의 길이, 즉 원성 길이와 곡성 길이의 합계를 말하며 4,600보이다. 둘째, 환산 값을 보면 화성에서는 미터로의 환산은 1 영조척이 310mm이며, 이 값은 "수원성 복원 정화사업 복원용척(復元用尺)"으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화성에서 성의 길이는 4,600보(步)이고, 미터법으로는 5.4km이다.


하지만 이보다 길이에 대한 정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4,600보, 163보, 367보의 측정 기준은 무엇일까? 성 안에서 잰 것일까? 성 바깥에서 잰 것일까? 여장의 중심선을 잰 것일까? 또한 같은 위치라도 바닥에서 잰 것일까? 허리춤에서 잰 것일까? 가슴높이 일까? 미석(眉石)이 기준일까? 측정위치에 따른 길이 차이는 엄청나다. 이에 대한 답은 차후 관련 주제의 기사 중 자연스레 언급될 것이다.

수원 화성은 이제 전국의 젊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힐링 장소가 되었다.

기계로 깎거나 공장 제품도 아닌 산과 평야를 누비는 대규모 공사에서 모든 수치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화성성역(華城城役)에서 정조(正祖)의 정확한 성격을 엿보았다. 화성의 전체 길이조차 정의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1 수원 8경에 화성 시설물은 몇개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