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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Apr 05.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5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일까?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일까? 사진은 화서문의 서용성과 그 옆의 서북공심돈이다.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일까?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을 나서면 반원형 서옹성과 높은 서북공심돈이 보인다. 이 옹성과 공심돈을 보면 위에서 아래로 파여있는 긴 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안(懸眼)이라 부른다.


정약용의 "현안도설"에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의 부속 장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돌출된 치성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적병을 감시하는 것이 주기능이다.


그동안 필자는 "현안으로 어디까지 보일까?" "현안은 왜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만들었을까?" "현안으로 뜨거운 물이나 기름으로 공격했을까?"에 대해 이미 발표한 바 있다.

현안은 성 바로 밑에 도달한 적을 감시하는 장치라고 현안도설에서 그 기능을 말하고 있다.

오늘은 현안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답을 찾아보자.


정조는 성역을 시작하기 2년 반 전 정약용에게 성역에 필요한 기본계획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1년 반 후 다산은 성설(城說), 도설(圖說)을 완성한다. 성설은 성 쌓기에 대한 것이고, 도설은 옹성, 현안, 오성지, 거중기, 그리고 시설물에 대한 것이다.


현안은 의궤에 일체의 설명이 없어, 다산의 현안도설을 참고하여야 한다. 현안도설에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옹성과 모든 치성의 앞면에 현안을 각각 몇 개씩 설치합니다(甕城及諸雉城前面 各置眼幾箇)"이다.


간단명료하다. 현안을 설치할 시설물은 "옹성과 모든 치성(甕城及諸雉城)"이고, 설치 수량 기준은 "각각 몇 개씩(各置眼幾箇)"이다. 그리고 설치 위치는 "전면(前面)"이 된다. 

동북노대도 치성 위의 시설물이기 때문에 현안이 설치되어 있다. 현안은 옹성과 치성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실제로 따랐을까?


실제로 정약용의 제안을 철저하게 따랐다. "옹성과 모든 치성(雉城)에", "외면, 즉 전면에" 현안을 설치하였다. 화성에서 현안이 설치된 시설물을 보자.


먼저, 현안이 설치된 옹성(甕城)은 4곳이다. 네 곳은 북옹성, 남옹성, 동옹성, 서옹성이다. 문(門)에서 성 밖 쪽으로 만든 반원형 외성(外城)을 옹성이라 한다. 


다음으로, 현안을 설치한 치성은 21곳이다. 적대 4곳, 포루(舖樓) 5곳, 치 8곳, 그리고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봉돈, 동북노대로 21곳이다.


따라서 현안을 설치한 시설물은 옹성 4곳과 치성 21곳으로 모두 25곳이다. 화성에 시설물 수가 60곳이므로 비율로는 42%가 되는 셈이다. 하나의 예외 없이 현안도설의 제안을 정확히 따랐다.  

포루(砲樓)는 곡성에 포함되고 모양도 치성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현안이 없다. 곡성이라고 모두 치성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현안이 설치된 시설물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는데, 여기에 빠져있는 시설물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이 시설물은 왜 빠졌느냐 그리고 그 빠진 이유는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이다. 어느 시설물에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포루(砲樓) 5곳이다. 포루는 모양이 치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왜 빠져 있느냐는 것이다. 포루는 돌출만 되었을 뿐 치의 제도에 맞지 않아 치성으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의 기본 조건은 "철부성면(凸附城面)", 즉 "철(凸) 모양으로 성면에 잇대어 붙어야 한다"이다. "잇대어"의 의미에는 첫째, 원성과 똑같이 성에 잇대어 쌓아야 하고, 둘째, 돌출된 부분도 성과 똑같이 흙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포루는 돌이 아닌 벽돌로 쌓았고, 흙이 채워져 있지 않고 속이 비어있다. 치에 끼지 못하는 이유다.

치부성면(雉附城面)은 치(雉)를 정의하는 필수 요소이다. 원성에 붙여야 하고, 원성과 똑같이 흙으로 채워져있어야 한다.


















둘째, 문(門) 11곳이다. 문 4곳, 수문 2곳, 암문 5곳을 말한다. 문은 치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은 드나드는 시설이라서 흙을 채운 상태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서장대와 서노대는 치성에 설치된 시설물이 아니다. 성 안에 설치된 시설물로 현안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셋째, 서노대, 동북공심돈, 장대, 각루 등 나머지 시설물 19곳이다. 이들은 이름바 "재성신지내(在城身之內) 시설물", 즉 "성 안에 위치한 시설물"이다. "성 안"이란 위치와 "치성 위"란 위치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동북공심돈이나 서북각루가 세워진 땅은 언뜻 보기에는 인공적으로 쌓은 치성처럼 보이나, 사실은 원래 자연 그대로 돌출된 땅이다. "성 안(城身 內)"인 것이다.


치성의 특징을 다시 말하면, 원성에 잇대어 성 밖으로 돌출되어 쌓아야 하고, 성 높이만큼 흙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안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포루(砲樓)는 왜 치(雉)에 못 낄까?" "곡성(曲城)이란 무엇일까?" "자성치(自城雉)는 어디에 있을까?"를 발표한 바 있다.  

팔달산정(山頂)의 원성에 설치한 가로로 큰 구멍도 현안이다. 상당히 과학적인 시설이다.. 

이상으로 현안 설치 시설물에 대해 마치고, 몇 가지 특이란 곳을 소개한다. 


 매우 드문 경우로 현안이 원성(元城)에 설치된 경우다. 북암문(北暗門) 좌우에 각각 1개씩, 서북각루(西北角樓) 전면에 2개가 있다. 서북각루를 둘러싼 성은 돌출된 모습이 치성(雉城)으로 보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원성(元城)이다.


팔달산정(山頂) 서장대 뒤 현안은 모양이 특이하다. 가로로 크고 긴 모양에다 위아래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봉돈(烽墩)의 현안은 현안 중 가장 높다.  

또한, 북암문 양쪽의 현안은 벽성(甓城)에 설치되어 있어 돌이 아닌 벽돌로만 만들어진 유일한 현안이다.

서북각루를 감싼 성은 돌출되고 현안도 있어 마치 곡성이나 치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 형성된 원성이다.

현안 설치 대상 시설물을 살펴보니 "설치할 수 있다면 모든 시설물에 설치하라"가 답처럼 느껴졌다. "성 안이라서, 속이 비어서, 문이라서" 등 누가 보아도 설치할 수 없는 곳, 설치할 필요가 없는 곳 빼고 모두 설치하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성역 당시 시설물의 방어 수단으로 현안(懸眼)을 매우 중요시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든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안에서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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