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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Mar 30.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4

현안  설치수량은 어떻게 결정될까?

현안 설치 수량은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 봉돈은 치성 중 가장 높고, 가장 넓은 데도 현안은 적대보다 적은 2개이다.


현안 설치수량은 어떻게 결정될까?


성 밖에서 보면 치성이나 옹성에 길게 홈처럼 파여 있는 모양을 보게 된다. 이것이 현안(懸眼)이다. 시설물 바로 밑까지 다가온 적병을 김시하는 것이 주기능이다.


당시 성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방어 시설로 보인다. 모든 치성(雉城)에 빠짐없이 설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오늘은 지난번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할까?"에 이어 현안의 설치 수량 기준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현안의 주기능이 성 밑의 적병을 감시하는 것이므로 설치할 곳의 너비, 높이 등 외형적 크기에 의해 설치 수량이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결정 요인이 될지 확인해 보자.

동옹성은 서옹성보다 길이가 짧은데도 현안 개수는 3개로 같다.

첫째, 외면 높이에 따라 현안 수량이 결정될까?

옹성 높이는 북옹성과 남옹성이 5.1m, 동옹성 2.9m, 서옹성 3.4m이다. 현안 수량은 북옹성 16개, 남옹성 12개, 동옹성과 서옹성 3개이다. 북옹성과 남옹성이 같은 높이임에도 북옹성이 4개가 더 많다.


치성 높이는 봉돈이 가장 높고, 적대, 동북노대, 서북공심돈, 포루(舖樓), 치(雉)의 순(順)이다. 그리고 현안 수량은 북성적대가 3개이고, 동북노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봉돈이 모두 2개씩, 그리고 포루와 치는 1개씩이다. 봉돈이 적대보다 높은데 수량은 적다.


또한, 옹성과 치성 전체를 보면 동서 옹성이 가장 낮은데 수량은 치성보다 더 많이 설치하였다. 높이가 높다고 수량을 많이, 높이가 낮다고 수량을 적게 설치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외면 너비에 따라 현안 수량이 결정될까?

옹성 너비는 북옹성과 남옹성이 209척, 동옹성 90척, 서옹성 110척이다. 현안 수량은 북옹성 16개, 남옹성 12개, 동옹성과 서옹성이 3개이다. 남북 옹성은 너비가 같은데 북옹성이 4개가 더 많다.


치성 너비는 북포루 30척, 서포루 27척, 동3치 25척 4촌으로 큰 편만 골랐다. 모두 현안 수량은 1개이다. 그런데 2개인 동북노대는 19척, 서북공심돈은 25척이다. 1개 설치된 시설물이 2개 설치된 시설물보다 너비가 넓다는 결과를 보인다.


너비에서도 폭이 넓다고 수량을 많이, 좁다고 수량을 적게 설치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높이 건 넓이 건 외형에서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현안의 설치 수량은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동북포루는 현안 구멍의 높이가 높은 편인데도 현안은 2개이다. 수량 기준이 외형과 무관한 것 같다.

외형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까?


우선 화성에 설치된 현안의 수량에 대한 현황부터 살펴보자. 글로 표현하면 보시기 불편하여 표로 만들었다. 

이 표를 만들 때 필자는 먼저 수량을 써놓고 시설물 이름을 쓴 것이 아니다. 시설물 이름을 먼저 써놓은 후에 현안 수량을 쓴 것이다. 만들고 보니 이름 순서와 수량 순서가 일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름을 쓴 순서" 규칙이 "현안 수량 결정" 규칙이 되는 셈이다. 거짓말처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시설물 이름을 쓴 순서"는 어디서 왔을까?


필자는 화성연구의 바탕을 오로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두고 있다. 권수(卷首) 도설(圖說)을 보면 장안문, 팔달문을 시작으로 포사, 성신사까지 시설물을 설명하고 있다. 이 의궤 설명 순서가 바로 "이름을 쓴 순서"다.


이로서 "현안의 설치 수량 순서는 의궤에서 시설물을 설명하는 순서와 같다"는 점을 알게 됐다. 개수 몇 개까지 계산하는 공식은 아니어도, 수량의 순서에 대한 기준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의궤 도설의 설명순서를 모두 보면 문, 암문, 수문, 은구, 장대, 노대, 공심돈, 봉돈, 각루, 포(砲)루, 포(舖)루, 치, 포사, 성신사 순서이다. 이 순서가 위계이다. 현안 수량 설계도 이 위계를 지켜야 한다.


누구라도 자의적인 판단으로 현안 수량을 정할 수 없다는 하나의 기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봉돈이 아무리 넓어도 위계를 앞지르며 3개가 될 수 없고, 옹성이 아무리 낮아도 뒤로 물러나 2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로서 전편에 말한 "동3치 현안 2개"는 위계에 맞지 않는 것이 증명되었다. 한 장인(匠人)의 자의적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진의 서1치처럼 치는 모두 현안이 1개이다. 현재 동3치는 현안이 2개이다. 복원 시 수량 기준 규범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면 의궤 설명 순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위계일까? 

조선시대 건축에서 건축물의 위계는 중요한 설계 요소였다. 궁궐, 서원, 사찰 건축에서 건물 간 위계(Hierarchy)는 분명했다. 기준은 권력(權力)과 교리(敎理)에 의한 위계다.


그러나 화성 시설물은 이들 건축과 위계 기준이 다르다. 화성에서는 방어력을 기준으로 하였다. 정확히 말해 어느 시설물이 방어에 취약할까? 어느 시설물에 방어력을 집중해야 할까? 가 기준이다. 근거는 의궤 설명 순서가 문(門)에서 시작하여 성신사(城神祠)로 끝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성(城)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문(門)으로, 성을 공격할 때 가장 먼저 문을 공격하는 것이 법칙이다. 의궤에도 문, 암문, 수문, 은구를 맨 앞에 설명하고 있다. 이유는 가장 취약한 개방형 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방어가 더 필요한 시설물이다. 반면에 치, 포사, 성신사는 맨 끝 부분에 설명하고 있다. 치는 돌출됐을 뿐 성과 같다. 포사와 성신사는 최전선인 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성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계가 낮은 것이다.


똑같은 크기, 똑같은 위계인데도 북옹성이 16개, 남옹성이 12개이고, 북성적대가 3개, 남성적대는 2개이다. 이 또한 위계이다. 바다인 남쪽보다 대륙인 북쪽을 방어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북쪽을 더 취약한 곳으로 보있다는 증거다.  

팔달산정 서장대 뒤편 원성에 설치된 현안이다. 위치, 형식, 모양, 구조 등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현안이다.

현황 표에 실제 설치된 수량과 다르게 기록한 두 곳에 대해 해명을 드린다. 공심돈은 2면에 각각 2개씩인데 바른 분석을 위해 1개면 2개로 보았다. 그리고 동3치는 현재 2개가 설치되어 있으나 성역 당시 원형을 기준으로 1개로 보았다.


수량에 대한 자료이다. 화성에는 옹성에 34개, 치성에 35개로 현안이 모두 69개가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암문 좌우 1개씩 원성에 2개, 서북각루 외면 원성에 2개가 있다. 원성 중 왜 하필 이곳에만 현안을 설치했을까? 의문이다. 

성신사(城神祠)는 용도로 보면 건물의 위계가 높다. 그러나 의궤에는 맨 끝에 있다. 화성은 위계를  "방어의 취약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인 현안 수량 산출공식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화성에서 현안 설치수량에는 엄격한 위계가 있었음과 그 기준을 밝혀냈다. 또한 그 위계가 "방어의 취약성"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도 밝혔다. 


현안(懸眼) 설치 수량 결정 기준을 살펴보며, 현안 개수에서 위계(位階)를 철저히 지킨 정조(正祖)의 엄격함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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