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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Sep 09.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

적대(敵臺) 위에 왜 대포가 있을까?

문(門)은 옹성(甕城)과 문루(門樓)가 지킨다. 문루와 옹성은 적대(敵臺)가 지킨다. 과연 적대의 전략적 자산은 무엇일까?


5척(尺)이 주는 의미, 적대(敵臺)!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정문으로 문과 문루는 우리나라 성문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규모뿐만 아니라 형식도 최고의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뽐낸다. 북문인 장안문과 남문인 팔달문이 형식이나 규모가 엇비슷하고,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이 서로 유사하다.


원래 성(城)의 목적은 방어에 있다. 따라서 성은 폐쇄성이 강한 시설인데 화성에선 개방할 수밖에 없는 시설물이 몇 곳 있다. 바로 대문 4곳, 수문 2곳, 암문 5곳, 은구 2곳이다. 화성 전체 시설물 60개의 5분의 1이 넘는다. 은근히 많다. 이런 시설물은 수비를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장안문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다니는 문(門)이다. 성(城)은 닫힌 공간인데 문은 열린 공간이다

문을 방어하기 위해 화성에서 계획한 특별한 대책은 문루(門樓)와 옹성(甕城), 그리고 적대(敵臺)다. 이 세 시설물은 각각이 아니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 의궤 도설(圖說)을 보아도 적대를 독립된 시설물로 설명하지 않고 장안문 설명에 북옹성과 적대를 포함하여 하나의 세트로 설명하고 있다.


장안문과 팔달문에는 이 셋을 모두 갖추었고, 창룡문과 화서문에는 적대가 없이 문루와 옹성만 있다. 문에 적대를 설치하는가 안 하는가는 흔히 정설처럼 말하는 시설물의 위계(位階)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문의 규모, 특히 문루의 규모와 문의 좌우 지형이 주요 결정 요소이다.


문루(門樓)는 높이가 높고 적으로부터 병사를 은폐시킬 수 있는 시설로 옹성 너머 전방의 적도 직접 공격할 수도 있다. 또한 적이 옹성 안으로 이미 들어왔다면, 문루는 옹성과 함께 협공을 하여 적을 몰살시키는 역할을 한다. 옹성(甕城)은 정면의 적을 공격하기도 하고, 적대와 함께 적의 측면을 공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다.

문은 성의 시설물 중 가장 중요한 시설물로 화성에서는 "시스템 방어"를 구축해 놨다. 위에는 문루를, 앞에는 옹성을, 좌우에는 적대를 배치하였다. 

적대(敵臺)는 옹성의 좌우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적대의 이름은 문의 방위명 즉 남(南)과 북(北)에, 문을 기준으로 동쪽이냐 서쪽이냐에 따라 동(東)과 서(西)를 붙인다. 즉 장안문의 동쪽에 있는 적대는 북문의 "북(北)" 글자 다음에, 동쪽이므로 "동(東)"을 붙여 북동(北東)적대라 하고, 서쪽은 북서(北西)적대라 부른다. 적대가 위치한 방위가 북동(北東) 쪽이나 북서(北西) 쪽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적대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적대의 설치 목적은 의궤(儀軌)에 "높은 대 양쪽 가장자리에서 적을 좌우로 살피면 적이 곧바로 성 아래로 다가오지 못할 뿐 아니라 굽은 살이나 비껴 쏘는 탄환이라도 대(臺) 위에 있는 아군을 다치지 못하게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적대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북문에는 좌우에 적대를 각각 하나씩 두었다. 문을 중심으로 동쪽은 북동적대, 서쪽은 북서적대라 한다. 팔달문도 마찬가지다.

성에서 돌출하여 문이나 옹성을 향해 접근하는 적들을 좌우 측면에서 공격하여 방어하는 것이 적대의 목적이라면 치(雉)나 포루(舖樓)를 설치하면 됐지 왜 적대를 설치하였을까? 대문을 방어하는 적대는 무엇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적대만의 차별화된 것은 무엇일까?


적대만의 차별화된 전략적 자산은 "높은 대 양쪽 가장자리에서 적을 살피면" 중에서 "높은 대(臺)"가 키워드다. 문과 옹성을 방어하는 적대는 일반적인 성(城)으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는 체계와 달라야 한다. 그 차이를 극복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정조는 "높이에 승부를 건" 전략, 즉 "고대전략(高臺戰略)"을 택했다.

적대의 목적이나 전략적 가치는 "높이"에 있다. 대(臺)은 바닥면이 인접한 성의 여장 윗면과 일치해야 한다.

고대전략(高臺戰略)은 무엇이 다를까? "높은 대 전략"의 장점은 첫째, "적을 좌우로 살피면 적이 곧바로 성 아래로 다가오지 못한다"하고, 둘째, "굽은 살이나 비껴 쏘는 탄환이라도 대 위에 있는 아군을 다치지 못하게 된다"라고 판단하고, 세 번째는 아예 "이제의 성은 반드시 화살이나 탄환이 필요치 않다"라고 까지 극상의 평가를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대의 구조를 "대(臺)의 높이 22척으로 원성(元城)의 성가퀴와 가지런히 했다"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적대 바닥면이 성의 여장 윗면과 같은 높이라는 의미다. 여장 높이 5척만큼 더 높은 것이 주는 방어 상의 가치가 적대의 존재가치인 것이다. 성에 접해 있는 화성의 모든 시설물 중 동북노대(東北弩臺) 하나를 제외하고 대의 높이가 가장 높다. 

성의 여장 윗면 높이가 적대의 바닥면과 같은 높이여야 한다. 잘못 복원되어 낮은 적대가 되었다. 낮은 적대는 적대가 아니다. 러시아 젊은 처녀 둘은 적대 앞에서 멋진 포즈를.

이런 전략을 증명하듯 북동적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장안문과 북옹성이 보이는데, 장안문 문루 바닥과 높이를 같이하고, 북옹성은 아래로 굽어 보인다. 현재는 적대의 바닥면이 성의 여장 윗면보다 낮게 되어있다. 잘못 복원된 것이다.


높이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 적대의 핵심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도 아니고 높이가 잘못 복원되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높이가 바르게 복원되지 않은 적대는 이미 적대가 아니다. 핵심기능을 상실한 그저 대(臺)나 치(雉) 일뿐이다.


북동적대와 북서적대에 오르면 각각 커다란 대포가 하나씩 놓여있다. 안내문에는 홍이포(紅夷砲)라 쓰여 있다. 적대와 대포는 무슨 관계일까?

적대와 대포는 무슨 관계일까? 북성적대 2곳 모두 큰 대포가 놓여 있다.

앞의 내용을 읽으셨으므로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아마 독자께서 "적대는 무기도 필요 없을 정도로 높이로 승부를 거는 시설인데, 관계없는 대포가 웬일이지? 어처구니없네!"라고 했을 것이다.


어떤 시설물이라도 방문자에게 해당 시설물의 본질을 알려야 한다. 본질을 안내하지 못할망정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관광객이 적대 위 대포를 보고 "여기는 포병 진지야"라고 판단하게 된다면 이는 왜곡된 화성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 관계없는 적대 위 대포를 빨리 치우는 용기도 필요한 때이다.

잘못 복원된 북동적대와 북서적대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며 늦은 밤 정조(正祖)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문화유산은  무엇보다도 장소성(場所性)이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도 그 장소에, 그 시설물이 있어야 가치를 발한다. 대영 박물관에 실물이 있다 해도 이집트의 룩소르나, 그리스의 아크로포리스를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이유가 장소성 때문일 것이다. 화성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장소성 때문이다. 적대 위 대포는 제 자리가 아니다.


성(城)에서 가장 중요한 문과 옹성을 지키는 적대(敵臺)의 전략적 자산 "높이"에서 정조(正祖)의 설계 의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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