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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개비농사꾼 Oct 27. 2024

[게임학 노트] 규칙에 대한 단상

게임이 곧 게임 규칙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

https://brunch.co.kr/@carsurta/3


들어가며

많은 게임학자들이 동의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규칙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일 것이다. 특히 이런 관점은 서사학(narratology)에 대항하기 위한 게임학(ludology)의 근거가 되며 더 주목받고 지지된 면이 있다. 게임이 단지 전자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서비스이거나 예술품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무언가'의 요소는 규칙일 것이다. 이번 노트에서는 게임의 규칙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정해진 규칙은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Juul, 2005)


1. 규칙은 유동적일 수 있다.

가볍게 삼단논법으로 시작해 보자.

1. 축구는 몇 명이 하는가? 국제축구평의회의 규칙에 따르면 두 팀에 팀당 11명으로, 총 22명이다.
2. 그러면 군대축구나 학교축구는 몇 명이 하는가? 진지하게 하는 경우 11명으로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나 시간 남는 사람들끼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따라서, 규정에 의하여 팀당 11명으로 하지 않는 군대축구와 학교축구는 축구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가? 적어도 학교 축구와 군대 축구를 축구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게임문화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적 게임과 보드 게임-즉 상품형 게임-에서는, 적어도 특정한 시점에서 모두에게 유효한 표준 규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게임에서는 축구와 같이 명확한 표준 규칙이 있는 경우가 특별하다.


한국의 전통 게임 "원카드"를 예로 들어보자. 원카드의 규칙은 인원별로, 지역별로 다양하다. 친구 관계 등에서 처음으로 원카드를 플레이하는 경우 참가자들은 각자 다르게 알거나 정해지지 않은 몇 가지 규칙들을 합의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몇 장의 카드를 갖고 시작할지, 어떤 카드들을 한 번에 같이 놓을 수 있는지, 또는 어떤 공격 카드로 다른 공격 카드를 받아칠 수 있는지까지 등이다. 특히 공기놀이나 축구, 탁구 등과 같은 전통적 게임을 덜 진지하게 플레이하는 경우 대체로 모호한 형태로 남겨지는 규칙이 있으며 이는 참가자들 간의 합의나 기존의 합의한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하우스 룰은 지역별 또는 커뮤니티별로 고착되어 점차 사투리와 같아지며,(자세한 것은 한국의 전통 카드게임 "마이티"의 역사와 학교별 규칙을 참고하면 좋다) 이런 지역적 고립이 오랫동안 유지될 경우 끝내는 다른 게임으로 분화되기도 한다.(앞서 예를 든 원카드가 미국의 "아메리칸 페이지원"에서 분화된 게임으로 추정된다.) 스티븐 핑커는 언어의 분화가 변이, 세습, 고립이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일어난다고 했는데,(핑커, 1994) 게임에서 지역적 하우스 룰의 출현이나 분화도 이와 비슷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대에는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이런 현상이 옅어지고 표준 규칙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2. 2개 이상의 표준 규칙이 하나의 게임과 대응할 수 있다.

이 진술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전통 게임 "바둑"이 있을 것이다. 바둑의 표준 규칙은 대체로 중국식, 일본식의 2가지로 분류된다. 이외에 응씨배에서 사용되는 대만 규칙과 미국, 태국 등에서 사용되는 규칙이 있으나, 바둑 인구와 전문 기사들의 구성에서 중국식과 일본식이 압도적이기에 이 두 가지 규칙이 주로 쓰인다. 친선경기에서는 위에 서술했듯 참가자 간에 어떤 규칙을 사용할지 합의하거나, 이미 공동체 내에서 합의된 맥락에 의해 묵시적으로 결정된다. 진지한 대회의 경우 대회 주최측에서 어떤 규칙을 사용하는지 명시한다. 두 규칙의 승리 기준은 거의 비슷하나 종종 발생하는 예외적 경우에 약간 다르다. 이외에 초읽기 등의 규정도 대회별로 다른 편이나, 이는 앞서의 유동적 규칙에 대한 설명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비교적 표준 규칙이 분명한 전자적/상업적 게임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진지하게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많으면 종종 발생한다. 현재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은 빠른 대전과 랭크 게임, 대회 경기에서 밴픽을 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또한 대회 클라이언트에서는 특정한 챔피언(캐릭터)이 글로벌 밴이 되거나, 일반 클라이언트와 챔피언/아이템의 성능이 달라지고는 한다. 그러나 이렇게 규칙이 달라진다고 해서 이들이 다른 게임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이런 인식은 단순히 제작사가 같은 게임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랭크 게임에서 정당하게 높은 지위를 획득하면, 그는 프로 선수로서 대회에서 활약할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실제로는 랭크 게임의 실력과 대회에서의 실력은 미묘하게 다르고, 이 차이는 복잡한 영역이다. 이는 추후 "대규모 경쟁전 체계"에 대해 서술할 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게임들의 예와는 별개로 어떤 게임에서 대회가 열리는 경우, 반드시 대회 진행을 위해 추가되는 규칙이 있다. 언제까지 대회에 접수하고, 누구와 얼마나 경기하며, 경기 전/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다. 그리고 이것이 표준 규칙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주최하는 대회라면 게임의 규칙 뿐 아니라 대회 진행을 위한 규칙의 권위 역시 커진다. 이는 게임의 정의에서 특히 미묘한 영역 중 하나이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게임을 하는 것인지 모호한 것처럼,(자신의 경기를 기다리는 대기시간에 이들은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권위있는 대회에서 고착화한 대회 규칙을 유동적인 게임 규칙의 일부로 볼 수 있는지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3. 규칙은 반칙을 포함한다.

어쩌면 이 진술은 너무 당연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법체계부터 그렇다. 예시로 대한민국의 형법을 들여다보자.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329조)

형법은 절도를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도를 포함한다. 대한민국에서 절도 행위가 벌어졌다고 해서,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가 선고된 벌을 받고 나면, 그에게는 사회활동을 재개할 권리가 주어진다.


축구 등의 게임에 같은 개념을 이식해 보자. 누군가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공을 차면 반대편 팀이 양손으로 공을 경기장 안으로 던진다.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공을 차면 안 되는 게 아니다. 어떤 팀의 선수가 그런 행동을 하면, 응당한 패널티를 받고 경기가 재개된다. 손으로 공을 잡는 행위나 상대 선수에게 거칠게 태클을 하는 행위도 엄밀히 말하면 금지되지는 않는다. 그런 행동을 플레이어가 정당한 패널티를 받은 후, 경기는 재개된다.


게임이란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장애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과 경쟁하는 행위라는 슈츠의 논의(슈츠, 1967) 이후로, 규칙은 불필요한 장애-즉 제약의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규칙과 제약을 등치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패널티를 감수하고도 제약된 액션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루이스 수아레스는 우루과이의 4강 진출을 위해 손으로 공을 막고 퇴장이라는 패널티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퇴장에 승복했을까? 어쨌든 그는 플레이를 지속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받았지만, 핸드볼 파울과 달리 그 규칙에는 승복했다.


조심스러운 제안이지만, 어쩌면 게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합의된 규칙은 종료 조건일 수 있다. 적절한 기술적 전략적 성취가 승리 조건으로 결정되면, 나머지 활동에 대해서는 규칙을 통해 적절한 패널티 부여다. 그러나 그 활동이 절대적으로 금지되지는 않는다. 패널티를 감수한다면 충분히 반칙이 수행될 수 있다. 반면 감수할 수 없는 패널티도 있는데, 바로 몰수패 또는 실격이다. 하위징아는 규칙을 위반하거나 무시하는 자에 대해 '놀이 파괴자'라고 불렀는데,(하위징아, 1938) 아마도 실격은 해당 참가자가 놀이 파괴자라는 선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위징아나 슈츠의 규칙 또는 제약은 게임을 끝내는 조건으로써, 일반적으로 우리가 '놀이'나 '게임'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규칙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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