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요정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의 흔적
1. 들어가는 글
[말랑몰랑 사는 것도 괜찮아]
“찾았다~ 저건 코끼리, 음.. 저건 아이스크림.”
“우와~ 저건 말이다, 말.” “하하하~ 이것봐. 나는 엄청 기다란 용을 찾았다구~!!”
문득 어렸을 적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며 친구들과 무엇을 닮았는지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난다. 뭉실뭉실.. 몽실몽실.. 언젠가는 하늘에 올라 저 구름을 만져보고 싶다던 꼬맹이는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에 오르는 순간이 여전히 설레인다. 수 만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구름은 그야말로 변신의 천재이지만 아마도 같은 모양의 구름을 보고도 떠올리는 모습은 사람들마다 제각각 다를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볼 때도 그렇다. 같은 사람을 보고 누군가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누군가는 도시적이다 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럼 도시적이라는 이미지는 어떨까? 누군가는 세련되고 깔끔한 패션을 떠올리거나 누군가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는 회사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길게 늘어뜨린 앞머리는 어떨까.. 누군가는 답답해 보인다라고 말을 하고 누군가는 어둡고 암울한 사람이라 말을 하고 또 누군가는 신비롭다 혹은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사람 같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모양을 정의하는 사람들의 표현 속에 반드시 정답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사람은 성격이 이러이러 해서 저러저러하게 다녀.’ 라던가
‘저 사람은 저러저러하게 다니는 것을 보니 성격이 이러이러 할거야.’ 라고 한들
그 안에 담긴 그 사람의 내면을 혹은 그 사람의 사연을 누가 함부로 단정 짓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우리의 생각은 유연함을 버리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만 같다. 타인을 강요하지 말자던 유연함은 강요를 강요하지 말라는 강요로 변해가기도 한다. 소수의 생각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기로 하자던 유연함은 소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수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네모가 둘로 쪼개지면 세모가 되고 네모든 세모든 모가 나서 뽀족해 보이다가도 이리저리 구르다 보면 어느새 동그라미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 역시 언제든 다시 각이 진 네모나 세모 혹은 그 이상의 다양한 모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스타일이야 가꾸기 나름이고 생김새도 살아가며 담아내는 표정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성격은 어떠할까.. 성격 또한 경험을 통해 얻어가는 답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구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무조건 틀린 것이라고 진짜가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정답은 무엇이고 우리가 모습을 보며 상상하던 구름의 원형은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상황이 그러하니 어쩌면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단정짓거나 누군가에게 쉽게 단정지어지는 것을 조금은 뒤로 미루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날 지우개에서 태어난 지우개 요정 지우개똥이. 아프고 속상한 기억은 지워 주고 마음이나 몸에 난 상처도 지워주는 능력을 지닌 힐링 요정 지우개똥이는 어렸을 적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주물럭 주물럭 주무르고 굴려가며 이 모양 저 모양을 만들어대던 지우개똥처럼 변신의 천재이다. 그 다양한 모습처럼 성격 또한 정말 가지가지다. 말랑몰랑한 모습으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모습을 바꾸며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가지 방식의 에피소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지우개똥을 보다보면 딱딱하고 각진 세상을 이제는 ‘말랑몰랑 살아보는 것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