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요정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의 흔적
[~인 척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보기에 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것 같아. 너무 착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전부 받아주고 들어주고 수긍을 해주던 무척이나 친한 형이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그가 남긴 그 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릿 속에서 살아남아 가끔씩 마음 언저리로 놀러오곤 한다. 처음에는 ‘착하지도 않은 녀석이 착한 척하지 말라~’는 의미로 생각이 되서 꽤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로 얼마 동안은 내 자신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작업에 한참을 몰두하기도 했다. 사실 나 조차도 내가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별해내기가 어려웠고 착하다 아니다의 기준은 무엇이고 평가는 누가 내리는 것인가도 애매했다. 다만 한 가지, 완벽하지 못한 내가 가끔은 어떤 선택에 있어서 나쁜 사람이기 보다는 착한 사람이길 원하는 것 같더라 정도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나는 어떤 한 대답을 통해 그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나쁜 사람이 착한 척 해봐야 본질은 바뀌지 않는거 아닌가요? 나쁜 사람이 착한 척 해봐야 결국은 나쁜 사람인 것 같은데..”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결국,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정해져 있어서 착한 척을 해도 결국은 나쁜 사람이고 나쁜 척을 해도 결국은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성악설이네 성선설이네 하는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 말은 왠지 그리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을 수 있던 이유는 그 말을 통해 ‘어차피 정답은 없어’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도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건 다행인거 아닐까..? 아님 결국 그 노력은 그냥 무엇무엇한 척 하는 것일 뿐일까…?’
라는 어설픈 결론과 함께 그 후로는 정답을 알 수 없는 고민에서 갈팡질팡 하기보다는 조금은 헐렁하게 살기로 했다. 무언가에 얽메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면 좀더 다른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도 그것이 어쩌면 특별한 모양과 행동에 얽매이지 않고 말랑몰랑하게 사는 모습에 가까울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쓸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제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인 척 할 필요는 없어.’ 라고도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냐 아니면 시선을 의식한 부자연스러운 선택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비록 아직 엉성할지언정 그것이 나의 선택이라면 진심에 닿는 과정일테고 진짜처럼 보인다 한들 그저 시선을 의식한 선택이라면 ‘~인 척’ 하는 것일테지. 본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그러니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남들은 모를지언정 스스로를 알아가는 나만의 진짜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무더운 여름, 변신천재인 지우개똥이들은 스스로 눈사람이 되어 더위를 피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양만 눈사람을 흉내낸다고 해서 불쌍한 지우개똥이들의 더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