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할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중학교 2학년. 그 시절의 나는
무언가를 자꾸 숨기기 시작했다.
울고 싶다는 마음,
서운하다는 감정,
혼자라는 느낌.
그걸 드러내는 일이
왠지 유치하게 느껴졌고,
어딘가 부끄러웠다.
‘괜찮아.’ 라는 말은 내게
그 무렵 가장 자주 꺼냈던 말이었다.
아빠가
“요즘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똑같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표정도, 목소리도
조금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면서.
처음엔 연습처럼 시작된 그 말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습관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방 앞에 과일 접시를 놓아두곤 했다.
누가 봐도 정성스레 깎아 놓은 사과 반쪽과
귤 하나, 차가운 수박 조각 하나.
아마도 아빠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묻지 않는 대신
무언가를 건네는 방식으로
내 마음 옆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다정함마저도
당시엔 불편하게 느끼고 말았다.
‘왜 자꾸 챙기지?’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나?’
사실은 마음을 들킬까 봐 두려웠던 거였다.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아빠의 시선이
그때의 나를 안심시키기보다 도망치게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서툰 시기의 통과의례였고,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조용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괜찮은 척, 강한 척하는 걸
점점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하윤아, 괜찮은 척 안 해도 괜찮아.”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어김없이 깎아 놓은
아빠의 사과 한 조각을 천천히 오래 씹었다.
그건 마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처음으로 삼키는 연습처럼 느껴졌다.
아빠, 그땐 제가
왜 그렇게 숨으려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어깨를
당신이 얼마나 조용히 감싸고 있었는지를.
그때 아빠가 한 걸음 멀찍이 서서
저를 기다려주었던 그 마음,
이제는 괜찮은 척 연습하는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기다리며 피어나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