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던 그 밤, 마음은 이미 조용히 다가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그날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고,
마음은 지쳐 있었고,
오래도록 말하지 않았던 누군가와
괜시리 연락을 하고 싶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엔 어김없이
항상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아빠였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말은
그 시절 서툴던 우리 사이에선
너무나 꺼내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문득 전화를 걸고 싶다가도
막상 통화 버튼 앞에서는
얼어버린 듯 손가락이 멈췄다.
‘뭐라고 시작해야 하지?’
‘이 시간이면 주무시려나?’
‘괜히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결국 메시지 한 줄조차
보내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다음 날, 엄마를 통해 들었다.
“너 요즘 힘든 일있니?
아빠가 부쩍 네 걱정을 하시더라.”
나는 속으로 작게 웃음이 났다.
오랜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어도
여전히 아빠는 내 마음을 살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멀어진 건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어색해진 사랑을 꺼내는 방법이
낯설어졌기 때문이었구나.
그러니까, 조금은 서툴더라도
먼저 다가가 봐도 괜찮지 않을까.
다음 날, 나는 집에 들렀다.
몇 달 만에 찾아간 집의 공기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변한 게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현관 앞 나를 익숙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왔어?”
“응.”
그렇게, 단 세 글자의 대화.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아빠의 눈을 제대로 마주봤다.
그리고 마음 한쪽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풀어지고 있는걸 느꼈다.
아빠는 마치 똑같은 일상을 맞이하듯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여줬다.
나는 조용히 밥을 먹으며 물었다.
“아빠, 이거… 예전에도 이렇게 맛있었나?”
아빠는 대답은 않고 그저 눈웃음을 지었다.
“늘 그랬지.”라는 아빠의 눈웃음 한마디에
내 안에 자리잡았던 미안함과 그리움이
살포시 밀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 서서히
가까워지면 되는 거였구나.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구나.
멀어진 거리를 탓하지 않고,
당장 모든 걸 회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오늘 이 한 끼만 함께 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아빠, 우리는 참 오래 돌아왔죠.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이 시간이
마치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요.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이 먼저 아빠를 향해
걷고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