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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산업, 표준계약서라는 공통 언어를 찾다

힘의 논리에서 파트너십의 논리로, 대립이 아닌 협력의 기준을 세우다

by 나무를심는사람
웹툰 산업의 표준 계약서.png


웹툰 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스마트폰 보급과 플랫폼 중심의 디지털 유통 구조가 정착되면서, 창작물은 더 이상 특정 매체나 국가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글로벌 동시 연재, 자동 번역, 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은 웹툰을 하나의 ‘콘텐츠 산업’이자 ‘플랫폼 산업’으로 확장시켰다. IP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2차·3차 활용 역시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만 놓고 보면 웹툰 산업은 분명 성공적인 성장 모델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의 외형적 성장과 달리, 내부 구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계약의 불균형성, 수익 배분 구조에 대한 불신, 그리고 창작자와 기업 간 갈등의 대립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시시각각 생겨나는 새로운 사례의 개별 계약에 따른 권리 구조와 정산 방식이 제각각 운영되면서, 산업 전반에 복잡하고 미완성된 구조로 인해 신뢰는 좀처럼 쉽게 쌓이지 못했고 갈등은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성장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웹툰 표준계약서의 제·개정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제작과 기획을 병행해 온 한 제작사 대표는 표준계약서가 이미 업계에서 일정 부분 활용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복잡한 비즈니스 구조를 모두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단순 연재 계약부터 IP 공동 개발, 해외 진출, OSMU 사업까지 다양한 계약 형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포괄적인 양식의 계약서로 모든 경우를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계약서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표준계약서는 계약 관계의 ‘최소 기준선’이자, 협상이 시작되는 공통의 언어다. 완벽한 해답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권리 범위인지, 어떤 조항이 불공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개별 계약의 내용을 넘어, 산업 전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능에 가깝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갈등의 핵심은 여전히 ‘2차 저작권’, 즉 OSMU 권리의 포괄적 위임과 정산의 불투명성이다. 계약 단계에서 창작자가 향후 발생 가능한 모든 2차적 권리를 제작사나 플랫폼에 일괄적으로 위임하도록 요구받는 사례는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해외 연재, 영상화, 라이선싱 등 다양한 수익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에게는 구체적인 매출 데이터 없이 결과 금액만 전달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신뢰의 문제이기 이전에,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다.


이와 맞물려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다단계 유통 구조에서 발생하는 수익 배분의 왜곡이다. 작가–제작사(CP)–플랫폼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수수료와 비용이 공제되면서, 최종적으로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점점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왔다. 특히 최소보장금(MG)의 차감 방식, 기준 매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해석 차이는 계약 분쟁의 단골 소재로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계약서 문구의 모호함 때문만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통용되는 기준과 관행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정 표준계약서는 무엇을 바꾸게 될까. 단기적으로 보면, 계약 검토와 수정에 따른 행정적 비용과 시간이 증가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의 관행적 계약 구조를 재점검해야 하고, 창작자 역시 계약 내용을 보다 면밀히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계약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이는 불가피하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계약 관계가 정렬되면, 사후 분쟁의 위험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산업계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권리 보호’와 ‘비즈니스 유연성’ 사이의 균형이다. 표준계약서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투자 의욕과 사업 추진 속도가 과도하게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IP 확장과 2차 저작권 활용 과정에서는 창작자의 동의 절차를 명확히 하되,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위임 구조를 설계하는 제도적 정교함이 요구된다. 이는 어느 한쪽의 양보가 아니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공동의 과제임을 명심하고 계약 대상 모두를 고려하고 배려한 형평성 있는 분배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정 표준계약서가 시장 전반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로 꼽히는 것은 ‘정보 비대칭성의 완화’다. 정산 데이터 제공 의무가 강화되고, 휴재권이나 계약 해지 조건이 명문화되면, 계약 관계는 더 이상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 된다. 창작자와 기업은 상호 대등한 파트너로서 계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이는 단순한 계약서 개정을 넘어, 시장의 분위기와 신뢰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물론 계약서 하나만으로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표준계약서의 보급과 함께 표준 단가 가이드라인 마련, 공정 상생 협의체의 정례화, 평균적인 수익 배분 구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때 영세 제작사나 신생 기업이 표준계약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제도의 취지가 현장의 부담으로 전가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표준계약서 제·개정이 현장에서 요구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급성장한 산업일수록 제도는 늘 한 발 늦기 마련이고, 그 공백은 대상자들의 이해 충돌과 산업 내부의 소모적 갈등으로 이어져 왔다. 표준계약서는 창작자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기업에게는 ‘공정한 경쟁의 기준선’을 제공한다. 이 기준이 작동할 때에만 산업 전체의 신뢰가 회복되고, 지속 가능한 성장 역시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야 할 점은, 표준계약서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교육과 이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문서 배포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 제공, 무료 또는 저비용 법률 상담 지원, 표준계약서를 성실히 활용하는 기업에 대한 정책적 인센티브 등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계약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때, 창작자는 비로소 작품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콘텐츠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개정된 표준계약서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은 단순한 분쟁 예방이 아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고, 작가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제도는 결국 사람이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번 표준계약서 개정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제 업계 전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실천을 이어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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