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뒤,
엄마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네 방 정리 외에는 안 해도 돼. 아빠 방은 내가… 차차 할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거긴 내가 할게.”
말보다 먼저 나선 마음이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고,
그 침묵이 오히려 모든 걸 허락하는 것 같았다.
아빠의 방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책상 위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베갯머리엔 아빠가 쓰던 안경이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정리해 내려갔다.
손때 묻은 공책들,
빼곡하게 적힌 메모지,
책 사이에 껴 있던 약봉지.
그리고,
서랍 맨 안쪽.
가장 구석에 숨어 있던
두툼한 노트 한 권.
표지를 넘기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글씨가,
한 장, 또 한 장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날짜는
거의 매일.
어느 하루도 거르지 않은 듯,
정성스레 이어진 글귀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멈출 수 없이
그 노트를 읽어나갔다.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아빠가 남긴,
말하지 못한 마음의 조각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궁금했다.
이 노트를 아빠는 언제부터 써온 걸까.
누구를 위해?
노트의 뒤로 갈수록
글씨는 점점 흔들렸고,
잉크는 자주 번졌다.
문장 끝엔
숨이 가쁜 듯한 여백이 늘어났고,
어떤 날은
겨우 한 줄만 남겨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노트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밤,
노트 한 장씩을 읽는 걸
하루의 의식처럼 반복했다.
그건 마치,
하루에 하나씩
아빠의 마음을 되짚어 읽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