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말보다 따뜻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요즘은 잠드는 일이 쉽지가 않다.
몸은 분명히 지쳐 있고, 하루가 버겁게 지나갔는데도
어쩐지 눈꺼풀은 늘 깨어 있다.
마음속 어딘가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밤이 하나 있다.
기억이 선명하지도 않은데,
자꾸 마음이 먼저 그 장면으로 걸어간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까.
소풍 전날 밤처럼 설렜던 마음이
하루 사이에 구겨지고 찢어진 날이었다.
친구들과의 작은 오해,
선생님의 무심한 한마디,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답답함.
나는 그날 저녁,
밥도 반쯤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버렸다.
엄마는 “왜 그래?” 하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 밤,
나는 조용히 울었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어린 마음을 억누르며.
그리고,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조심스러운 걸음,
낯익은 온기.
아빠였다.
그때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았다.
내가 자는 척을 하는 걸 눈치챘을 텐데도
조용히 이불 위로 손을 얹고,
내 등을 아주 천천히,
한 박자씩 토닥여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밤공기 속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지금 당장은 아무 말도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이렇게 있어주는 것도 괜찮은 거야.”
아빠는 그렇게 속삭였고,
나는 그제야 온몸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이도
그날 아빠는
내 슬픔 전체를 안아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건,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오래 가슴에 남는 감정이었다.
지금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때보다 훨씬 많은 밤을 지나왔다.
살면서 상처도 받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말하지 못해 끙끙 앓던 감정들이 마음 속에 겹겹이 쌓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도 그날 밤의 그 손길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문득,
누군가에게 말 대신 마음을 건네고 싶어질 때
나는 그 밤을 떠올린다.
혹시 아빠는,
그날 밤 교환일기에
무슨 말을 남기셨을까.
아마도 이렇게 쓰지 않으셨을까.
“오늘 네가 등을 돌리고 말이 없을 때,
아빠는 네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다녀왔단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이젠 조금은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야기는 그 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그 밤 처음으로 깊이 알아차렸던 순간.
그 밤의 따뜻함이,
지금도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쓰려 한다.
아빠, 오늘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