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보다 오래 남는 손길

by 나무를심는사람

“사라진 줄 알았던 마음은, 따뜻한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어릴 적,
나는 아빠 손을 참 좋아했다.
커다랗고, 마디마디 굵고,
손바닥엔 늘 작은 상처 자국이 남아 있던 그 손.


그러나 그 손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도,
잠든 내 이불을 고쳐줄 때도
마치 아주 연약한 것을 만지는 듯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그 손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건
아마도 내가 아팠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열이 펄펄 나서 몸을 뒤척이고 있을 때,
누군가 이마에 손을 얹어주었고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그건 엄마의 손이 아니었다.

아빠였다.


아빠는 말없이 젖은 수건을 이마에 얹어주고,
밤새 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왔을 때,
나는 그 손을 붙잡은 채 잠이 들어 있었고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 안에
하나의 온도로 남아 있다.


살면서
수많은 손을 만나고,
수많은 악수를 하고,
수많은 손길에 기대어 살아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손도
그때 아빠의 손만큼
깊게 남아 있진 않았다.


성인이 된 지금은
손을 잡는 일이 흔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조차
어딘가 조심스럽고,
그 감정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길을 걷다가 어떤 노부부가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건 손이 아니라,
시간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나는

그 장면 속에서
잊고 있던 아빠의 손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우연히 낡은 앨범을 꺼내보다가
어린 시절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놀이공원에서 찍힌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아빠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카메라를 보지 않고,
내 쪽을 보고 있는 아빠의 얼굴.
그리고 그 손.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손바닥을 펴보았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이 손에
아빠의 기억이 겹쳐진 것 같았다.

아빠는 그 손으로
나를 키우고,
나를 다독이고,
말보다 먼저 사랑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자랐다.


말보다 오래 남는 것.
그건,
손이었다.

지금은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지만,
그 온도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때로는 내가 지칠 때,
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안아줄 때
그 기억은 조용히 깨어나
나를 다시 다정하게 만든다.


아빠,
그때 당신이 건넸던 그 손길,
저는 아직도

제 마음 안에서
살며시 붙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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