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

by 나무를심는사람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나를 잊지 않고 바라봐 준 마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딸기 우유보다 초코 우유를 좋아했고,
김밥보다 유부초밥을,
뜨거운 국물보다 미지근한 미역국을
더 잘 먹었다.

아빠는 그걸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항상 정확히 맞췄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소풍 날 도시락을 열었는데
맨 위칸에 유부초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엄마는 바빠서 도시락을 못 싸주셨고,
아빠가 아침 일찍 싸놓은 도시락이었다.


수줍게 펼친 뚜껑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득했던 그 도시락은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아빠는 전날 밤
인터넷으로 ‘유부초밥 도시락 싸는 법’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셨다고 했다.


그건 도시락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그때는 말하지 않았어도
아빠는 알고 있었다.


겨울엔 군밤보다 군고구마를,
우산보다 후드 달린 패딩을,
말보다는 옆에 앉아주는 걸 더 좋아했던 나를.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했고
기억한 걸 잊지 않고
그때그때 건넸다.

그건 사랑이
얼마나 세심하고 조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반면 나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느 날은
내가 초코 우유 대신 딸기 우유가 마시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고,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다음날 두 가지 맛을 모두 사 오셨다.

그날 내가 느꼈던 건
“왜 이렇게 집착하세요?”
라는 감정이었다.

나는 자꾸 변했는데,
아빠는 늘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꾸준함이,
그 고집스러움이
사랑이었다는 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 앞에서
마음을 열게 된다고 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
가만히 보고 있어주는 사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를 잘 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를 떠올린다.


슈퍼에서 고르던 두 개의 우유,
나보다 먼저 내 취향을 챙기던 손길,
그 사소한 다정함이
얼마나 큰 안심이었는지를.


아빠,
저는 당신이
그토록 제 마음을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걸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그땐 그저

아빠니까 아는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만큼 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이었죠.


이제는 저도

누군가의 마음을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다정함을
그렇게 이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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