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머무는 계절

by 나무를심는사람

사람의 마음엔 계절이 있대.
누군가는 봄을 품고 있고,
누군가는 겨울 속을 걷고 있다고.
그리고 어떤 계절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더라고.

내게 그런 계절은 가을이야.
선선한 바람, 노랗게 물든 나무들,
해질 무렵 유난히 긴 그림자.
그 모든 것들이
어릴 적, 아빠와 걸었던 골목길을 데려오거든.


그날도 그랬어.
무심코 창밖을 보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니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 같은 것.

그 기분을 끌어안은 채 노트를 펼쳤더니
이런 글이 있었어.

“가끔 어떤 계절은
누군가와 함께였기에 더 선명하게 남는단다.
그 계절이 다시 올 때면,
그 사람이 마음에도 다시 피어난단다.”


나는 숨을 잠시 멈춘 채
그 문장을 바라봤어.
마치,
내 마음이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말이었거든.


기억났어.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소풍 날,
아빠는 일이 바쁘다더니
놀랍게도 소풍지까지 몰래 찾아왔었지.
멀리서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 모습,
그때는 왜 그게 그렇게 창피했던 걸까.
그 모습을 못 본 척하고,
친구들과만 어울리려 했던 내 모습이
이제 와서 너무나 또렷하게 떠오르더라.


그 순간,
내 안의 가을이 말을 걸었어.
“그때의 아빠는,
그냥 너와 같은 하늘을 보고 싶었던 거야.”


기억 속에 머무는 계절은
때로 우리에게 용서를 배우게 해.
스스로를, 그리고 누군가를.
지나간 날들을 조용히 꺼내어
이해하게 만들지.


그래서 요즘,

가을이 오는 게 더는 아프지 않아.
이젠 조금 따뜻해졌어.
그 계절 속에 아빠가 함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지금, 천천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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