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걱정하는 마음

by 나무를심는사람

“아직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빠는 벌써 마음을 쥐고 있었다.”


어릴 때는
내 기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
엄마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진짜 먼저 걱정하던 사람은
언제나 조용히 한 발짝 뒤에 있던 아빠였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 있었다.
나는 준비한 글을 다 외우지 못해
속으로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잘하겠지 뭐.”
“그냥 하면 되지.”
주변 친구들처럼
나도 겉으론 태연한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은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아침,
아빠가 내 방 문 앞에
작은 쪽지를 붙여 두었다.

“하윤아, 외운 게 생각 안 나면 그냥 네 마음을 말해도 돼.
그게 더 진짜 너일 테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쪽지를 가방에 넣었다.


결국 발표 날,
원고를 중간에 잊어버렸고
나는 허둥대다가
준비했던 마지막 문장을 건너뛰고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그건 원래 연습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날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 이야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날 아빠가 어떻게
내 마음속을 먼저 알아차렸는지.

아무 말도 안 했고,
속내를 들킨 적도 없는데
아빠는 어쩐지
늘 내가 넘어질 자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끓어
제일 자신있던 시험에서 실수한 날,
세상 제일 친한 친구와 오해로

사소한 일에 크게 다투고 돌아온 날,
비 오는 날 우산을 손에 쥔 채로
혼자 비를 맞고 싶었던 날.

아빠는 그런 날을 알고

언제나 말없이 감싸주었다.


내가 미처 걱정할 틈도 없이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
마음보다 앞서 마음을 읽는 사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 사랑이었구나 싶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마음속에 데려다 두었다는 뜻이니까.

걱정은 애정이 머무는 자리였고,
아빠는 언제나
그 자리를 비워두지 않았다.


어른이 되니
걱정을 받는 일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런 말로 마음의 거리를 두려 할수록
문득 아빠가 떠오른다.


말없이
그저 작은 쪽지 하나로,
따뜻한 국 한 그릇으로
내 안의 혼란을 먼저 알아보던 사람.


아빠,
당신은 늘 저보다 먼저
제 마음을 걱정하셨죠.

저는 아직도
그 마음의 깊이를 다 알진 못해요.

하지만 이제는
그 걱정이 부담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랑이었단 걸
조용히 배워가고 있어요.


저도 이제
누군가의 마음을
말보다 먼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마음 속 여전히 살아있는 아빠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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