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이 얼굴을 스치면, 슬픔은 잠시 말을 멈췄다.”
울면 안 된다고 배운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소한 일로 우는 건 창피한 일이라 여겼고,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꾹 참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만은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주 울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체육시간에 넘어져 손바닥이 까진 날이었다.
그날따라 기분도 좋지 않았고,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던 친구 앞에서
엎어져버린 바람에
눈물이 쏟아질 듯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외출 중이었고,
현관문을 열자
아빠가 작은 손수건을 들고 나왔다.
“다쳤다며?”
그 짧은 말에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작은 약을 발라주고
손끝으로 상처를 감싸듯 눌렀다.
그다음엔
내 뺨에 흐르던 눈물 자국을
조용히 손등으로 닦아주었다.
그 손은
말 한마디보다 더 따뜻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그런 순간이 있었다.
시험을 망친 날,
친구와 멀어진 날,
그냥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진 날.
아빠는 내 눈물을
절대 이유부터 묻지 않았다.
“왜 울어?” 대신,
늘 먼저 다가와
눈을 바라보거나,
어깨를 감싸 안거나,
그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그 순간 누군가 곁에 있어줬는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으니까.
그리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은
늘 그 슬픔을 다 안아줄 수 없을지라도
‘혼자가 아니야’라는 마음을
가장 조용히 전해주는 방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는 날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그 손이 없다.
그래서일까,
더 조심스럽게 눈물을 감추게 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기억한다.
아빠의 손끝이
내 눈물을 닦아주던 순간을.
아무 말 없이,
상처보다 먼저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그 다정했던 손을.
아빠,
지금은 제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당신이 닦아주었던 그 많은 눈물들이
제 마음을 다정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요.
저는 그 기억을 품고
오늘도 조금은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용히 다정하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