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에 관한 모든 것
블로그에 학교 얘기는 거의 안 하는데 문예창작학과 나왔다는 내용을 어떻게 찾으셨는지, 가끔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작가가 꿈이라서, 소설 쓰고 싶어서, 글밥 먹고 사는 게 꿈이라… 다양한 이유로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고 싶은데 실제 도움이 되는지, 가면 뭘 배우는지 등.
오늘은 문예창작학과 얘기를 해볼까 한다.
<문예창작학과>는 이름 그대로 '문예를 창작하는 학과'다. '문예(文藝)'란 문학과 예술, 그중에서 주로 문학을 이르는 말로, 미적(美的) 작품을 창조하는 일을 뜻한다.
한때 문예창작은 그저 국어국문학과 수업 중 한 과목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 때는 '방송대본론'을 제외하곤 거의 순수문학에 관련된 수업이 많았는데, 요즘은 '미디어 글쓰기'와 같이 보다 현실적인 내용의 수업이 많아졌다. 그렇지, 학과 수업도 시대에 발맞춰 가야지.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에 문창과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은 사이버대학에도 학과가 있을 만큼 꽤 많아졌는데,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 : 현재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대학교
-예술대학 소속: 단국대학교, 중앙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인문대학 소속: 동덕여자대학교, 명지대학교, 한신대학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분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기대학교, 협성대학교, 숭실대학교, 조선대학교
-Artech College 소속: 계명대학교
그 외 문예창작과라는 이름은 아니지만ㅡ
두원공과대 '방송작가전공', 서울예술대학의 '극작전공', 장안대학교의 '미디어스토리텔링과 / 디지털문예창작과'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창작전공',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시나리오극작과', 한국영상대학교 '미디어창작과' 등이 있다.
문예창작학과에서는 뭘 배울까?
학교마다 커리큘럼은 다르겠지만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이론과 창작(실습).
글이란 글은 종류별로 다 써보게 될 텐데 시, 소설, 방송대본, 영화 시나리오, 평론, 미디어 등 창작 수업도 분야가 다양하게 나뉜다. 수업 스타일은 교수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문창과 수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창작은 대게 출석률 10% 외 90%는 본인의 창작물로 학점이 매겨진다.
실력을 떠나, 글쓰기 자체에 흥미가 없다면 창작 수업에서 버티질 못한다. 자다 깨서 비몽사몽간에 A4 2페이지 정도 가득 채울 자신 없으면 문창과 갈 생각 말라고 조언한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듣는데 진심이다. 글쓰기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운동은커녕 땀 흘리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 체육대학에 진학했다고 생각해 보라. 운동 신경이 있고, 없고는 다음 문제다. 글쓰기 재능? 손가락에 관절염 걸리기 직전까지 쓰다 보면 언젠가 는다. 그렇게까지 노력하려면 애초에 관심이 우선이다. 관심을 넘어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절박함이 있으면 더 좋고.
무엇이든, 아는 것만 물어보세요.
문예창작학과에 가면 글을 잘 쓰게 될까?
문창과에 가면 글을 잘 쓰게 될까? 내 동기, 후배들만 보더라도 정말 성실히 학교 다녔지만 지금도 참담한 수준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저 문학이 좋아서 다녔던 친구들이고 애초에 졸업하고 글밥 먹고 살 생각도 안 했던 이들이다. 뭐 어때. 좋다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다소 뻔한 답이지만 본인 하기에 달려 있다. 물론 재능도 포함되긴 하지.
강의가 실력 향상에 대단히 큰 도움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수업이 원래 그렇다. 혼자서 탐구하는 곳이고, 교수는 거들 뿐. 헬스장 트레이너의 역할 정도라 보면 된다. 올바른 자세 알려주고 한 번씩 피드백만 해줄 뿐, 결국 바벨을 드는 건 자신의 몫이다.
교수가 누구냐 보다 대학교는 분위기가 훨씬 중요하다. 명문대의 기준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와 선후배들이 수업 중간중간 도서관에서 책을 보느냐, 아니면 곧장 PC방으로 달려가느냐에 따라 내 학교생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유유상종이겠지만, 분위기도 무시 못 한다. 그나마 요즘 시국엔 학교 자체를 못 나가게 됐지만. 전국 모든 대학이 죄다 '사이버'화되어버린 요즘이다.
문예창작학과 200% 누리는 방법
: 문창과에서 확실히 실력을 쌓으려면
대학교의 최대 장점ㅡ
첫째, 그 분야 전문가가 교수로 있다는 것.
둘째, 도서관이 있다는 것.
셋째,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
대학생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 혜택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일단 틈만 나면 쓰고, 쓴 글을 가지고 교수님을 자주 찾아뵙도록 하시라. 가능하면 자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그랬다. 군대 가기 전까진 이성복 선생님 연구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제대하고는 소설가이신 김원우 선생님을 엄청 못살게 굴었고(사랑합니다, 선생님).
군대 가기 전 학술부원들과 함께 만든 자료집 <신춘문예를 위하여>를 발행할 때는 학과 모든 교수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원고를 부탁드리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학교 분위기에 따라. 또 교수님 성격에 따라. 정도껏, 그리고 예의를 지켜서!
등록금 아깝지 않으려면 도서관을 최대한 활용하시라. 어차피 문창과 수업 제대로 따라가려면 수업 시간 외에는 도서관에서 살아야 한다. 리포트 한 편을 쓰려면 최소한 책 10권 정도는 읽어야 하니까. 시 한 편 읽어주고 '좋지? 리포트 써와!'하시는데, 뭘 알아야 쓰지. 게다가 나 학교 다닐 때 리포트는 최소 3장 이상이 기본이었으니, 도서관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갈 때 책 반납, 안에서는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최대한 읽고, 나올 때 다시 대출. 그리고 찾는 책이 없으면 꼬박꼬박 구매 신청하고.
졸업 후 진로, 장래성
내 동기들이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지만. 글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나, 소설가로 데뷔한 황현진, 그리고 방송작가 이선정. 나머진 다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그래도 비율로 따지면 30%가 글쟁이다.
후배들 중에도 글밥 먹고 사는 이들이 꽤 많다. 프리랜서 작가, 여행 작가, 기자, 방송작가들도 많고 출판사에 근무하기도 하고.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후배들도 몇 있다. 마케팅 쪽도 창작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문창과 취업률은 몰라도 사회에서의 쓰임은 확실하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수업의 절반이다 보니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라면 어디든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 중 하나기도 하고.
그래서 문창과, 가? 말아?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자다 일어나서 주절주절 A4 두 장 가득 채울 자신 없으면 일찌감치 포기하시길.
희망보단 포기하라는 식으로 조언을 해주는 편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다른 일반 학과와는 수업 방식부터 다르다. 절반이 창작이고, 창작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미술도 그렇고, 음악, 체육, 연기 등 예체능 분야가 다 그렇다.
둘째, '그 분야 어려워. 힘드니까 포기해' 이 말 듣고 진짜 포기한다면 애초에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뜯어말려도 기어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진짜 좋아하는 거다. 그 정도는 미쳐있어야 뭘 해도 성공…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졸업은 할 수 있지 않겠나.
이 분야에서 밥 한술 더 뜬 선배랍시고 해주고 싶은 꼰대 잔소리는 한 트럭 더 남았지만 집어치우고,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어설프게 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시라."
본인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재미는 보장한다. 진짜 겁나게 재밌다. 적성에만 맞으면. 코로나만 끝난다면 동기들과의 생활도 즐거울 것이다. 문창과 지원하는 이들은 다른 학과에 비해 유난히 또라이들이 많거든.
또라이들 싫다고? 그들 눈엔 당신도 또ㄹ. 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