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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Feb 02. 2021

내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핵심 비결과 두 가지 스킬

사람의 첫인상은 불과 3초 만에 결정된다. 심지어 호감도는 뇌에서 0.3초 만에 판단한다.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는 나중에 제시된 정보에도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시된 정보가 추후 알게 된 정보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 현상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 부른다.



두효과는 사람의 인상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적용된다.

영화의 첫인상은 그래도 판단 시간이 다소 후한 편으로, 5분 정도 주어진다.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시간이다. 도입부 5분이 재미없으면 대게 끝까지 지루할 확률이 높다.

소설도 마찬가지. 독자를 사로잡으려면 첫 페이지, 첫 단락, 특히 첫 문장이 매우 중요하다. 임팩트 넘치는 시작으로는 알베르 카뮈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밖에,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부조리와 자살>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 평이한 문장 하나로 주인공의 성격, 모친과의 관계는 물론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예고까지 한 번에 설명했다.

'오직 하나뿐인 철학적 문제, 자살.' 이 역시 강렬한 첫인상이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짧은 글의 도입부는 어떨까? A4 기준 1~2페이지 분량 내외의. 신문 기사에서는 도입부를 리드( lead)라 부르는데, 주로 본문 내용을 압축해 전달하는 목적으로 쓰여진다. '어제,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자세한 내용은 지금부터 알려줄게.'라는 식이다. 그래서 리드의 정석대로 쓰인 기사라면 첫 문단만 읽어봐도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에세이라든지, 칼럼 등 특정한 형식의 글도 마찬가지다. 첫 문단의 역할은 다음 문단, 또 그다음 문단을 계속 읽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 방문자를 최소 10초 이상 머물게 만들어야 내가 정성들여 만든 콘텐츠가 끝까지 읽힌다.


기왕이면 도입부가 알베르 카뮈 쌍싸다구 날릴 정도로 매력적이면 좋겠지만, 의외로 단순하고 평이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시작을 할 수 있다. '오~ 맞아, 맞아.'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문장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기술, 바로 '공감'이다.




매력적인 글쓰기의 기술
글의 첫인상을 좋게 만드는 공감의 기술


공감은 도입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강의에서도 시작부터 청중의 공감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분위기는 물론 몰입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강사(혹은 저자)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날씨가 추워졌다느니,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느니 하는 온갖 시답잖은 이야기를 굳이 먼저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독자나 청중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쓰세요'라는 조언은 빤하고, 이 글에서는 공감을 끌어내는 두 가지 심리학적 기술을 다루려 한다.

글쓰기뿐 아니라 강의나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에서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니 익혀두어 나쁠 거 없다.



자명한 진술(truism) 기법

인스타그램에서 본 책 광고인데, 읽고 감탄했다.

글의 흐름도 자연스럽고 세련되었음은 물론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 그물의 이름은 <자명한 진술>이다.

<요르가즘>은 현대미술을 전공한 요가 강사의 생활 수련기를 담은 책으로, 요가에 대한 글과 함께 섹슈얼하고 매력적인 그림들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할 수 있는 행위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글을 읽거나. 어떤 독자도 이 두 가지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무의식에서는 '맞아'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는 '그거면 충분하다'며 독자를 다독이면서 동시에 그물을 한 단계 더 촘촘하게 짠다.

'어느날 찌뿌둥한 무기력이 극에 달했을 때, 이 책을 보다 무심코 자세를 따라해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음흉하게 웃고 있다'며 고도의 전략을 너스레인 척 마무리한다. 고수다!

<자명한 진술(truism)> 기법은 내담자가 경험하고 있는 객관적 사실이나 자명한 현상을 진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트랜스(trance, 최면) 상태로 유도하기에 쉬운 조건을 만든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당신은 지금 의자에 앉아 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을 깜빡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진술하면서 듣는 이가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아래에 소개할 기법과 같은 역할을 하니 심리학적 원리는 한꺼번에 설명하겠다.





당신이 강남 어느 학원에 '글쓰기'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가정하자. 먼저 인사를 건넨 강사가 이렇게 말한다.


-요 며칠 날씨가 부쩍 추워졌어요. 겨울은 겨울이네요.
-연말이다 싶더니 벌써 해가 바뀌고 1월이네요.
-오늘 글쓰기 기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이렇게 강남까지 저를 찾아와주셨습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답잖기까지 한 잡담이다. 그런데, 이 잡담에도 의도가 숨어있다.



'그래. 그렇지.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작
Yes-SET


예스-셋(Yes-Set) 기법은 어디서 강의 좀 한다는 강사들도 자신도 모르게 많이 쓰는 기술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나 반드시 '예'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세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주로 '감각'이나 '시간'을 활용하면 구성하기 쉽다. 앞의 예시를 보면ㅡ

'추워졌다', '1월이다', '나를 찾아왔다' 모두 '예'라고 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다.


<자명한 진술>과 <예스 세트>, 이 두 가지 기법은 사용하기엔 매우 쉽지만 효과는 굉장하다. 간접 최면의 한 형태로 예라는 대답의 반복을 통해 다음 제안도 쉽게 동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딱 세 번! '그렇지, 맞는 말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 그다음 멘트에도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연스럽게 강사나 저자의 말에 수긍한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기법은 강의에서는 물론 마케팅이나 세일즈 등 설득 기제로 유용하게 쓰인다. 마케팅이나 영업을 제대로 하려면 심리학도 반드시 공부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단한 심리학적 트릭 몇 가지만 다룰 줄 알아도 글이든 말이든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문단을 꾸밀 때 주의할 점

글의 첫 문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술이 있으나, 어떤 시작이든 공통적으로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장황한 수식어로 문장이 길어져서는 곤란하다.

초보들의 경우 비문, 오문이 될 확률이 높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

둘째.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전문 용어도 마찬가지로 금물.

시작부터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독자들은 읽기를 포기한다.

마지막. 분량이 짧고, 단순 사실 전달만 목적이라면 굳이 리드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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