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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Mar 09. 2021

텍스트 프로파일링의 세계

글쓴이가 언어에 남긴 지문

언어에도 일종의 지문(finger print, 指紋)*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문장, 단어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긴다.

이 말은 글을 보면 글쓴이에 대한 프로파일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글에서는 내용 외에도 글쓴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읽을 수 있는데,

성격과 기질은 물론 습관이라든지 집필 당시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묻어나도 한다.

심지어 정리 병리학적 증상까지도 일부 엿볼 수 있다.

이것이 '텍스트 프로파일링'이다.


*언어 지문 :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표현.
**profiling : '자료수집'이라는 뜻으로, 범죄 유형을 분석하는 수사 용어로 쓰이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특정 단서를 통해 대상의 성격, 행동 패턴, 습관 등을 유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I SEE U : 텍스트 프로파일링의 세계
글에서 엿보이는 작가의 심리, 성격 외



글의 내용 너머로 저자를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이 있다.

감각 기관이나 시제, 특정 단어나 표현 상의 특징을 찾는데, 자주 반복되는 단어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선호표상채널>

우리는 신체 감각 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느끼고, 혀로 맛보며 감각하는 것이다. 누구나 여러 감각 기관을 사용하지만 개인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 특정 기관에 더 많이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선호표상채널이라 부르는데, 언어 표현에서 이 선호도가 드러나난다.

똑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는데, '시각', '청각', '체감각', '지각(내부언어)' 이 네 가지로 나뉜다.


"지난 휴일에 뭐 하셨나요?"

이 질문에 누구는 눈으로 본 정보 위주의 시각적인 표현을 쓰는가 하면 청각적인 표현, 혹은 몸으로 체험한 감각이나 감정 위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내부 언어형은 주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 위주로 표현한다.

이 선호표상채널이 일치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 다른 채널의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도 서로 불편하다 여길 수 있다. 같은 글을 읽고도 평가가 나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어제, 오늘, 내일 : 시제

대화를 나눌 때 유난히 과거의 일을 자주 꺼내는 사람이 있다. 반면 오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고. '내일'을 말하는 이도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비전이다.


"언제까지 설탕물만 팔고 있을 겁니까?"


스티브 잡스가 펩시 사장 존 스컬리를 애플로 영입하기 위해 했던 질문이다. 지금(현재)에 머물지 않고 다른 내일(미래, 비전)을 꿈꾸라는 제안인데 멋지다면 멋지고, 또 무례하다면 무례한.


누구나 시제는 다양하게 쓰지만, 반복에서 프로파일링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주로 관계 중심적인 사람들이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주도적이고 리더십이 강한 이들은 대게 현재 시제를 많이 쓴다. 독창적이고, 창의력이 강한 사람들의 경우 말과 글에서 미래 시제에 대한 표현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 와중에 분석적인 유형은 과거와 현재, 미래 시제를 통합적으로 쓴다. 생각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이유기도 하다.


"우리가 어제까지 이랬으니 오늘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고, 이 부분을 바꾸지 않으면 아마 내일도 똑같을 거야."


이런 식. 우리 사회에는 이래서 분석적인 사람이 꼭 필요하다.



특정 표현에서 읽히는 기질, 성격, 감정 상태

'반드시 ~해야 한다', '결코', '기필코', '확실히'

이런 표현에서는 강박적 사고가 읽힌다.

스스로도 불합리하거나 바보 같음을 알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어떠한 생각이 되풀이해서 떠오르고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이 강박이다.


'지친다', '힘들다', '애쓰고 있다', 남들도 다 그렇다', '의미 없다' 등 무기력과 우울, 염세적인 태도가 묻어나는 표현도 있다. 거꾸로 지나치게 활달해 보이거나 자꾸 스스로 의지를 불태우는 표현에서도 정반대의 심리 상태가 엿보이기도 한다. 뭐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극단적인 표현에서는 반대 방향으로도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보인다.


어느 연예인의 부도덕한 행적을 나열한 글인데,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아무 근거 없는 망상으로 보인다.

이런 내용은 어떤가?


어떤 기사에 달린 댓글인지 유추하기도 힘들 정도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네 개의 댓글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내 글을 봉준호가 입수하면 기생충이 무한 번식하는데, 안되는 집안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건 트럼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맥이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논리의 흐름이 깨진 '와해된 언어(disorganized speech)'는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물론 이런 댓글 몇 줄만 보고 망상장애다, 조현병이다 진단할 수는 없다. 정신병리학적 증상은 반드시 전문가가 다양한 진단 프로그램과 상담을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주변에 누가 이런 글을 썼다면 상담을 권해볼 수는 있겠다. 심리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아니 심지어 전문가라 하더라도, 고작 글 몇 줄을 보고 상대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텍스트를 통한 프로파일링의 주의점과 활용 가치


글에서 표현 방식이나 단어 선정을 통한 프로파일링을 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프로파일링 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어느 특정 표현을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떻다고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표적인 프로파일링 단서가 되는 비언어(바디랭귀지)에서도 마찬가지. 팔짱을 끼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거부', '거절'의 메시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추워서 몸을 감싸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링을 할 때는ㅡ

첫째, 맥락을 봐야 한다.

특정 표현이 쓰인 전후 맥락까지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둘째, 반복 여부.

'우울하다'라는 표현을 한 번 썼다고 해서 '우울증이구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글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자주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면 유심히 볼 필요가 있고 그마저도 반복에만 의미를 두기보다 전체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말과 글에서 상대를 읽을 때...

프로파일링은 상대를 읽는 수단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은 금물이다. 단지 상대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될 뿐이다. 비유하자면, 나침반 정도라 여기면 좋겠다.

길을 나설 때 최소한 동서남북 정도만 알아도 먼 길 돌아갈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프로파일링은 딱 그 정도로만 활용하면 충분하다. 성격, 기질을 진단하는 각종 심리 진단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로 가는 방향 정도나 알려줄 뿐, 내비게이션처럼 상세한 길까지 안내해 주리라는 믿음은 어리석다.

프로파일링이나 진단 도구에 대한 맹신은 고정관념에 매몰되게 만들고, 인식을 왜곡시켜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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