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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Mar 26. 2021

심리치유를 위한 글쓰기의 이면

자기 탐색의 부정적 측면

글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일기장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을 쓰기만 해도 어느 정도 위로와 심리 안정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글은 쓰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글은 내 속에서 잔뜩 엉켜있던 생각들도 쉽게 풀어내준다. 풀어낸다는 표현 그대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복잡해 보였던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심리 상담 분야에서도 내담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치유하는데 유용하게 쓰이는 글쓰기. 그러나 이 글쓰기가 마냥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만약 블로그든 일기장이든, 지금 당신이 힘든 이유를 타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글을 쓰고 있다면 당장 멈추시기 바란다.




글쓰기의 부정적인 측면

글쓰기가 힐링, 치유가 아닌 독이 될 때


글쓰기는 특히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 매우 유용한 도구이긴 하지만 때로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상투적인 예지만 칼을 요리사가 쥐고 있느냐, 연쇄 살인마가 쥐고 있느냐의 차이라 하겠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날이 바짝 선 말에 찔린 상처는 평생을 간다. 그래서 혀끝이든, 펜 끝이든 내 말이 누군가를 향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때 그 '누군가'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서툰 요리사가 칼에 자기 손을 베기도 하듯이, 내 기분과 감정을 글로 표현할 땐 특히 조심히 다뤄야 한다.


글을 통해 강화되기도 하는 부정적 감정

글은 나를 객관화시켜 보여주는 좋은 수단이다. 내가 쓴 글을 통해 나를 타자(他者)처럼 보며 '이래서 힘들었구나,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문제로부터 탈피한 기분이 들고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탈출구가 보이기도 하고. 글쓰기는 가장 쉬운 메타인지* 방법이기도 하다.

*metacognition :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며,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


하지만 일부의 경우 글이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더 강화시켜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그 인간만 아니어도, 내가 이렇게 힘들진 않을 거야.
지금의 내 상태는 OO 때문이야!


만약 회사에서 사이가 안 좋은 부장이 있으면, 힘든 회사 생활이 죄다 그의 탓이라 여길 수 있다. 일시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으나, 이를 글로 자주 표현하게 되면 해결을 위한 인지가 아니라 부정적 인식만 더 강화된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는 다 그 사람 때문인 거 같고, 그 와중에 자기 검열은 쏙 빠진다. 모든 관계는 상호 작용이라지만,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이라 해도 마찬가지. 그 사실을 자꾸 되새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자기 분리가 안 된 상태에서 내 감정에만 깊이 몰입해 남 탓, 세상 탓만 하다 보면 점점 그 속에 함몰되기 쉽다. 상대에 대한 화, 분노는 비슷한 감정들을 끌고 온다. 증오, 환멸, 짜증, 불쾌감, 배신감, 실망 등. 그리고 상대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나면 그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든지 하는 비관, 비참함, 불행함, 무력감 등.


이런 감정에 한번 빠지면 스스로는 헤어 나오기 힘들다. 감정의 연쇄작용에 빠지고 있는 상태를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고, 자기감정에 대해 자꾸만 합리화를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내게 일어나는 화, 분노를 당연하다 여기는 순간 합리화의 덫에 빠져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렵게 된다. 이 과정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 더 쉽게 강화가 된다. 글쓰기가 독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지금 힘들고,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이유를 찾는 행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분석 대상은 철저히 나 자신으로만 국한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남에게서 원인을 찾고 환경과 세상을 자꾸 탓하다 보면 원망과 분노만 커지게 된다. 실제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과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변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이켜보라. 이 세상이 과연 공평한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 논리적으로 움직이던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태도, 즉 전략을 바꾸면 상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을 바꾸려면 먼저 나부터 바뀌면 된다. 그편이 가장 빠르고, 또 쉽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꾸려 드는 전략은 어리석다. 나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의 잘못이 99.99%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내가 개선해야 할 0.01%를 찾으려 애써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발전한다. 상대가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발전이고 성장이다. 내가 아니라.


글을 쓰든, 명상을 하든 언제나 마음의 시선은 나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한다. 제발 남 탓, 세상 탓에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 마시라.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보라. 마음의 시선이 늘 내게 향하도록 하라. 글을 쓰는 이유는 남 탓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객관화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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