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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Mar 31. 2022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환상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이 뭘까’ 질문해보면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세 가지 정도다.   


 1. 그런 재능은 타고 나야 한다.

 2. 많이 써봐야 한다.

 3. 책도 많이 읽으면 좋다.     


 대부분 글쓰기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 믿으며, 그나마 훈련 방법으로는 많이 읽고 써봐야 한다고 여긴다. 실제 강사들이나 현직 작가들이 글쓰기와 관련해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의 핵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환상

 일찍이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도 글쓰기 핵심 훈련 방법을 ‘삼다(三多)’로 요약한 바 있다. 이것이 작문 실력을 향상시키는 핵심이자 거의 유일한 비결처럼 전해지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정말 글쓰기에 왕도는 없으며, 그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소리다. 수영을 배우려는 당신에게 강사가 이렇게 말한다.

 “일단 물에 들어가세요. 물 안에서 혼자 허우적대다 보면 당신도 언젠가는 수영을 잘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무작정 물에 들어가기만 해도 정말 수영 실력이 늘까? 물론, 간혹 혼자 연습해도 실력이 향상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운동신경이 타고난 사람들. 글쓰기도 마찬가지. 문장을 지어내는 감각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있다.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김연아, 박지성, 손흥민 등 운동에도 천재들이 있듯 작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은 책 몇 권만 읽어봐도 문장 다루는 기술을 놀랍도록 쉽고 빠르게 익힌다.

 그러나, 세상에 이런 천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타고난 문장 감각이란 차라리 환상이라 여기는 편이 마음 편하다. 보통의 감각을 가진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써봐도 출발선을 크게 못 벗어난다. 그런데도 혼자서 무작정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고? 대단히 무책임한 조언이다.

 그렇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은 정말 무용(無用)할까? 그렇진 않다. 구양수가 말한 삼다(三多)는 분명 문장력 향에 도움이 된다. 많이 읽으면서 어휘력이 늘고, 많이 써보면서 글 근육이 붙는다. 또한 오래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글은 담는 폭이 넓어지고 문장은 더욱 더 깊이를 가진다. 다상량의 효용성은 뇌과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뇌의 지도를 바꾸는 뇌가소성                    

 인간의 뇌는 환경에 대한 감각을 통해 성장한다. 우리는 동물과 달리 미완성 상태에서 태어나는데, 이 중에서 시각이 가장 많은 감각의 영역을 차지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늦게 발달한다.

 태아의 뇌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감각은 청각이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양수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시각과 후각, 촉각은 누구나 비슷하게 성장하지만 청각 만큼은 가족의 유대 관계를 통해 특별하게 발달하는 것이다.

 태아 때부터 시작된 감각에 대한 경험은 태어난 이후 다시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소위 ‘머리가 좋다/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은 뉴런과 뉴런 간의 소통이 얼마나 원활한가의 차이에서 온다.

 시냅스 발달은 4세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이후 완만해지면서 6세부터가 되면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자주 경험하는 자극을 남기고 불필요하다 여기는 정보는 끊어낸다. 다소 어려운 내용인데, 핵심은 ‘인간의 뇌는 바뀐다’라는 것이다. 감각에 의해서.


 실제 눈을 가리면 닷새 안에 청각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차단된 시각을 다른 감각인 청각이 대신하는 것이다. 눈을 뜨면 시각을 처리하는 뇌 부위가 다시 원활해진다. 뇌의 지도가 변화한다는 증거다.

 뇌의 자극에는 생각도 포함된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는 것도 뇌의 지도를 바꾼다. 지도가 바뀌면 그 방향으로 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뇌가 움직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수월해진다. 이를 전문 용어로 뇌가소성(腦可塑性 / neuroplasticity)이라 부른다.

 뇌가소성은 뇌세포와 뇌 부위의 유동적 변화를 의미하며, 성장을 마친 뇌가 그대로 안정화된다는 기존 연구에 반하는 결과다.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뇌는 계속 성장한다. 반대로 쇠퇴하기도 하고.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는 끊임없이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고 오래된 세포는 쇠퇴하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뇌가소성이다. 강박장애 환자의 인지행동 치료 과정에서 뇌가 변화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한 것이 최초로 입증한 사례다.



 다독, 다작, 다상량은 글쓰기에 대한 기본기나 요령 없이 무턱대고 따라 하기만 한다고 해서 반드시 효과를 보기 어렵다. 어느 분야나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듯, 제대로 배우고 난 다음에야 반복도 의미가 있다.

 그저 많이 쓰면 좋다며 굳이 먼 길을 돌고 돌아갈 필요 없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요령만 익히면 짧은 시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달성할 수 있다. 어떤 훈련을 받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제대로 된 방법만 익히면 평범한 사람도 여간한 작가 못지않은 문장력을 뽐낼 수 있다. 부디 자신감을 가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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