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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Apr 04. 2022

필사는 과연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서두에서 언급한 [다독/다작/다상량]은 정석처럼 여겨지는 방법이지만 무턱대고 따라 해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해가 없도록 다시 강조하지만 기초도 없이 무턱대고 따라 하지 말라는 뜻이지 결국 글 근육을 키우려면 많이 읽으며 어휘력을 기르고, 반복적으로 써보며 글 근육을 키워야 한다.

 즉, 다독과 다작이 도움 되려면 제대로 읽고 써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정독(精讀)이다.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읽는다는 뜻이다. 정독을 할 줄 모르면 만 권의 책을 읽어도 변화와 성장이 더디다.

 그렇다면 ‘쓰기’에 있어서 ‘정(精)(1)’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필사(筆寫)’, 즉 베껴서 써보는 것이다. 필사는 글을 한자 한자 정성껏 옮기면서 내용을 꼼꼼하게 정독하는 행위다.

 필사를 하다 보면 문장과 문단을 다루는 방법, 글의 구조는 물론 맞춤법까지 두루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필사한 글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차츰 다양한 어휘와 표현력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기 시작한다. 굳이 머리로 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익힌다.

 또한 좋은 글을 필사하다 보면 작가가 집필할 당시 경험했던 의식의 흐름도 느껴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읽기만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 작가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되면서 깊은 몰입을 체험할 수 있다.


필사 제대로 효과 보는 법

 어떤 글을 베껴 쓰면 좋을까? 우선은 단순하게 접근하면 된다. 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면 해당 장르를, 논리적인 글을 쓰려면 칼럼이나 사설을 베껴 써보면 된다. 그리고 철저히 본인 기준에서 술술 편안하게 잘 읽히면 나와 잘 맞는 글이라 볼 수 있다. 글을 풀어내는 스타일, 길이, 문장의 리듬감이 내 스타일과 잘 맞기 때문이다.

 또한 중문(2)이나 복문(3)이 지나치게 많은 글이나, 문장 호흡이 긴 만연체보다는 주로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간결한 글이 좋다.     

 한편 필사가 실제로는 문장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그런 경우도 있긴 하다. 우선 정독이 아니라 단순히 베끼는 행위만 이뤄져서 그렇고, 혹은 베껴 쓰는 글에 문제가 있어도 필사는 헛수고가 된다.

 그 문제란, 첫째로 글의 수준이 안 맞았을 때다. 수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반대로 형편없거나. 중학생이 박사 논문을 열심히 베껴본들, 혹은 유치원생 수준의 글을 열심히 옮겨본들 의미가 없다.

 둘째, 좋은 글이라 할지라도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될 수 있다.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비유는 어떨까.

 유재석, 강호동, 전현무, 신동엽님(이하 존칭 생략)은 TV 시청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이제 막 방송인을 꿈꾸는 사회 초년생이라 가정해보자. 예를 들면 유재석이 공채 시험을 준비하며 열심히 강호동 스타일을 흉내 낸다면? 또는 전현무나, 신동엽을 따라 한다면? 필사로 효과를 못 봤다는 대부분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나와 맞지 않는 스타일의 글을 베껴 썼기 때문이다. 필사하기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물음이 난처한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스타일에 안 맞는 글의 필사가 꼭 헛수고라 보긴 어렵다. 글의 수준만 맞는다면 다른 스타일의 글도 가끔은 필사해볼 만하다. 또 다른 스타일을 익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는 내 화법에 어울리는 글을 옮겨 써봐야 도움이 된다.

 또한 글을 키보드로 옮기는 건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단순한 기계적 행위로 변질 될 확률이 높다. 마음에 드는 노트 한 권 사서, 좋아하는 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써나가시길 권해드린다.



1)  精 [정할, 정 / 찧을 정] 정성을 들여 거칠지 아니하고 매우 곱다. 깨끗하다, 정성스럽다.

2) 중문(重文) 두 개의 문장이 대등한 관계로 접속하여 이루어진 문장. ‘겨울이 가면 / 봄이 온다.’

3) 복문(複文) : 절(節)을 하나의 문장성분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 ‘철수는 영희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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