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개최한 무도회에 갈 수 없어 실망하고 있던 신데렐라 앞에 요정이 나타난다. 요정이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자 호박은 황금마차로, 생쥐들은 말로, 큰 쥐는 마부가 되었다. 남루하던 신데렐라의 옷차림도 예쁜 옷과 유리구두로 변신시켜주었다. 프랑스 작가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Cendrillon)>의 한 장면이다.
우리는 요정이 아니지만 원고 안에서 이 정도 마법쯤이야 누구나 부릴 수 있다. 헤밍웨이의 표현대로 걸레에 가까운 초고를 명문장으로 변신시키는 마법, 바로 퇴고다.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다 담아서 초고를 쓰고, 다음 적절한 구조에 담았다면 이제는 퇴고 과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일 차례다.
퇴고는 ‘밀고 두드린다’는 뜻으로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과는 무관하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자신의 시에 ‘밀다(推 퇴)’라는 표현을 쓸지, 아니면 ‘두드리다(敲 고)’라는 표현을 쓸지 고민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 고민을 하던 가도는 그만 자신을 향해 오는 한유(韓愈)와 부딪히고 만다. 고관이던 한유는 부딪힌 까닭을 듣고 나서 그를 꾸짖는 것도 잊어버리고 같이 고민하며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최고의 재미는 퇴고에 있다. 밀고, 두드릴수록 더 매끈하고 예리한 문장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 이 맛을 한번 느끼고 나면 그때부터 진정한 글쓰기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실제 코칭을 해보면 수강생들도 퇴고가 가장 힘들지만 한편으로 즐겁고 뿌듯하다고 말한다. 이는 비로소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들면 비로소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문맥부터 어휘나 문법, 맞춤법까지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찾는 눈을 가지면 좋은 글을 보는 시선도 생긴다. 그래서 퇴고는 단순히 글 한 편 잘 다듬는 목적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편 코칭을 하다보면 ‘퇴고를 아무리 해도 크게 바뀌지 않더라’하는 고민을 듣는다. 퇴고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봐야 한다. 단, 단순히 반복적으로 읽으란 뜻이 아니다. 한 번에 한가지 요소만 본다.
퇴고의 정석
1. 전체 흐름과 맥락을 본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빠진 부분은 첨가한다. 가식이나 허식, 과장되거나 조잡한 부분은 없는지를 살핀다. 빼더라도 흐름에 문제가 없다면 과감하게 뺀다. 꼬장꼬장하게 다 쥐고 가려고 욕심 부리면 글이 지저분해진다. 불필요한 지방을 빼야 몸에 탄력이 생긴다. 밤새워 고민해 쓴 문장이라고 버리기 아까워하니 백 번의 퇴고를 거쳐도 글이 나아지지 않는다.
2. 문단의 흐름과 완성도
1) 문단 간의 연결은 자연스러운가.
2) 중심문장과 뒷받침 문장 혹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는가.
3) 길이는 적절하고 균형이 잘 맞는가. 어느 한 문단만 지나치게 길진 않은가.
3. 문장의 완성도
1) 비문이나 오문은 없는가.
2) 조사(은/는, 이/가, 을/를, 의,와/과)가 한 문장 안에서 겹치지 않는가.
3) 한 문장이 너무 길진 않나.
4) 읽을 때 리듬(읽는 맛)이 살아 있는가.
4. 연결 고리와 세부 요소
1) 접속사
2) 지시대명사
3) 패턴 : 동어반복, 종결어미
처음에 전체 맥락에서 시작해, 문단, 그리고 문장으로 점차 글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면 이제는 다시 살짝 뒤로 물러나서 볼 차례다. 글의 흐름을 다시 한번 살피는데, 이때는 내용을 이어주는 접속사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구체적인 표현 대신 지시대명사로 뭉뚱그려 표현해버리진 않았는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동어반복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케팅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서 거의 모든 문장에 ‘마케팅’이 반복되면 지루함을 준다. 동사도 따로 읽어봐야 한다. 모든 문장의 종결어미가 ‘~이다’로만 끝나면 그 역시 독자들은 글이 지루하다 느낀다.
5. 맞춤법
맞춤법은 퇴고의 마지막 과정에서 본다. 중간중간 눈에 띄면 물론 고치면 되지만 띄어쓰기나 맞춤법 역시 하나의 과정으로 집중해서 봐야 한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매한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퇴고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해야 한다. 전체 맥락을 보고, 다음에는 문단, 그다음 문장, 다시 접속사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살피고 맞춤법은 가장 나중에. 이때 전체 맥락을 볼 때는 수정 후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또다시 봐야 한다. 전체 모양이 잘 잡혀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애초에 사람 모양이 아닌데 눈, 코, 입만 아무리 세련되고 예쁘면 뭐하나.
권장 다섯 번 이상,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 세 번 이상은 봐야 제대로 된 퇴고라 하겠다.
[퇴고방법 정리]
전체적인 맥락(내용) – 문단(연결, 구성, 길이) –
문장(주어와 동사, 수식어) - 접속사, 동어반복, 종결어미
- 여기까지 최소 다섯 번 이상 반복 후 마지막으로 맞춤법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 쓰기만 존재할 뿐이다.
-E.B 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