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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Apr 08. 2022

아무리 봐도 어디를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퇴고의 디테일과 꼼수

 “아무리 봐도 어딜 손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코치님이 콕 짚어주시니 이제야 보이네요. 왜 제 눈에는 안 보였을까요?”

 코칭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글을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면 좀처럼 수정할 부분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초고를 쓸 때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갔을 때도 퇴고가 어려울 수 있다. 공들인 원고에 애착이 생겨 흐름에 방해되는 단락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어느 한 문장에 꽂히면 다른 모든 부분을 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한다.

 퇴고는 체계적인 방법도 배워야 하지만 제대로 된 마음가짐부터 다잡아야 한다. 처음부터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는 겸손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그리고 멋진 문장을 쓰는 실력보다 내가 쓴 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 아울러 고쳐 쓰기를 귀찮게만 여기지 않는다면 글 근육은 는다. 재차 강조하지만 글쓰기는 운동과도 같다.

 퇴고 기술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각 과정별로 몇 가지 요령을 더 첨부하겠다.


[퇴고 1단계전체 흐름과 맥락]

 : 글의 맥락을 보는 방법

 문단은 중심문장과 뒷받침 문장으로 이뤄진다. 이때 각 문단의 중심되는 문장만 따로 나열해보면 흐름이 보인다. 문단별로 핵심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나열해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에 따른 근거나 예시가 명확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조형물에서 뼈대만 남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핵심적인 문장을 보면서 순서를 바꾸거나, 빠진 부분을 더하면서 다시 균형을 잡도록 한다.


[퇴고 2단계문단의 흐름과 완성도]

 문단 만드는 방법에서도 설명했다시피 한 문단을 SNS에 올린다고 생각하고 쓰면 문단을 구성하기가 쉽다. 한 문단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 하나만으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퇴고 3단계문장의 완성도]

 세 번째 문장을 검토할 때는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봐야 한다. 속으로만 읽다 보면 초보들은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한다. 특히 한 문장 안에서 조사(은/는, 이/가, 을/를, 의,와/과)가 겹치면 읽을 때 턱턱 걸리면서 리듬감이 떨어진다. 이 정도만 다듬어도 글은 훨씬 매끄러워진다.

 문장은 가급적 짧게 쓰라고 했지만 적당한 길이의 문장과 섞어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읽는 맛이 살기 때문이다. 너무 짧기만 한 문장은 퉁명스런 인상을 준다. 반대로 지나치게 긴 문장은 읽을 때 호흡이 가빠진다. 여럿으로 쪼개야 할 문장이 한데 엮이고, 온갖 수식어가 뒤섞이면 이해하기도 어려워진다. 긴 문장을 잘 다루는 노련함이 없다면 불친절한 글이 되고 만다.


[퇴고 4단계연결 고리와 세부 요소]

-접속사

 접속사는 문장과 문장 또는 문장 가운데서 두 성분을 이어 주는 말이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신경 써서 봐야 할 건 ‘순접 접속사’와 ‘역접 접속사’다.

 그러니 그래서 그러면 따라서 등은 순접(順接)으로 앞 내용을 그대로 받아 뒷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글 중간 중간 순접 접속사가 지나치게 많으면 글이 구차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등은 역접(逆接) 접속사라 부른다. 이전 내용과는 상반된 맥락으로 이어질 때 쓰는 연결 고리인데, 제대로 쓰면 독자들을 순간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과하면 정신 사납다. 이야기를 손바닥 뒤짚듯 엎치락 뒤치락하면 독자들은 대체 어느 면을 집중해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고 / ~며 / ~니까 / ~아서 등의 접속사는 ‘이음씨’라고도 부른다.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데 이 역시 너무 많이 쓰면 문장이 길어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의존명사 -

1. 사물, 일, 현상 따위를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

2. 사람을 낮추어 이르거나 동물을 이르는 말.

3. 그 사람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는 말.

4. 말하는 이의 확신, 결정, 결심 따위를 나타내는 말.

5. 전망이나 추측, 또는 주관적 소신 따위를 나타내는 말.

6. 명령이나 시킴의 뜻을 나타내면서 문장을 끝맺는 말.     

 ‘-것’에 대한 정의인데,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면 주로 1, 4, 5번의 의미로 많이들 쓴다. 문제는, 써도 너무 많이 쓴다. 고작 A4 한 페이지 분량의 칼럼 한 편에 많게는 스무 번씩 쓰기도 한다. 독서량 부족이거나, 쓰면서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경우다.

 내가 쓴 한 줄 한 줄이 너무 중요하다 여겨 무의식적으로 강조하고 싶을 때도 ‘것’을 많이 쓴다. ‘이래야 하는 것이다!’ ‘저래야 하는 것이다!’ 하고 말이다. 확신을 드러내며 강조할 수는 있는데, 모든 문장을 강조하려다 보면 그 어떤 문장도 강조가 되지 않는다. 내가 말한 1번부터 10번까지 다 중요하다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말해주는 편이 전달하기 쉽고, 듣는 입장에서도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지시대명사

 특정 사람이나 동물, 장소, 사물을 가리키는 말로 ‘이것, 저것, 그것, 여기, 저기, 거기, 이분, 저분, 그분, 이이, 그이, 누구’와 같은 말이 모두 지시대명사에 속한다. 제대로 사용한다면 언어를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시대명사는 크게 ‘이, 그, 저’로 구분한다. 화자 영역의 대상은 ‘이’, 청자 영역은 ‘그’, 둘의 영역 밖의 대상에는 ‘저’를 쓴다. 설명만으로는 어려운데, 예시를 들면 쉽다.

 쇼호스트가 상품을 직접 손에 들고 있을 땐 ‘ 제품을 보세요’ 한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다른 호스트가 들고 있는 상품을 설명할 땐, ‘방송 보시는 분들게  제품 뒷면도 한번 보여주세요’라고 한다.

 한편 독자가 알고 있다고 믿는 사물에는 ‘그’, 글을 쓰는 당신만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물에는 ‘이’를 쓰면 된다.

 지시대명사를 쓰려면 대상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도넛은 밀가루에 설탕, 계란등등을 넣어 반죽을 둥글게 빚은 다음 링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긴 빵이다. '이것'의 기원은 네덜란드다.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 ‘이것’이라고 지시대명사를 쓰려면 앞 문장에서 반드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써줘야 한다. 도넛을 가리킨다고 명시해야 뒤에서 ‘이것’이 도넛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짧은 글에서는 쉽지만 의외로 지시대명사를 모호하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세요. 자기들은 이렇게 안 한다. 나는 그런 적 없다. 말로는 그러면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거를 유기농이라고 팔아버린다는 거죠.

 나는 안 사 먹으니까 괜찮다? 이거는 인간의 도덕적인 측면을 완전히 버려버리는 거죠. 그런 것들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도덕적이지 않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그런 것들에 신경을 써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지금이라도 그런 부분들을 배워야지요. 그런 마음가짐을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일부러 쓴 예시문 같지만 놀랍게도 어느 대학 교수의 강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자기들’은 대체 누군지, ‘이렇게 안 한다’와 ‘그런 적 없다’에서 이런 행위와 그런 행위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지시대명사는 구체적인 의미 전달에 무엇보다 신경을 써야 하지만, 이 역시 자주 반복되면 글이 지루해지고 그 자체로 내용 전달을 어렵게 만든다.

 전라도에서 흔히 쓰는 ‘거시기’는 의외로 표준어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킬 때. 혹은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가 바로 ‘거시기’다. 전후 맥락이 분명하다면야 거시기든 뭐시기든 말의 맛을 살려주지만 역시나 뭐든 과하면 문제다. 거시기를 거시기하게 쓰면 참 거시기 하니까, 이 거시기가 거시기되지 않도록 잘 거시기해서 거시기할 수 있도록 거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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