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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독서실

by 새긴이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떠보았다. 나를 사방으로 옥죄어오는 듯한 벽과 내가 직접 끄고 켤 수 있는 작은 가로등이 있다. 나는 카메라로 한 장면을 찍은 듯 똑같은 풍경과 중간중간 끊기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검은 화면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 똑같은 풍경에는 널브러진 책과 공책, 여러 개의 펜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풍경을 계속 보자 하니 매우 피곤한 듯 하품이 연거푸 나오고 있었다. 졸린 것을 표현하는 입과 같은 화면을 보면서 지루해진 눈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쉬고 싶은 눈과 입과 다르게 뇌에서는 많은 고민이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치고받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눈을 감고 떠보았는데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조용하고 정적이었던 독서실 대신, 소리에도 베일 것 같은 콜로세움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콜로세움의 외곽에 앉아 있었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기장 전체에는 은은한 불빛이 전체를 쐬고 있었고, 내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보였다. 또한 저 멀리서 마이크를 주섬주섬 기고 있는 사회자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을 한참을 둘러보고 있는 와중,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관객석의 큰 함성과 사회자의 경기가 시작한다는 소리에 맞춰서 조명도 경기장 내부를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관객석의 분위기도 열광적으로 변해있었다. 아직 사람이 나오지 않았지만, 선수 이름을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어쩔 줄 몰라했지만, 뒤이어 내가 알고 있는 선수가 나와서 놀랐다. 나도 왜 알고 있는지 몰랐다. 분명히 처음 들었지만 이름을 알고 있다.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없지만 경기를 지켜보았다.


밝게 비춘 경기장은 원형으로 둘러싼 결투장의 내부에는 누군가의 피로 뒤덮여 있었다. 그 피를 밟으며 차례차례 나오는 사람들의 인상과 체형은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수와 모르는 선수가 차례로 등장한다. 마지막 선수가 입장할 때 사회자가 이 경기장의 일인자처럼 소개한 선수가 있다. 내가 멀리서 보기에 인상은 험상궂고 근육질에 온몸에 칼자국이 잘 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현실성 없지만, 이 상황을 즐겨보기로 했다.

선수가 다 등장한 듯 약간의 정적이 있었다. 그 순간에 몇 명인지 세어보려는데 곧이어 경기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린다. 경기장 안에 있던 선수들은 서로에게 달려들고, 뒤엉켜서 정확하게 셀 수 없었다.


기합은 강했지만, 힘이 약한 선수들은 쉽게 나가떨어졌다. 여러 명의 사람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경쟁에서 이기거나 지는 과정도 몇몇 보았다.

경기 중반부부터 나는 그 일인자를 중점으로 보았다. 그만 싸우고 싶은 표정이 보인다. 결투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인건지, 어차피 또 1등을 하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 나는 그를 처음 보았지만 그렇게 느꼈다.

경쟁에 시시해 보이는 일인자와 반대로 쌩쌩 날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사회자도 처음 보는 듯 그의 설명에 미미했다. 나도 처음 보았지만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싸움을 즐기는 듯, 다른 사람에게 달려들었고 그가 달려들었던 사람 모두에게서 다 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이름은 '걱정'이다.


시간이 지나자 슬슬 싸움을 잘하는 정예 멤버만 남은 듯하다. 내가 알고 있는 선수들만 남아있었다.



걱정과 고민, 돈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나'



그들은 그 이름값을 하는 것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의 대결이 팽팽한 접전이었다.

우리는 숨죽여 이 데스매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이 경기를 보고 멍하니 보고 있다.

서로의 칼을 맞대는 소리가 났을 때 다시 장면이 바뀌었고, 이 경기의 끝은 내가 눈을 떴을 때 기억이 날아가버려 결말의 끝이 흐지부지 된다.

그 결말은 경기의 당사자만 알 뿐, 경기 중간에 나가버린 나는 잘 모르겠다. 다시 생각하려다가 눈앞에 해야 할 일이 넘쳐났다.


'끝나지 않는 경기를 계속 응원해서 뭐 해, 지금 해야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도 조용하지만 시끄러웠던 한순간이 지나고 묵묵한 침묵만을 이어 나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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