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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나뭇잎

역할의 배신

by 새긴이

창문 너머로는 마지막 삶에 미련이 남아 보이는 나뭇잎은 아무도 들리지도 않게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힘껏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그에 반해 매정하게도 날카로운 바람은 그의 울부짖음이 들리지도 않았는지 그의 다리를 붙잡으며 이리저리 공기를 내뿜는다. 나뭇잎은 아등바등 버텼지만, 차가워진 공기로 그는 결국 힘을 다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가 매달리는 것을 포기하였는데도 바람은 심술궂게 계속 자신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힘없이 안전벨트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눈에 보이지 않는 철도에 몸을 맡길 뿐이다. 그렇게 떨어진 나뭇잎은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말없이 인사를 한다. 육성으로도 인사를 하고 싶지만 정을 붙일 새 없이 다른 곳으로 끌려간다.


인사를 하려고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밀면 맥박 없는 다른 이들의 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정 어린 손 대신 그보다 더 차갑고 무거운,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그 몇 초 동안 큰 물체가 그들을 톡 하고 밟고 지나친다. 그들은 힘없이 고통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곧 그만해 달라는 간절함의 부탁까지 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내뱉는 말이니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없다. 이제 반복된 상처를 받으며, 찢기고, 누군가에 의해 모일뿐이다. 또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겠지.


이내 나뭇잎은 체념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나도 잘 살고 싶었는데, 왜 나는 잘 살 수 없는 것일까?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뭇잎으로 태어난 것부터 잘못인 것일까?



“나도 행복하고 싶었는데, 내게도 행복이라는 게 올까...”



행복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를 잘 모르겠다. 행복한 적이 없다.

움직일 수 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는, 검은 길가에 흰색 연기가 나오는 것을 매일 듣고 보고 느꼈다. 비 일정한 간격으로 나의 잠을 깨우고, 이상한 냄새가 나고,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린다. 나는 몸이 묶인 채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쉴 새 없이 받을 뿐이다. 나도 길 안쪽에 있는 친구처럼 얌전히 자고 싶었고,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는 듯한 어린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그들의 곁에 있고 싶었는데...


이번 연극에서 각자의 역할이 존재하는 것일까? 불행한 역과 행복한 역은 따로 나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역할일까?


내가 불행한 역할이면 나는 이 역할하고 싶지 않은데...

불행한 것만 나의 역할일까, 아니면 불행 중에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까지가 나의 역할일까. 후자라면 너무 무거워서 내가 버틸 수 없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배역이 아니었기에, 도망치고 싶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수백 번 발악한다.


그러자 문득 갑작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다. 왜 누군가는 행복하게 살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데? 죽음에 대한 아픔과 서서히 꺼져가는 희망보단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감정들이 가득 채워진다. 나는 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죄 라도 있는 것일까?



‘바스락’



그 소리 이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해주고 있었다. 시간의 힘에 약해져 가고 있는 진실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 분노는 더 큰 상처로 짓눌릴 뿐이다. 그 상처로 인해 그의 몸이 조각난다.

조각난 그의 몸은 바람의 변덕에 의해 날아갈 뿐이다. 목숨 앞에서 나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불평불만을 할 새 없이 나는 사라진다.


우리 인생에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 뻔한 스쳐 간 나뭇잎이었다.

창문 너머에 있는 나뭇잎은 무슨 생각을 하며 쓸쓸하게 누워있는가?

한순간의 잿빛이었던 그의 나뭇잎은 누구의 인생에서 기억될까?

당신은 지나가는 나뭇잎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 타인은 우리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


사람들의 무관심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이 작다고 말하는 상처에 비해 더 작고 왜소한 우리는 어떻게 삶을 버텨야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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