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러 개의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다양한 발걸음 소리와 소소한 이야기들이 들린다. 이 소리에 묻혀 나도 그 방 안에서 나가고 있었다. 방 안에서 나가면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복도가 있다. 1년 내내 그 길로 다녔지만 매일 다녀도 색다른 느낌이다. 사물함 위치와 문의 위치는 달라진 적이 없지만,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매시간 달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을 지나며 건물 밖으로 나온다. 비 일정한 간격으로 달라지는 향기로운 바람 냄새와 건물 앞에 있는 나뭇잎 개수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 길을 나선다.
내가 앉아있었던 건물과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핸드폰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가 늦게 오는 것을 확인하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바라본다. 벤치 주변에는 그늘의 역할을 해주는 환하게 핀 벚나무와 질 수 없다는 듯이 찰랑거리는 초록색 잎사귀도 달려있다. 오늘의 날씨는 다행히 내가 그 자리에서 나갈까 봐 조심스럽게 불고 있는 바람과 햇빛이 눈에 부실까 봐 얇은 몸으로 낑낑대는 구름이 나를 도와주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날씨이다. 고마운 자유를 느낄 즈음에 문득 생각이 하나 스쳐 간다. ‘벚꽃 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성인이라면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어디선가 들어보았는데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벚꽃잎을 보자니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 같았다. 신선한 바람에 이끌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놓았다.
벚꽃 잎은 내 손바닥이 미운 듯 피해 간다. 두세 개 정도 내 손바닥 위에 올라왔지만, 바람이 질투하는 듯 두세 개의 벚꽃잎마저도 금세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바람은 내가 가만히 자신을 느끼는 것이 좋은가 보다. 신선한 바람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무렵 핸드폰을 꺼내서 보았다. 버스가 곧 온다고 찍혀있었다. 황급히 옆에 놓았던 가방을 챙기고 뛰었다. 바람은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좋았던 만큼 세게 불었다. 내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바람은 내가 멈추자 미련이 남은 듯, 주변의 나무만 흔들릴 뿐이다. 고마웠던 이 공간의 자연과 이별하며 집으로 간다.
버스의 빈자리에 앉으며 버스는 움직인다. 그는 내 곁에 있는 듯 버스가 정류장에 사람을 태우고 내보낼 때마다 그도 같이 멈춘다.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버스 안은 만남의 광장이듯, 사람들이 모인다. 그중 나는 보잘것 하나 없는 외톨이다.
자신을 꾸밀 줄 알고 가꿀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지금 후줄근한 모습과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갑작스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누가 나를 볼세라 움츠러든다. 하지만 숙인다고 해도 숨바꼭질하는 어린아이처럼 제 눈 가리기인 것 도 알고 있다. 남들을 보면 볼수록 내 모습이 부정당한다. 외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본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착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타주의도 아니다. ‘착하다’라는 수식언을 내가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이익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에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 애정을 받을 자격이 없어 보인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격지심이 느껴져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은 다른 것에 관심을 쓴 나를 지켜보는 듯 고요했다. 고요한 시간이 지나 갑자기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지만 없던 잘못도 추궁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아픔이 나의 뺨을 때린다.
창문을 닫기 귀찮았던 나는 내 몸에 바람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 들어오는 바람은 난폭하고 매서운 성격으로 나를 때린다.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아니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이 바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흩날리는 머리, 뜨지 못하는 눈, 펄럭이는 옷가지가 내 마음을 대변한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맞으며 혼나다 보니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한다. 내가 도착한 것에 환영하듯, 아까 학교에 남아있던 바람이 여기까지 날아온 듯 가는 길에 그가 불어온다.
내가 집안에 들어가면 영원한 이별을 직감하듯 따스한 바람이 나에게로 분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대신 영원한 이별을 서로 알듯이. 각자의 역할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 나는 그를 볼 순 없지만, 야위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다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강한 그도 결국 약해진 후였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를 좋아하는 것이 그에게 큰 힘듦인지를.
나와 조그마한 행복 대신, 너와 다른 사람의 큰 행복을 빌어줄게.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어서, 마지막까지 착하지 않은 ‘나’여서 미안해.
안녕. 행복해야 해.
언제 다시 만나는 기약을 할 수 없는 채로, 나와 그는 애처로운 마음을 가지며 지금 이별한다. 이 장면의 끝으로 우리들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