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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무너졌다.

1장. 어둠은 나를 선택했다.

by LvCh

새벽이었다.

눈을 뜬 건 알람 때문이 아니었다.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잠보다 더 큰 자극이 되던 시절이었다.


이불 위에서 한참을 눈만 뜬 채 누워 있었다.

몸은 일어나지 않았고, 마음은 더 늦게 따라왔다.

천장엔 어제의 피로가 매달려 있었고,

바닥엔 오늘의 무게가 먼저 내려와 있었다.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날마다 반복됐지만,

한 번도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모든 게 무너져 있는 아침.

그 아침을 견디는 것만으로 이미 하루의 절반이 끝난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을 나서는 일련의 동작은 익숙했지만,

내 발걸음은 늘 망설임으로 젖어 있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은 매일 같았고,

나는 그 매일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계속 걸었지만,

내 안에서는 멈춰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 틈에서도 혼자인 느낌이 더 강해졌다.


바쁜 출근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누구와도 어깨를 부딪히지 않았다.

그건 누군가 배려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투명해졌다는 뜻이었다.


회사에 도착하면,

익숙하지 않은 공기부터 마주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부서도 아니었고, 원했던 자리도 아니었다.


그곳은 낯설었고, 차가웠고,

이미 정해진 질서 속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나만의 방식은 이곳에서 필요 없는 것이었고,

나라는 사람은 기존에 짜인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업무는 내게서 익숙한 언어를 앗아갔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쏟아졌다.

배워야 할 것들은 끝이 없었고, 해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의욕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그것이 자꾸 무력감으로 변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텼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내 발로 이 부서를 떠나는 건 내게 지는 것 같았다.


회사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도망치듯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더라도

끝까지 버텨서 나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다.


“이겨냈다.”

그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싶었다.

그게 나를 끌고 가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버텨도,

일은 줄지 않았고,

결과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하루에 수십 개씩 처리해도

늘 남는 건 끝나지 않은 일과 부서장의 날 선 말뿐이었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버릇 못 고쳤네.”

“후배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팀 전체가 고생하는데 너 혼자 힘들다는 말은 핑계지.”


그 말들이 꼭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나는 매일, 그 말들 사이에서

내가 자격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스스로를 합리화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주먹을 꽉 쥔 채로

“내가 틀린 건 아니야.”

그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문제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이 뭘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그들도 나처럼 힘들었고,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해할 여유가 내겐 없었다.


예민해진 감정은 날마다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왜 이걸 못 따라와 주지?”

“왜 힘들다고만 하지?”

“이건 해내야 하는 건데 왜 투덜대는 거지?”


그때의 나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성과만을 봤고, 결과만을 기대했다.


결국 나는 좋은 팀장이 아니었다.

좋은 동료도 아니었고,

무너지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스스로 무너진 사람이었다.


나는 매일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다.

열심히 해도 무의미했고,

버텨도 인정받지 못했고,

사람에게 기대지도 못했다.


그 모든 이유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때문이었다.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적이고, 고집불통.

내가 그랬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람에 대한 짜증, 기대하지 않는 태도,

분노를 쏟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반복하던 말투.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절대 따르지 않을 거다.


그 사람은 감정과 분노로 이끄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자신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은 거울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거울을 보지 못했다.

아침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서도,

내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 눈은 무기질로 얼어 있었고,

무언가를 태운 듯한 잿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눈을 오래 바라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꾸 생각이 났다.

생각하지 않아야 버틸 수 있었고,

버티지 못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거울은 눈길을 주지 않는 배경이었고,

나는 그 속의 나를 의식적으로 지웠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내가 가장 먼저 알아버릴까 봐.


나는 강해 보여야만 했다.

무너지는 순간,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함께 무너질까 봐.

그래서 늘 웃었다.


웃는 얼굴은 방패였고,

그 웃음은 내 안에 울음을 가둬두는 덮개였다.


분노가 올라와도, 불안이 올라와도,

늘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문제없어.”


그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최면이었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됐고,

감정을 보이면 안 됐다.

그게 내가 택한 방식이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라도

남 앞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식.


그렇게 웃으며 하루를 넘겼고,

웃는 얼굴로 감정을 숨겼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멘탈이 강한 사람.”

“항상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

“늘 웃고 있는 사람.”


나는 그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웃지 않았다.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은 곳에 묶어두는 족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웃는 건 쉬웠다.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됐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마음은 굳어 있었고,

내 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그건 웃음이 아니라,

내가 사라진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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