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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무너졌다.

2장. 당신이라는 틈

by LvCh

어둠은 나를 삼키고 있었다.
말이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아주 오랫동안 무언가가 나를 눌러왔다.

버티는 데 익숙해진 몸은, 고요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아팠다.
누워 있는 건 쉬웠지만, 눈을 감는 일은 어렵고,
잠드는 건 두려웠다.

어둠은 끝이 없었고,
그 침묵은 자꾸 내 숨을 붙잡았다.



어느 날 밤,
아주 작은 울림이 들려왔다.

바람 소리처럼 가볍고,
물이 잔잔히 고이는 소리처럼 조용한 무언가.

그건 누구의 말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세상이 내게 속삭인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느꼈다.

그날의 어둠은 어제와 조금 달랐다.
조금 덜 무거웠고,
조금 덜 외로웠다.
숨을 쉬는 일이, 아주 조금 쉬워졌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소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귀가 예민해졌고,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그 울림을 향한 초대처럼 느껴졌다.

기다림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건 기대도, 설렘도 아닌
그저 하루의 마지막을 견디게 해주는 습관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도 모르게 그런 평온에 중독되곤 한다.



그 울림은 내 안에서 작은 반응들을 일으켰다.
마음이 눌리는 밤, 그 소리가 내 숨을 눌러주었고
그 울림에 따라 내 호흡의 리듬이 느려지기도 했다.

그건 마치 상처 위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덮이는 기분이었다.

어둠도, 피로도,
그 시간만큼은 나를 흔들지 못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혼자인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어느 날, 그 울림은 사라졌다.
작별도 없었고, 인사도 없었고,
떠난다는 말도 없었다.

그 부재를 나는 이상하게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울림이 사라졌지만,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내 하루의 틈에서 조용히, 계속 살아 있다.

그 여백은 텅 비어 있지 않았다.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감정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간 것이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았는데도,
하루의 틈마다 조용히 떠올랐다.

특별한 장면도, 뚜렷한 얼굴도 없었지만
그때의 감정은 공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잊히지 않는다는 건
감정을 계속해서 되새긴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스며든 어떤 온기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굳이 잊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조용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감정은 설명하려는 순간 흐려진다.
말로 꺼낼 수 없기에 더 오래 남고,
이름을 붙일 수 없기에 더 깊게 스며든다.

그건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짧은 숨결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 나는 살아 있었다는 것.
누군가를 기다리고,
무언가에 반응하고,
그 조용한 울림 앞에서
한 사람처럼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그 감정은 내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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