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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의 이야기 Jan 05. 2020

우스꽝스러운 가난에 덧씌운 만유인력의 법칙

영화 <기생충> 리뷰


봉준호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 다수의 작품들로 우리에게  진정성있는 메시지를 전했던 감독입니다. 

작년에는 영화 <기생충>을 작품을 통해 프랑스 칸과 국내는 물론 헐리웃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으로 지난 5월, 제 72회 칸 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죠.



여러분 안녕하세요.
캐리 인사드립니다.
<기생충>은 글의 완성 시기에 비해 리뷰가 많이 늦어져 새해맞이 리뷰로 올려드리게 되었네요.
작품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영화의 해석이 분분했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수직적 구조’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를 인간이 지닌 탐욕과 증오, 굴종과 충동이라는 성질을 통해 유쾌하고도 쓰라리게 그려낸 작품이죠.
뭣보다 영화가 재미있어요.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웃고 즐길수록, 그렇게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입안에 묘하게 감도는 쓴맛과 절망감이 가슴을 불편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아직 보지 않았다면 어떤 영화일 거라 생각하시나요?
봉준호 감독,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주연의 영화 <기생충> 리뷰 시작합니다.
이 앞으로는 영화 대부분의 요소와 결말까지 이야기하는 스포일러가 모두 담겨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양끝에 자리잡은 두 개의, 같지만 다른 공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시작은 반지하 집에서 낮은 창문을 통해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고, 끝은 그 시선 그대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여줍니다.
시작은 가난하고 부족하지만 알콩달콩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는 반지하 집.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시작과 같은 공간에 통렬한 상실과 박탈감, 끔찍한 희망이 더해진 집입니다.
'발버둥을 쳤고 헛된 희망을 품어 본들 나아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
감독의 잔인하리만치 싸늘한 의도가 묻어나는 수미상관입니다.
언급했듯이 영화는 계층 간의 차이를 상징하기 위해 물리적인 높낮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세계관은 의도적으로 뒤틀린 현실이자 높은 곳에서는 부자들이 살고 낮은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판타지적 배경입니다.
현실과 닮아있지만 묘하게 비틀어진 이 세상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숨기고, 스쳐가며, 부딪힙니다.
리얼리즘이 아닌, 도식화한 세상을 통해 인물과 배경의 섬세한 배치, 자본주의가 낳은 계급의 우화를 신랄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너는, 돈과 권력과, 너보다 더 가진 자, 혹은 덜 가진 자를 바라보는 수직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인가?'그리고 '너는 자본 권력 앞에서 누군가를 기만하거나 교활하지 않 사람인가?'라고 말이죠.
결론을 유보하며 부드럽게 거시적인 물음을 던지던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예리하고 거침없이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그가 이제 영화감독으로서, '어른'이 다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주인공 기택충숙, 기우, 기정과 함께 오래된 반지하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집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소위 주거지역의 원룸이나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가 아닙니다. 

시끄럽고 너저분하게 연출된 도심 한 동네의 꺾이는 골목 정면에 위치한 반지하집이죠.
배수나 환기에 대한 기본적인 시설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처참한 수준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에요.

집안에 기어 다니는 곱등이를 아무렇지 않게 툭 치는 기택과, 남의 집 와이파이 회선에 기생하 위해 화장실 변기 옆에 달라붙은 기우와 기정의 모습들이 압권이죠. 

이 정도면 그냥 지상층의 집이라 해도 충분히 빈곤해 보였을 만 연출입니다.

하루 하루를 살기 위해 가난하고 구차하지만 알콩달콩 살아가는 기택의 가족에게, 어느 날 기우의 친구 민혁이 찾아와 재물운을 준다는 수석을 선물합니다.

민혁은 기우에게 자신이 유학에 가게 되어 할 수 없게 된 일자리, 부잣집 딸 다혜의 과외 선생님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렇게 기우는 미술적인 손재주가 있는 동생 기정과 함께 자신의 학력 서류를 위조하고, 영어 과외를 하기 위해 그 부잣집, 연교와 박사장 부부가 다혜와 다송을 키우며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합니다.

일반적인 의심과 언뜻 깐깐해 보이는 분위기 정도는 흉내 낼 줄 아는 연교는 다혜의 어머니로서 첫 수업은 참관수업을 하겠다 하고 기우는 사뭇 진지함이 담긴, 남다른 실력의 과외 선생님을 연기하며 연교의 불안감을 날립니다.

수업을 마치고 거실로 내려오자 다혜의 동생 다송이 인디언 분장을 하고 계단에서 기우를 향해 인디언 화살을 쏩니다. 

인디언은 미대륙의 원주민이고 그들의 터전은 유럽인들의 침략에 의해 약탈 당했습니다.

침략, 즉 최조의 기생과 이를 향한 주인의 저항에 대한 상징이죠. 

그렇게 기우는 이런저런 비위를 맞추며 연교의 마음에 들게 되었고, 조심스럽게 다송의 미술 과외 선생님을 추천합니다.

동생 기정을 후배 '제시카'라 속이며 추천한 것이죠.

기정은 기우와는 다른 카리스마로 감쪽같이 다송미술 과외 선생님으로 고용됩니다.

이때 연교의 남편 박사장이 등장합니다.

연교가 다소 교양이 부족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인물이라면, 박사장은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진정성이 결여된, 졸부의 전형을 지닌 인물입니다.

이후 기우와 기정은 의도적으로 일을 꾸며 아버지 기택을 운전기사로 고용하게 하고, 이 집의 오랜 가사 도우미 문광까지 쫓아내 결국 어머니 충숙까지 박사장 집에 들이는 데에 성공합니다.

물론 박사장 가족은 이들이 한가족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죠.

한 마리의 기생충에 숙주를 찾아 정착하고 창궐하듯, 그렇게 기택의 가족은 이 집에 모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장의 가족은 아들 다송의 생일을 맞아 1박의 캠핑을 떠나게 되고, 기택의 가족들은 바깥 정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박사장의 집 거실에 앉아 파티를 벌입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싸우고, 떠들며, 천박하게요.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데, 문득 초인종이 울립니다.

인터폰을 보니 쫓겨났던 집사 문광이 놓고 간 물건이 있으니 문을 열어달라 합니다.

충숙은 비를 맞은 하게 웃는 문광의 꼴에 못 이긴 척 문을 열어주고, 이는 이 영화의 장르에 스릴러를 더하는 트리거가 됩니다.


문광 다급한 걸음으로 지하창고로 내려가고 충숙은 그녀를 몰래 뒤따라갑니다.

지하창고에는 그녀만 알고 있는 비밀 계단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계단 끝 지하 방공호에는 문광의 남편, 근세가 살고 있습니다.

그간 남몰래 아무런 능력 없고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그를 데려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를 본 충숙은 문광과 남편 근세를 협박하듯 다그치지만, 그때 계단에 숨어 이를 몰래 듣고 있던 기택과 기우, 기정이 우연히 발을 삐끗해 계단 밑으로 우르르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깜짝 놀라 이를 말없이 지켜보던 문광은 곧 이들이 모두 한 가족이고, 자신이 계략에 의해 쫓겨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투닥거리는 기택 가족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 영상을 연교에게 전송하겠다며 협박합니다.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됐고, 문광과 근세는 거실 소파에 올라 기택 일당을 벌세우며 비아냥거리고, 시시덕거립니다.

그러다 기택과 가족들은 핸드폰을 뺏으려 기습하고, 거실은 난장판이 됩니다.

그때, 전화벨울립니다.

비가 와서 일박을 취소하고 이제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연교의 전화. 

사투 끝에 문광과 근세는 다시 방공호에 갇히게 되고 기택 가족은 먹고 마신 흔적들을 급하게 치웁니다.

박사장 가족이 귀가하고, 그 시간에 집안에 있어선 안될 기택과 기우, 기정은 겨우 테이블 밑에 숨습니다.

여기서 충숙은 다시 부엌으로 올라오는 문광을 계단 밑으로 뻥 차서 연교에게 들통날 뻔한 위기를 넘깁니다.

박사장과 연교가 잠옷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박사장이 에 인디언 텐트를 펼쳐 들어간 다송이 비를 맞지 않을까 걱정하자 연교는 '미제' 텐트이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기택 가족 셋이 테이블 아래 숨어있을 때 박사장은 소파에서 기택을 언급합니다. 

기택에게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선을 넘을 것 같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성격은 좋지만, 그 냄새가 선을 넘어온다고 말이죠.

기택 일행은 박사장과 연교가 잠든 틈을 타 겨우 탈출합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자신들의 집을 향해 뛰기 시작하죠.

저는 기택과 기우, 기정이 박사장의 집을 빠져나와 원래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이 시퀀스에서 크게 감탄했습니다.

기택 가족은 부잣집에 들어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부자를 '흉내' 냈습니다. 

극 중 기우가 다혜에게 가르친 'pretend'라는 단어는 이러한 기택 일가의 부자 흉내와 가장을 관통하죠.

'pretend: ~인 척하다. / 가장하다.'

뼛속까지 가난한 이들이 마치 자신들이 부자가 된 듯, 가진 자들의 흉내에 취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맡지도 못하는 지하의 곰팡이 냄새를 풍기면서, 가당치도 않게요. 

감독은 비를 맞으며 빗물과 함께 저 깊은 아래로 걷고 달리는 장면으로 그 모든 착각과 헛된 희망, 잠시나마 달콤하게 즐겼던 부의 맛을 모조리 찍어 누르고 씻어 내려버립니다.

가차 없이 잔혹한 묘사이고, 그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연출이에요.


그렇게 도착한 집은 물에 잠겨 있습니다. 
변기는 오물을 쏟아내며 역류하는데, 여기서 박사장의 집 방공호에 갇힌 채 뇌진탕 증세를 보이는 문광 방공호의 변기에 구토를 쏟아내는 모습과, 기택의 집 변기에서 오물이 솟구치는 것을 교차해 보여줍니다. 

기정은 역류하는 변기의 뚜껑을 눌러 닫고 앉아 담배를 피우죠.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았습니다.
기택의 가족은 수재민들과 함께 임시 대피소에서 눈을 뜹니다. 
방공호에서 괴로워하던 문광은 간밤에 죽었고, 근세는 손과 입이 묶인 채 미칠 듯 괴로워하며 만나본 적도 없는 박사장을 주인님이라 칭하며 도와달라, respect를 외칩니다.
이는 기택이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한 ‘부자들이 착하다.’라는 말과 대칭되죠.

근세는 박사장을 끊임없이 존경하고, 찬양합니다.
아무런 생존능력이 없어 독립과 자생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가장 깊은 밑바닥의 기생충이 근세의 정체입니다.
아침이 밝고 박사장의 가족은 햇살을 맞으며 다송의 생일 파티를 준비합니다.
비가 와서 날이 맑아 너무 좋다는 연교의 통화와 그걸 바라보는 기택의 표정이 인상적이죠.
연교는 아이들을 위해 기정과 기우까지 초대합니다. 
기택은 대피소에서 일어나 비에 젖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했습니다.

교는 기택과 함께 장을 보러 다녀오는 차에서 마침내 남편했던 그 냄새를 맡게 됩니다.
을 열고 노골적으로 코를 막아요.
그렇게 파티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손님들과 기택의 가족까지 모두 모이게 됐습니다.
박사장은 기택에게 함께 인디언으로 분장해 숨어있다 나타나 다송을 놀라게 해 주자고 합니다. 
인디언 모자를 쓰고 박사장과 함께 숨은 기택은 다시 한번 박사장이 몹시도 듣기 싫어하는, ‘사랑 타령'을 합니다. 
영화 초반에도 기택이 박사장의 차에서 그런 얘길 했는데, 그때 박사장은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끝냈고 기택은 운전 중이라 미처 박사장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죠. 

기택에게는 아버지나 남편이라는 동일한 입장에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박사장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괜찮은 주제였을 겁니다.

하지만 인디언 모자를 쓴 박사장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이마를 긁으며 이야기합니다. 

일당줄 테니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이죠. 

한편, 기우는 다혜의 방에서 정원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입니다. 

알고는 있었을 겁니다. 

자신들의 가장이 결국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허나 막상 정원에 모여 여유롭게 웃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니, 지난밤과 당일 아침에 자신들이 겪었던 물난리와 겹쳐 더욱 통렬하게 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죠.

기우는 수석을 들고 방공호를 향해 걸어갑니다.

 부분을 기우가 문광과 근세를 죽이러 갔다고 보는 것은 다소 일차원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우는 충동적이라기 보단 따뜻하고 이성적인 인물입니다.

다혜나 다송을 대하는 태도나, 문광과 근세에게 미안해하던 모습 등으로 알 수 있죠.

상류층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느낀 현타 정신적 충격은 당장 문광과 근세가 죽는다 하여 어찌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적대관계의 싹을 없앤다는 관점에아예 틀린 해석이라 하진 않겠지만요.

방공호에 내려간 기우가 쓰러져있는 문광을 걱정하고 사과하는 점, 방공호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할 주방 선반에는 살인을 행하는 데에 무겁기만 한 수석보다 훨씬 효율적인 가볍고 날카로운 칼이 있었지만 굳이 수석을 들고 갔다는 점으로 볼 때 살해의 목적이라는 해석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기우의 의도를 살인으로 본다면 물난리가 난 집에서 수석을 들고 가방에 챙겨 온 것이 문광 내외를 죽이기 위함이라는 것이 되는데, 어불성설이죠. 

기우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행운을 안겨준 것이 그 수석이라 굳게 믿는 인물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근세와 문광에게 그 수석을 건네주며 사과하고, 잘 풀어보려 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공호 계단 밑으로 우연히 수석을 떨어뜨린 기우는 문광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이는데, 뒤에 근세가 나타나 기우의 목을 조릅니다.

근세의 입장에선 기우자신을 죽이러 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

겨우 근세의 손을 벗어난 기우는 계단 위로 도망쳐 올라가지만 올가미가 우연히 계단에 걸려 부엌에 넘어지게 됩니다.

근세는 힘겹게 수석을 들어 기우의 머리를 두 차례 내려 찍고, 매실청을 들이킨 후 기운을 차립니다.

그리고 부엌칼을 꺼내 정원으로 갑니다.

근세의 시야에 처음 들어온 것은 기정입니다.

는 칼로 기정의 왼쪽 가슴을 찌르고, 주변에 칼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근세의 모습을 본 다송은 충격을 받아 눈을 뒤집고 쓰러지죠.

죽어가는 딸 기정을 본 충숙은 근세에게 달려들어 난투 끝에 바비큐용 쇠꼬챙이로 근세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 

박사장은 쓰러진 다송을 업고 기택에게 병원에 가자고 외치지만 죽어가는 기정을 보는 기택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박사장이 차 키라도 던지라고 소리치자 기택은 키를 던지지만 마침 근세의 쓰러진 몸에 깔리고 맙니다. 

근세의 몸을 밀어 차키를 꺼내던 박사장은 퀴퀴한 냄새에 코를 막고, 기택은 그런 박사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렇게 기정과 근세, 박사장은 잔디밭에 누워 죽었습니다.

기우를 구한 것은 자본주의 계급의 높낮이, 그 잔혹함과 천박함의 영역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 다혜였습니다.

기우를 구해냄을 통해 다혜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고결함을 가진 인물로 화합니다.

극 초반 연교와 문광은 기정의 과를 감시하러 가기 위해 부엌의 매실청으로 만든 차를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후반에는 매실청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근세가 기정을 죽이죠. 

매실청으로 인해 신뢰를 얻은 기정이 다시 그 매실청 탓에 목숨을 잃 셈이니, 얄궂다 하겠습니다.


박사장을 죽인 기택은 주차장을 통해 다시 방공호로 숨어 들어갑니다.

기우는 병원으로 옮겨져 눈을 뜨지만 뇌에 손상을 입은 탓인지 계속 웃기만 합니다.

이 장면에서 기우는 의사처럼 '안 생긴' 의사와 경찰처럼 '안 생긴' 경찰, 간호사처럼 '안 생긴' 간호사를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기정의 유골함을 보면서도 계속 웃습니다.

비틀어진 세상과 현실의 아이러니를 보며, 허무하게 끝나버린 부자 흉내에 동생의 죽음 섞여 유발한 기괴하고 텅 빈 자조, 웃음 발작에 걸리게 된 것이죠.

기우는 실종된 기택 언급하는 뉴스를 서야 웃음을 멈춥니다.

충숙과 기우는 택 침입에 대 유죄, 살인에 해선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습니다.

이후 기우는 피자 배달 알바를 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는 산에 올라 박사장 가족이 떠나고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집을 보다가, 기택이 방공호에서 전등 스위치를 통해 보내는 모스 부호를  그의 생존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어 그 집을  기택을 구해내겠다 '계획'합니다. 

마침내 기우가 부동산을 통해 그 집을 구입하고, 충숙과 함께 집에 들어가 기택과 재회하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단순히 기우의 망상이었죠. 

과외 첫날 기우에게 기택이 했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과 기택이 물난리 후 대피소에서 했던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말이 귓가 맴도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어요.

기우가 그 집을 사는 일은, 합법적이거나 정상적인 방법으론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이대로의 기우와 충숙에겐 어림 반푼 어치도 없 일이란 것을 이죠.

그렇게 다시 반지하 집의 어두컴컴한 창문과 집안의 기우를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기생충> 걸작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로,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았지만 려운 영화도, 재미없는 영화도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영화 <버닝> 극찬지만, '미있보시라'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버닝>은 너무 좋은 작품이지만 문학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많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영화였고 비유와 상징이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므로 대중문화의 관점으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때문입니다.


세계 3대 영화제는 칸과 베니스, 베를린에서 개최되.

각각의 최고 작품상으로는 황금종려상과 황금사자상, 황금곰상을 수여합니다.

2012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

3대 영화제에서는 <기생충>이 두 번째로 수상한 셈입니다.

일각에서 칸의 지난 회 수상작이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과 함께 <기생충>의 수상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폄훼를 위한 폄훼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만큼 <기생충>은 자격이 충분했고, 칸이 이데올로기적 강박에 치우쳐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라는 결론을 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순수한 재미와 친절한 화법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가족>보다 <기생충>이 조금은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플롯의 중요한 맥락을 우연에 의존해 전개해 나간다던지, 상징과 복선을 그리기 위해 개연성을 해친 부분은 다소 아쉽습니다.

방공호로 내려가는 비밀 계단에서 기택의 가족이 우연히 발을 헛디뎌 와르르 넘어진다던지, 근세로 부터 도망쳐 계단을 오르던 기우도 그곳에서 우연히 넘어지는 등 계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연을 연출한 부분은 흥미 있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도 했습니다.

물난리가 났을 때, 마침 기우의 눈 앞에 나타난 수석이 물에 동동 떠있는 장면에서는 빵 터지고 말았지만, 그게 블랙코미디적 표현인지 무리한 연출이었는지는 관객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것 좋겠네요.

언급하지 않은 내러티브가 아직 꽤 많을 만큼 알찬 영화감독이 배우들과 실로 엄청난 시너지를 이뤄낸 작품입니다.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의 연기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의 배우에게 주연상을 주지 않는, 칸의 룰이 아쉬워질 만큼 소름 끼치게 완벽했고, 기택의 아내 충숙 역할의 장혜진 실제로 그런 모습의 일반인을 데려다 놓은 것처럼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정은 그 뻔뻔하고 비굴한 문광의 캐릭터 해석했고, 박소담은 평소 저의 생각답게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은 배우로서, <기생충>에서도 기정 역을 잘 소화해냈습니다.

그리고 기우, 최우식은 솔직히 제게 있어 이 영화의 불안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더군요.

아니 이렇게 연기를 잘 해내는 사람이 지난 작품들에서 왜 그렇게 유치하고 맥없는 연기를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단언컨대 최우식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빛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조여정이 맡은 연교의 유난스럽고 맹랑한 연기도 좋았고, 이선균의 연기 또한 훌륭했습니다.

배우는, 제가 TV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워낙 좋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바르고 섬세한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배우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볍고 뺀질거리는 역할을 자주 맡아 곧 해내더군요.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성년식을 치러 냈다는 느낌입니다.

<기생충><설국열차>에서 보였던 특권 계급을 향한 돌파의 희망도, 자그마한 금돼지 덩어리 하나로 목숨을 구한 <옥자>나, 한강 한복판에 무시무시한 둥지를 튼 <괴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가 사회에 이 정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는 생각과, 앞으로는 그의 파릇파릇한 이야기들을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 한편을 맴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촌극을, 현실을 도식화해 만들어낸 판타지 세계에 담아 재미있게 버무린,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 <기생충>에 대한 별점은 6개 중에 5개입니다. 

혹시 아직도 보않으셨다면 지금 당장, 가벼운 마음으로 VOD를 구매해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럼 리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한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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