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활자로 접하는 소설을 읽으며 경험할 수 있는 상상력의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의 영화화는, '원작자의 의도와 독자의 소감을 어느 정도로 적절히 시각화하는 것에 성공했는가'에 그 작품성의 성패가 가려진다 하겠습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죠.
영화로 제작된 소설 원작의 수많은 작품들이 대부분 좋은 평을 받지 못하며 꽤 잘 만들었다 해도 '잘해야 본전'급의 성과, 소설의 성공적인 영화화라 평가받는 작품은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져 2003년에 개봉한 작품입니다.
지금 보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카메라의 구도와 색감,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까지, 가히 그 시절 일본 영화의 수준을 대변한다 할 수 있는 작품이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개봉한 일본 영화들은 지금도 일본 영화계의 마지막 부흥기라 일컬어질 만큼 완성도에 있어 요즘과는 궤를 달리한다 할 정도의 훌륭한 작품성을 보이죠.
<철도원>, <러브레터>, <쉘 위 댄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각기동대>, <링>, <주온> 등은 아직까지 회자되는 수작 혹은 그 이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 시절의 작품들입니다.
요즘의 일본 영화가 얼마나 침체되고 퇴행되어 있는지 재차 상기하게 되네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케와키 치즈루,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 시작합니다.
이후로는 영화 전반의 내용이 언급되니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지금 페이지를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츠네오는 낮에는 대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대학생입니다.
담백하고 무덤덤한 성격이라 친구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여자 친구도 만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죠.
츠네오는 어느 날, 마작 게임방의 단골손님들이 동네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한 할머니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듣게 됩니다.
손님들은 계속 그 할머니에 대해 숙덕대며 유모차 안에 거액의 돈이 실려있다거나, 사람이 타고 있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늘어놓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의 단면을 보고 그것에 대해 막연한 추측을 늘어놓는 습성이 있죠.
그 대상이 인적 드문 시간에 담요 덮인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음침해보이는 노파라면 더욱더 그럴법합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슬슬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츠네오는 손님들이 떠들어대던 그 할머니, 아니 정확히는 그 유모차에 꼭꼭 숨어 타고 있던 여자를 갑작스레 보게 됩니다.
츠네오는 놀라움과 당혹감에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지만 그게 둘의 첫만남이었죠.
유모차를 끌고 할머니와 함께 걸은 츠네오는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식사까지 함께합니다.
유모차에 타고있던 그녀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판자로 지어진 작은 집 안에서 츠네오와 함께 먹을 식사 거리를 준비하며 할머니와 함께 투닥거리는 일상의 풍경이 무척 정겹죠.
할머니는 그녀를 쿠미코라 부르는데, 쿠미코는 정작 츠네오에게 자신의 이름이 조제라고 말합니다.
조제는 방 한구석에서 할머니가 주워다 준 여러 책들을 읽으며 일상을 보내요.
그래서 꽤나 박학다식합니다.
조제의 본명은 쿠미코인데, 우연히 할머니가 주워다 준 책들 중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그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딴, 조제라고 말하게 된 겁니다.
영화에선 언급하지 않지만 조제가 읽은 책의 제목은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소설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다가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어째서 프랑수아즈 사강이며, 어째서 조제인가?
아, 그럼 소설이야길 좀 해야겠군요.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속의 조제는 유복한 환경에서 열정 없이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사랑이나 삶, 일에 대한 열의가 결여된, 그렇다고 비관적이거나 크게 냉소적이지도 않은 인물이죠.
자신을 사랑하는 베르나르에게 그의 부인 니콜의 임신 소식을 알리기 위해 훌쩍 길을 나서고 전할 소식은 전하지 않은 채 그와 사흘 밤을 함께 보내기도 하죠.
이렇게 사강의 소설 속에서 조제는 순간의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인물로 묘사됩니다.
남이 나쁘든, 세상이 나쁘든, 그걸 굳이 좋게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저 자신이 괜찮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 도덕적인 요소에 대해선 가치를 별로 두지 않죠.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의례 그럴 법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할 법한 관념들에서 자유롭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완벽에 가깝게 갖추고 있는, 소위말해 이데아적인 인물이죠.
그렇기에 그녀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 베르나르의 "당신도 언젠가는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우리는 고독해질 것이다"라는 말에 "알고 있다"라고 대답했고, 질투와 회의에 빠진 베르나르가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우리가 했던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냐"라며 묻자 조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라고 대답합니다.
영화에서의 쿠미코, 그러니까 조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강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조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소설 속 조제와 현실의 작가 사강의 중간 어딘가쯤에 위치해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로 돌아가 보죠.
이후에도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 자주 들러 식사도 하고 조제와 할머니에게 복지혜택도 받게 해주며 조제와 가까이 지냅니다.
츠네오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은 카나에입니다.
츠네오는 카나에에게 조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는데, 험담이나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나누는 대화 정도였죠.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조제는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잠든 틈을 타 대낮에 조제와 몰래 외출을 했다가 그만 사고까지 내는 일도 겪죠.
할머니는 츠네오에게 크게 화를 내며 더 이상 자신들의 삶에 관여하지도, 찾아오지도 말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조제에게는 "네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나무라죠.
할머니는 조제를 이미 망가져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새벽에만, 조제가 탄 유모차를 담요로 덮어 산책했던 겁니다.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것으로 조제를 일단의 세상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겁니다.
세상에 내놓아선 안될 망가진 물건, 험난한 세상에서는 결코 살아가지 못할 나약한 존재.
이것이 할머니가 조제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조제를 잊은 듯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츠네오는, 어느 날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우연히 신입생 중 한 명이 조제의 할머니가 주워왔던 교과서들과 도색잡지를 버린 주인이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츠네오는 왠지 모를 신기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듯 웃어대더니 갑자기 그 후배를 흠씬 때리며 "거의 다 잊어가는데 왜 나타났냐"며 소리치죠.
얼마 후, 일전 복지혜택의 일환으로 조제의 집을 고쳐주며 알게 된 건설업체에 입사 면접을 보러 갑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크게 놀라 조제를 찾아갑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영정에서 절을 마친 츠네오는 조제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직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알고 말없이 돌아섭니다.
그때 츠네오의 등 뒤에서 조제는 "돌아가, 가란다고 가버릴 녀석이면 아예 돌아가버려"라고 외칩니다.
조제의 마음을 알게 된 츠네오는 다시 조제를 안고, 둘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츠네오와 이별하게 된 카나에는 조제의 산책길에 찾아와 그녀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리고 자신도 휠체어에 앉은 조제에게 허리를 굽혀 따귀를 내어주고 똑같이 따귀를 맞습니다.
장애인에게 남자 친구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상심한 거죠.
연인이 된 조제와 츠네오는 함께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봅니다.
조제는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호랑이라며, 언젠가 남자 친구가 생기면 함께 호랑이를 보러 올 거라 결심했었다고 말합니다.
갇혀있는 호랑이와 마주한 조제는 공포에 고개를 돌리며 몸서리치고 츠네오는 조제가 앉은 휠체어 곁에서 호랑이를 함께 지켜봐 줍니다.
호랑이는 조제의 시각으로 본 타인과 바깥세상을 의미하죠.
불구의 몸으로 혼자서는 상대해본 적이 없는 다른 이들, 마주해본 적이 없는 세상.
때문에 조제는 타인들과 바깥세상에서 자신이 한없이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는 곧 세상에 대해 조제가 느끼는 상대적 장애와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상징하는 거죠.
둘은 그렇게 연인으로 일 년을 함께 동거합니다. 어느 날 츠네오는 가족에게 조제를 소개할 요량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가족 제사에 참석하기로 그녀와 계획하지만, 이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카나에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자동차를 빌려 여행을 떠난 조제와 츠네오.
운전대를 잡은 츠네오도 난생처음 떠나는 여행에 무척 신이 난 조제를 보며 카나에와 마주친 후 싹튼 꺼림칙한 마음을 접어두고 함께 흐뭇해합니다.
하지만 조제가 너무 가고 싶어했던 수족관은 휴관으로 문을 닫았고, 조제는 크게 실망하며 츠네오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날이 저물고 가라앉은 분위기로 숙소를 향해 이동하는데 기분이 풀린 조제가 장난을 치자 츠네오는 운전 중이라며 짜증을 내죠.
차를 세우고 걸어야 하는 곳에서는 츠네오가 조제를 일일이 업어야 합니다.
힘에 부친 츠네오는 조제에게 휠체어를 사자고 권하지만 조제는 업혀있는 것이 좋아 그딴 휠체어 이제 필요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츠네오는 서서히 조제에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츠네오는 조제가 화장실에 간 사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 제사에 가지 못하게 됐다 이야기합니다.
동생은 " 할 수 없지"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전하겠다 하고 츠네오에게, 조제에 대해 이제 지친 거냐고 묻습니다.
츠네오는 대답을 피해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들어가 조제를 말없이 안아줌니다.
츠네오의 마음을 눈치챈 조제는 가족 제사 장소를 목적지로 알리는 내비게이션을 꺼버리고 바다로 가자고 말합니다.
이별을 예감한 조제는 츠네오와의 마지막 여행을 바다에서 함께하고 싶었던 겁니다.
둘은 바다를 함께 걷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도 찍습니다.
그렇게 밤이 되고 둘은 바닷속 테마의 방에서 함께 사랑을 나눕니다.
잠을 청하려 불을 끄자 마치 깊은 바닷속처럼 물방울 소리와 깊은 공명음이 퍼지며 물고기 모양을 조명들이 방 전체를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이를 멍하니 보던 조제는 츠네오에게 눈을 감아보라 하고 뭐가 보이냐고 묻습니다.
츠네오가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대답하자 조제는 그것이 자기가 살던 세상이고, 자신은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다 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츠네오가 "외로웠겠구나"라고 하자 조제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츠네오를 만나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올 수 있었다고, 자신은 츠네오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기 위해 그 어둠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라 이야기하죠.
깊고 깜깜한 바닷속에 잠겨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물고기가 의미하는 것은 조제 자신입니다.
그리고 조제는 이별에 대해 말합니다.
언젠가 츠네오가 떠나면 자신은 다시 깊고 어두운 곳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게 될 테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이죠.
그렇게 잠든 츠네오의 입을 맞추고 조제도 잠에 듭니다.
그 후로도 둘은 몇 달을 함께 지내지만 이별은 예견된 것이었는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이별을 결정하고 집을 나서는 츠네오에게 조제는 도색 잡지 한 권을 이별 선물로 줍니다.
츠네오는 웃으며 잡지를 받아 들고 덤덤히 조제의 집을 나선 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나에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짐짓 가볍고 홀가분해 보이는 걸음을 얼마 떼지도 못하고 갑작스레 멈춰선 츠네오는,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립니다.
카나에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 숙이고 주저앉아 슬프게 오열합니다.
조제에게 가슴 깊이 애써 숨겨왔던 깊은 미안함, 남겨진 조제에 대한 측은함, 그런 조제에게 지쳐 아무렇지 않은 척 도망치는 자신의 비겁함에 느끼는 혐오감이 결국 폭발하듯 쏟아진 것입니다.
이후 혼자서 머리도 질끈 묶고 전동 휠체어를 타며 집에서든 바깥에서든 씩씩하게 살아가는 조제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하며, 사랑하기 원하며, 이별에 아파하며, 역경을 해쳐가며, 감당할 수 없는 역경에서 도망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운 위로와 관계에 관한 성찰을 상기시켜줍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만약 수족관이 휴관하지 않았더라면 조제가 바닷가 방에서 한 이야기들을 수족관에서 먼저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둘은 서로 짜증을 내거나 지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다시 영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죠.
츠네오가 조제를 떠난 것은 카나에 때문도 아니고 조제의 외로움을 헤아리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조제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사랑의 마음이 식어버렸기에, 그리고 조제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했기에 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츠네오는 대학생입니다.
뒤틀린 구석 없이 주변과 잘 어울리며 밝게 살고 있지만 또래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온, 밝고 귀여운 인상으로 또래 여자들과도 원활한 이성관계를 맺으며 사는 20대 청년일 뿐이죠.
그렇기에 상실이나 결핍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깊게 공감하긴 힘든 나이입니다.
아직은 사랑이나 연인관계에 있어 깊은 통찰이나 확고한 가치관을 갖추기에도 어렵죠.
영화는 묻습니다.
온전히 마주하던 사랑에서 우리는 왜 도망쳐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마주하던 사랑에서 등을 돌려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가?
츠네오는 일 년 동안 조제와 함께 지내며 조제의 곁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카나에를 탈출구 삼아 그저 평범한 이별을 가장해 조제를 떠나지만 결국 금세 자신이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라는 것을 끝내 부정하지 못하고 목놓아 눈물을 쏟아낸 것이죠.
그가 처음부터 조제와 천천히,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차근차근 조제를 알아갔다면 그런 식으로 도망치듯 이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조제는 유일한 동거인인 할머니를 떠나보냈고, 이미 츠네오를 그리워하며 의지하고 싶어 그를 기다렸을 겁니다.
저는 조제가 바랐던 것은 결국 자신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줄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제의 생활과 그러한 마음을 아는 츠네오 또한 조제를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츠네오가 조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오래 함께하길 원했다면 그때 연인이 되는 것만은 유보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반신이 불구인 연인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사회성이 떨어져 세상을 한 걸음부터 배워가야 하는 사람 곁을 기꺼이 지킬 수 있을지, 힘들고 지쳐 떠나고 싶어지지 않을지.
이렇게 너무도 중요한 요소들에 대해 가슴과 머리 양쪽에서 확신이 들 때까지만 결정을 미뤘다면, 둘은 결국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츠네오는 감정과 동정심, 혈기에 휩쓸려 얄팍한 선택을 했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자신의 얕은 마음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입니다.
조제 또한 여행 중에 투정을 부리거나 고집을 피우기도 했지만, 함께 지냈던 일 년 간은 최선을 다해 츠네오를 사랑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츠네오의 다소 우유부단한 캐릭터를 보여준 영화의 맥락이 그렇습니다.
언제까지나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연인을 만난다는 것.
이는 가볍고 얕은 찰나의 호감이나 설렘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간절함과 불안감, 성급함은 갈무리해야 하고,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기다려주며, 지지해주고, 인정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에 닿아서야 겨우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으로 그러한 관계를 지속하는 연인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 순수한 티를 벗지 못한 츠네오는 자신만이 조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할 수 있다고, 그것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 제사에 조제를 데려가 소개하고 싶었던 마음도 진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또한 성급했습니다.
그렇기에 빠르게 달리면 빠르게 숨이 차 결국 달리기를 멈추듯, 츠네오의 조제를 향한 마음은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흔들려 결국엔 무너집니다.
사강의 소설 속 조제처럼, 사랑의 영속에 냉소하던 조제는 그 자리에 있었고, 감정과 열정을 이기지 못해 조제를 사랑했던 츠네오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도망쳤습니다.
츠네오가 토해내듯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면, 실제로 내 삶에 오래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지 아닌지, 상대가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먼저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고, 제가 보는 가벼운 사람들이 대게 그래요.
그리고 그런 관계의 끝은 대부분 허전함과 허무함만을 남기는, 길어져 봐야 자기 기만과 후회만이 남는 시시한 이별입니다.
이미 17년이나 지난 영화를 다시 한번 봤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영화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영화 속의 조제와 츠네오가 더 힘들고 아프지 않길 바라게 되더군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오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평점은 6점 만점에 5점입니다.
조제의 할머니나 카나에를 제외한 몇몇 조연들의 역할이 좀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츠네오의 섹스 파트너라던지 조제의 시설 동기, 옆집에 사는 변태 아저씨 같은 인물들은 작은 일상을 이야기하는 역할 정도 외의 다른 필요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만 리뷰 마치겠습니다.
괜찮았다면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시고, 저는 다른 영화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