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의 이야기 Sep 11. 2020

Recollection of 9.11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막을 수도 있었기에 더욱 더 깊어진 상흔


사망자 약 2,996명.
부상자 총 6,000여 명 이상.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3분.

미국 뉴욕의 제1 세계무역센터(WTC) 중상층부에 아메리칸항공 11편(AA11)의 항공기가 충돌하고,
직후 오전 9시 2분 경, 바로 옆 제2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유나이티드항공 175편(UA175)의 항공기가 충돌, 이어 9시 37분 아메리칸항공 77편(AA77)이 미 국방부, 펜타곤의 서편 건물 1층과 2층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들이받습니다.



그리고 이후 10시 3분.

펜실베니아주 스토니크릭 지역 광산 근처의 벌판에 또 한 대의 항공기, 유나이티드항공 93편(UA93)이 추락해 거의 완전연소에 가깝게 폭발합니다.






저는 매년 오늘, 9월 11일이 되면 이미 19년이나 지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절로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설로서 짧게 그때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위에 언급한 일련의 사건 직후 미국은 1960년 제정 이후 사상 최초로 SCATANA(Security Control of Air Traffic and Air Navigation Aids)를 발령, 미 전역의 영공을 봉쇄해 연방보안국의 죄수호송기와 군용기를 제외한 4,200여대에 달하는 미 영공의 모든 비행기들이 즉시 강제 착륙 조치되었음은 물론, 뉴욕항 봉쇄와 동시에 모든 화물선들 또한 정박 혹은 회항한 후 미합중국 해군 항모전단이 입항했습니다.

미 본토에서 전쟁이 발발한 것은 진주만 공습 이후 처음인 것도 그렇고 속수무책으로 침략당한 것은 1913년 이후 처음이었고, 그 타겟이 뉴욕 한복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인지 정부는 말그대로 일사분란한 대처는 커녕 마비상태라 부를 정도의 공황에 빠져 각 기관들이 일시적으로 일제히 그 기능을 그야말로 '상실'했고 정부 주요인사와 상하원 양당 지도부는 황급히 방탄차량에 탑승해 교외의 핵전쟁 대비 시설로 도피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뉴욕시의 행정과 경찰, 소방이 제대로 합동 대책을 실행할 리가 만무했죠.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에 민간인이 탑승한 민항기를 충돌시켜 파괴한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 혼란을 겪은 후에야 겨우 수습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독자적 결정에 의한 테러라면 당연히 죄는 테러리스트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그지경까지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저는 지금도 그 사건은 미국의 행정부, 특히 부시 행정부에 그 책임을 물어야했다고 생각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콧대는 유일한 패권국가로서의 자각을 넘어 오만방자해져 있었고 정보기관의 각종 우려섞인 목소리는 귓등으로 흘려버릴만큼 여러 면에서 허술하기 그지없는 보안체계로 대책없이 이나라 저나라에 전쟁도 일으키고 무기도 팔아먹으며 이래라 저래라 큰소리 치고만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이건 이미 클린턴 때부터 그랬어요.

그러더니 코소보 전쟁이 일어나 계속 관심은 테러리스트에서 멀어져 발칸 반도의 정세에 집중되고, 대사관까지 공격당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오사바 빈 라덴 암살작전을 세 번이나 취소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따위가 미국 본토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911 이후 어땠습니까?

정치적, 경제적 이득에만 눈이 멀어 '악의 축' 따위의 심판론을 외치며 있지도 않은 WMD(대량살상무기)를 판타지로 상정해놓고 그걸 내놓으라며 후세인을 협박했고 결국 이라크에 처들어가 8년 9개월간 민간인 10만여 명에 4,500여 명의 미군까지 죽이고 나서야 철수합니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을 공개처형합니다.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합니다.

이게 뭡니까 대체?

이게 덩치 좋고 힘좀 쓴다고 한가하게 약한 친구들이나 괴롭히며 독불장군 노릇만 하다가 누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때리니까 그 친구 잡아다 죽도록 패고 도끼눈만 뜨고 다니는 철부지랑 다를 바가 뭡니까?

그래서 얻게 된 것이 지지율과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 무기 팔아 챙긴 돈 말고 무엇입니까?

이후 일어난 각국의 테러들은 왜 막지 못했습니까?

어째서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혐오는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는 겁니까?

어찌보면 가혹하다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를 항변들입니다.

하지만 미국, 정확히 미 연방정부와 연준, 월스트리트, 무기 장수들은 과도하게 득을 봤고 이러한 이야기에 대답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스 체인지>나 <시대정신> 등에서 이야기하는 음모론을 지지한다거나 그들의 말이 전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간 너무 안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안이해져가고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헛웃음이 나올만큼 허술했던 항공 보안에 대해선 보완됐지만 아직도 총기나 IED(사제폭탄)에 의한 사고와 테러의 위험에는 여실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공권력과 복지가 미치지 않는 땅이 너무나 넓고, 비뚤어진지 조차도 모른채 비뚤어진 애국만을 외치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여전히 너무도 많습니다.

대통령은 이웃나라에 벽을 쌓아 쫓아내고, IS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보다는 원색적인 조롱을 날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다섯 개의 나라를 통째로 입국금지 시키고, 틈만 나면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였다가 수습하기를 반복하고, 여전히 총기 소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패권국이라는 것에 대한 견해라던지,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미국의 본질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다만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더라도 다음엔 소를 잃지 않는 방향으로, 제대로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기초부터 깊고 단단히 지어져 튼튼한 외양간은 좋지만 얼른 싸게 나가는 소만 막으려고 고압전류나 독침만 두른 외양간은 결국 주인에게나 소한테나 좋은 결과를 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2001년 9월 11일에 희생된 사망자와 부상자를 비롯한 모든 피해자들에게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6화 코로나19 집콕, 시간 때우기 좋은 정주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