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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의 이야기 Sep 08. 2019

영화 <나랏말싸미> 리뷰

대한민국 영화계의 평균 수준을 아득히 떨궈버린 폭망작

인사에 앞서 전미선 배우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캐리 인사드립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영화는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리고 저는 대중예술에 속하는 영화라는 컨텐츠에 있어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자에 의해 창작되어 완성된 하나의 대중문화, 즉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그 내용은 관람객이라는 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영향을 끼치 때문에 그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토니 스타크도 안다.

그렇기에 픽션이나 팩션이 아닌, 역사적 사건과 기록된 사실을 다룬 영화라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의 범위는 명확합니다.
'역사적 기정사실을 바꿔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각색한 부분 진실이라 말하면 안 된다'.
허구적 요소에 있어서의 창작과 각색은 창작자가 가진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져 역사의 틈을 메우거나, 결과가 일어나기
까지의 과정에 더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작의 요소를 더할 수 있는 공간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자료가 적을수록,
해당 시점의 정보가 부정확할수록 더욱 커지며
창작자는 그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각색과 연출을
그려내고 펼쳐낼 수 있는 것이죠.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1.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미대륙을 발견한 한 유럽인이 정복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어 악마와 계약을 맺었고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 발달된 문명의 무기들로 원주민들을 학살해 그들의 대륙을 강탈했다.」


2.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미대륙을 탐험한 한 유럽인은 모든 원주민에게 문명을 전파했으며, 원주민들은 그 혜택으로 오늘날까지 대륙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역사에서는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고 학살당했다 기록되어있지만, 이것이 사실인 것이다.」

첫 번째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과 창작의 범위 내에서,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하여 자유롭게 상상해 만들어낸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역사를 바꾸거나 왜곡하지
않았기에, 한 편의 영화로서 온전히 대중에 노출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반면에 두 번째 영화의 경우에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 과정부터 결과까지의 모든 요소를
새롭게 창작해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결론을 펼쳐냈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남긴 실제의 기록을 통한 교차검증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두 번째 영화는 헛소리에 불과한 것을 진실이라 말하는,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영화의 경우에는 대중에 노출되었을 때,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라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영화를 '쓰레기'라 부릅니다.
아주 가끔 이런 작품들이 나오죠.
평점을 매길 수 없는 빵점짜리 쓰레기 영화.


자, 리뷰 시작해보죠.

철저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비평하는 캐리의

영화 리뷰입니다.

조철현 감독,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주연의 영화 <나랏말싸미>입니다.

이하로는 스포일러의 여부를 떠나 영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한글
창제라는 좋은 소재를 처참하게 파괴해버렸습니다.
영화는 '다양한 한글 창제설 중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고 말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한글을 '신미'라는 승려가 모조리 창제해
세종대왕에게 바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신미의 업적에 기반을 마련해 줬을 뿐, 결국 숟가락을 얹었으며 그 업적을 가로챘다'.

이것이  <나랏말싸미>가 담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포스터에는 이러한 표어가
쓰여있습니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의 시작'이라고 말이죠.
우선 신미가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자체가
'다양한 한글 창제설 중 하나'의 축에 절대로
끼지 못합니다.
신미 창제설은, 그 자체로 정사는 물론 야사에조차
기록되지 않은 낭설입니다.
이미 헛소리로 판명된 위서, '원각선종석보'에 적힌 내용이에요.
영화가 시작부터 관객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겁니다.
임금 세종은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널리 익혀 사용하게 할 만한, 자국 고유의 문자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승려들이 팔만대장경을 반환하라 궁에 찾아오게 되고, 이를 쉽게 돌려보내지 못해 고민에 빠진 세종을 위해 소헌왕후가 불교의 고승, 신미대사를 불러오게 됩니다.

신미에 의해 일본의 승려들을 돌려보낸 세종은 신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산스크리트어에 능하며, 팔만대장경의 진의에 문자 창제의 길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리하여 세종은 신미에게 사대문 안에 절을 세워주겠다는 조건으로 함께 한글을 만들자

제안합니다.

그렇게 불교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숭유억불의 조선 초기 세종 때, 신미대사를 비롯한 불교의 승려들이 무려 중궁전으로 들어와 글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후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승려들을 지방으로 보내게 되고, 과로와 노환으로 건강이 나빠요양을 핑계삼아 다시 승려들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일개 승려인 신미대사와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에 의해 한글이 창제되고 세종과 신미는 이 어디에 먼저 전하느냐를 놓고 종교적인 '대립'을 시작합니다.

신미가 세종의 면전에서 왕 노릇을 똑바로 하라며

꾸중을 할 땐 정말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오더군요.


둘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 고심하던 소헌왕후는 임금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그렇게 식음을 전폐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왕후의 죽음을 계기로 세종대왕과 신미대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신미는 성균관에 한글 창제의 원리를 전합니다. 합동 외양간 고치기

그렇게 훈민정음이 탄생하게 되었고, 약속했던 대로 사대문 안에 절이 세워지고, 왕후의 넋을 기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이건 영화도, 뭣도 아수준입니다.
대국민 사기극 수준의 물을 만들어냈죠.
시대상을 놓고 봤을 때, 억압받던 불교의 승려들이 조선의 임금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세종은 즉위 초를 제외하면 상당히 친불, 호불 했던 모습들이 보입니다.

효령대군이나 정의공주는 독실한 불자이기도 했죠.

이에 몇몇 신하들은 세종의 호불을 근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개 승려인 신미가 세종에게 그리 대할 수는 없습니다. 

선왕, 태종 이방원의 그 서슬 퍼렇던 왕권 확립으로 임금의 권위가 하늘에 맞닿아있었던 시대의

세종대왕 눈을 똑바로 보며 꾸중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화를 내며 명령조로 말할 수는 없어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직계 손자이자, 태종 이방원의 친아들이 이도, 즉 세종입니다.


(정종은 꽤나 흥미로운 임금이긴 하지만 이렇다 할 어진이 없어 생략했습니다.)

애당초 즉위 기간도 2년


집현전의 수장이었던 부제학 최만리가 세종대왕에게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의견을 말하는 시퀀스도 이상합니다.

굳이 왜 신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세종을 비난하고, 비꼬고, 말대꾸를 따박따박 해대는 것이죠?

당시 집현전이 학자들의 연구기관으로서 적잖은 영향력을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부재학 최만리가 임금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영의정 황희도 있었을 것이고 예조판서 김종서도, 대제학도, 그 외의 정 1, 2 품의 대신들이 모두 함께 자리했을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최만리의 언행은 당장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무례하기 그지없는 처신입니다.

실록에는 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올렸고, 세종이 그중 맞지 않는 항목을 그 자리에서 또박또박 반박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날 밤 즉시 최만리를 비롯해 반대 상소에 명명된 7인의 학자들은 의금부에 잡혀가 투옥되었죠.

정황상 부제학으로써 총대를 매고 상소를 직접 읽는 '역할'을 했다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우리나라 사극 장르에서 자주 보이는 일종의 클리셰인데, 조선이라는 나라가 군약신강(임금보다 신하들의 세력이 강함)이라 해서 그러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건 갖다 붙일 에 갖다 붙어야죠.

앞서 말했듯이 세종 때는 절대로 군약신강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왕들이 꺼려했던 '경연(임금이 신하들과 유학의 경서에 대해 논의, 질답하는 것. 신하들이 임금의 학식을 평가하고 강의하며 군약신강의 수단중 하나로 삼기도 함)'에서도 세종의 실력은 기라성같은 신하들을 제압할만큼 훌륭했다 합니다.

애초에 군신 공치(임금과 신하의 세력적 균형)라 해도 정말 세종이 신하들의 이야기에 휘둘렸다면 한글 창제도, 훈민정음도, 집현전 학자들의 일사불란한 뒷수습과 연구도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한글은 세종이 주도해 직접 창제했고 거기에 관여하거나 도움을 준 것이 어린 문종과 집현의 학자들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조선을 통틀어도 희대의 석학으로 손색이 없 신숙주나 성삼문은 아예 비중조차 없앴고, 정인지만 가끔 등장시킬 뿐입니다.

이건 고증의 기준으로 비평할 수준이 아니에요.

그냥 역사적 사실을 다 무너뜨리고 낭설을 소재 삼아 만들어진 졸작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러한 비판점들은 성군 세종대왕을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닙니다.

단지 역사적 사실을,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며

낭설로서 왜곡한다는 점이 옳지 못하다는 것이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정설에 휘발유를

부어 불태우고, 그곳을 새빨간 거짓말 덮어버린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한 저의 평점은

6점 만점에 0점입니다.

카메라의 구도나 촬영 기술이 돋보인 부분이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박해일의 뚜렷한 표현력이 훌륭했고,

특히 전미선이 연기한 소헌왕후 등장 씬들은 영화 자체가 가진 다소 지루하고 억지스러운 전개 속에서 제역할을 다해 빛을 발했다 하겠습니다.

송강호의 세종대왕 연기는 영화 <사도> 때와 별다른 차이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임금다운 연기였지만 두드러지는 점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영화의 스탭 배우들, 한글 창제 훈민정음 반포라는 좋은 소재를 조선시대 역사적 사실과 함께 깡그리 먹칠해 빵점짜리 해로운 영화로 만들어 낸 것은 결국 감독의 책임입니다.

감독은 영화계 퇴거를 좀 고민해봐야 돼요.

다시는 한국 영화계에 이런 불쾌하고 해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이만 리뷰 마칩니다.

모두 평안한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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