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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샷 Oct 04. 2022

미 해병대도 질 뻔했던 한국전쟁 최악의 전투

최근 미국의 해병 1사단에서 한국 영사관 주최로 열린 인천상륙작전 72주년 행사에 참여한 한 참전용사는, 행사에서 사용된 사진 속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해당 사진은 눈으로 뒤덮인 산을 배경으로 이동 중인 해병대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참전 용사들을 잊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이 참전 용사가 소속되었던 부대는 미 해병대, 나아가 미군의 전설로 여겨지는 부대 중 하나인 미해병 1사단인데, 이 부대가 참전했던 전투 중 가장 치열하고, 심지어 전멸 위기까지 갔던 전투가 해당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진호 전투라고 한다.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미해병 1사단
장진호로 이동 중인 미해병대

최초의 해병대 중 하나인 1사단

굵직한 전투에 모두 참여했다

미해병 1사단은 미합중국 해병대에서 운영하는 3개의 현역 사단 중 하나이며, 동시에 2사단과 함께 가장 오래된 최고참 사단이다. 다만 미해병대의 역사가 200여 년 정도 된 것을 고려하면, 1942년 2차 세계대전으로 창설된 1사단의 역사 자체는 그렇게 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1사단은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세계사에서 굵직했던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대표적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던 과달카날 전투, 펠렐리우 전투, 오키나와 전투 등에 참전했으며, 이후 한국전쟁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이들이 한국전쟁에서 참전한 대표적인 전투가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장진호 전투이다.

장진호 전투 중인 미해병 1사단
후퇴 중인 미해병1사단

1사단 최악의 전투이자 패배

전략적 승리와 전술적 승리

장진호 전투는 1950년 약 2주에 걸쳐 함경남도 함주군 일대에서 발생한 전투로, UN 연합군과 중공군이 최초로 벌인 정규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UN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자만과 중공군의 작전이 맞물려, 미군이 최초로 포위섬멸전에 빠졌으며, 1사단은 여기에서 중공군에 완전히 포위되었지만, 적진을 돌파하여 성공적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 전투로 1사단 1만 5천 명 중에서 4천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고, 혹독한 날씨로 인한 비전투손실만 7,338명에 다했다고 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미군의 완전한 패배로 보일 수 있지만, 중공군의 피해 역시 막대했다. 이 전투에는 12만 명의 중공군이 투입되었는데, 이 중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동사자를 포함한 3만여 명의 비전투손실이 발생하면서, 약 5만 명의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즉 UN군의 전진을 저지한 중국은 전략적 승리를,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1사단을 포함한 연합군은 전술적 승리를 이룬 것이다.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장진호
화살표로 표시된 병사가 해당 참전용사이다

최근 역사 왜곡 영화 장진호 제작

네티즌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

한편 최근 중국에서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세뇌 교육을 위해 역사 왜곡 영화를 여러 차례 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장진호’이며,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기립 경례를 하는 관객들도 있었으며, 역대 중국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네티즌은 해당 참전 용사에게 경의를 표했다. ‘미군과 국군의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 대한민국은 없었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장진호는 진짜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라는 댓글을 남긴 네티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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