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유행어를 기억하는가? 1등은 항상 주목받고, 2등은 기억에서 잊히기 십상인 현실을 아주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늘 1위와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있다. 사실, 다툰다고 표현하기도 조금 애매하다. 이쯤 되면 어떤 브랜드를 얘기할지 눈치챈 독자들이 다수일 듯하다.
맞다. 현대차와 기아차 얘기다. 항상 ‘형’ 현대차에 판매량으로 밀리던 ‘동생’ 기아차가 올해 완전히 판도를 뒤바꿨다. 절대 넘을 수 없는 산 같았던 현대차 판매량을 뛰어넘고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정확히 어떤 모델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자.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K5는 7만 9518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38% 폭증한 수치다. 우수한 디지털 편의 사양, 동급 최고 수준의 안전 사양, 넉넉한 실내 공간, 가상현실 설계 시스템 등이 인기 몰이를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인기 요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디자인이다. K5가 주요 타깃인 20~40대가 선호하는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신형 K5는 기아차 디자인 언어인 ‘타이거 노즈’를 재해석한 ‘타이거 페이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매끄러운 루프라인을 통해 구현한 패스트백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시장에 판매된 쏘렌토는 총 7만 6,892대나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전년 동기 대비 62.7%나 증가한 기록이다. 특히 전체 판매에서 하이브리드 비중이 28%나 차지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SUV로는 드물게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14년 3세대 출시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신형 쏘렌토는 강인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담은 디자인과 대형 SUV 수준의 공간 활용성, 첨단 안전 및 편의 사양 등을 통해 상품성이 대폭 향상된 모습이다. 외장 디자인은 과감함을 더한 '타이거 노즈'를 적용했다. 후면부는 버티컬 타입 LED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와 레터링 타입 엠블럼, 와이드 범퍼 가니시 등의 대비를 통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모습으로 꾸며졌다.
카니발의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판매량은 5만 7,118대다. 카니발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 경쟁 모델이 딱히 없기 때문에 흔히 대안이 없는 차라고 불린다. RV 차량에 대한 수요가 높은 현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한 기아차가 선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형 카니발은 지난 2014년 3세대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4세대 모델이다. 신형 카니발은 사전계약 하루 만에 2만 3,006대를 기록해 국내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단 시간 및 최다 신기록을 썼다. 지난 10월에는 한 달간 1만 293대를 판매하며 카니발 역사상 국내 전체 차종 중 첫 베스트셀링카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기에 대해 신형 카니발이 미니밴 디자인을 탈피하면서 대형 SUV의 수요까지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신형 카니발은 웅장한 볼륨감을 콘셉트로 전형적인 미니밴에서 벗어나 마치 대형 SUV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특히 전면부는 최근 현대·기아차 신차들의 특징과 같이 라디에이터 그릴의 확장, 헤드램프와의 경계를 없애 웅장한 인상을 구현했다.
K5는 2010년 출시 이후 연간 판매량에서 '국민 세단' 쏘나타에게 패배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쏘나타는 누적 9만 9,503대를 팔았으나, K5는 3만 8,152대를 파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세대 풀체인지 모델 출시를 앞두고 사전계약에 돌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K5는 3일 만에 사전계약 대수 1만 대를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올해 1월에는 판매량 9,533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쏘나타 판매량은 7,379대였는데 이를 훌쩍 넘기면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월간 판매량으로 쏘나타를 앞섰다. 이후에도 K5는 매월 쏘나타 판매량을 앞질렀다. 올해만 해도 이미 판매량이 2만 대 가까이 벌어졌기 때문에 쏘나타의 역전극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차' 쏘나타를 누를 수 있었던 K5만의 경쟁력은 '디자인'에 있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기존 가솔린 모델 이외에도 LPG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구축한 점도 폭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한 비결이 될 수 있겠다.
형제 차량인 기아 쏘렌토에 치이고 한 등급 위인 팰리세이드에 끼이면서 내리막을 걷고 있는 모델이 무엇일까? 현대차 싼타페다. 지난 6월 말, 현대차는 싼타페 부분변경을 출시했다. 하지만 신차효과는커녕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싼타페의 판매량은 5만 2,260대로, 현대차가 기아보다 1.5배 이상 많은 판매 인력을 갖고 있다는 상황을 감안하면 싼타페의 참패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디자인이 주된 문제였다. 소비자들은 현대차의 디자인 정체성인 ‘센슈어스 스포티니스’ 스타일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에 반해 기아차는 요즘 뭇 소비자들 사이에서 디자인에 대한 칭찬이 마를 날이 없다. 쏘렌토 역시 싼타페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게다가 차체도 너비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쏘렌토가 크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쏘렌토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능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채용하는 등 기아차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가 좋아 보인다. 사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공유하는 플랫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차체 등 외적인 요소가 판매량에 영향을 많이 줬을 것이라고 분석된다.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둔 기아차가 내년에는 어떤 모델로 소비자들을 찾아올지 기대되는 시점이다. 지금과 같은 트렌디하고 훌륭한 디자인은 유지하고 품질은 더욱 향상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
차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