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서 자그마치 8년 동안 생산했는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림자도 보지 못한 국산차가 있다. 혹자는 이 차를 두고 유령차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니, 투명 망토라도 쓴 자동차란 말인가? 왜 이 모델을 소비자들에게 코빼기도 비치지 못한 것일까?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판매량이 너무나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 차는 국산차 유일의 왜건형 모델이었다. 다시 말해, 독보적인 시장을 개척하는 모델이었다. 현대차가 아픈 손가락처럼 애지중지 여긴 차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어떤 차인지 눈치챌 독자들이 있을 성싶다. 맞다. 현대차 i40에 대한 얘기다. 국내에서 처참한 판매량을 안고 조용히 단종을 맞은, 비운의 이 차를 살펴보자.
i40는 2011년 9월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모델이다. 출시 당시, 현대차 측에서는 연말까지 약 8,000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으나, 2011년 12월까지의 판매 대수는 1,296대로 기대치 이하의 성적을 거뒀던 전력이 있다.
이후 2013년 i40 판매 대수는 5,825대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2016년 1,291대, 2017년 327대, 2018년 213대로 연간 판매량 감소세를 이어나갔다. 마침내 2019년에 들어서는 상반기 동안 판매 대수가 61대로, 월평균 10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i40는 국산차 유일의 왜건형 모델로 넓은 실내공간과 유럽차 스타일의 주행감각이 특징이다. 특히 적재공간이 싼타페 보다 크고 적재가 용이하다는 점은 레저용 차량 구매자들이 주목할 만했다. i40는 유럽시장을 겨냥해 출시된 D-세그먼트 왜건이다.
일반적으로 세단의 파생모델로 왜건이 출시되는 것과 달리 i40는 왜건 중심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출시도 세단보다 왜건이 먼저였다. 왜건 중에서도 눈에 띄는 후면부 디자인은 왜건 중심의 모델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곤 했다.
현대차는 i40의 판매 부진에 대해 “국내 소비자가 유독 왜건형 차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왜건은 세단의 차체에 트렁크를 트렁크 공간까지 지붕을 연결해서 실내 공간을 넓힌 차량이다. 차체가 길어지면서 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필러도 하나 더 생긴다.
하지만 동시에 세단형 승용차 후방에 트렁크가 마치 ‘꼬리’처럼 둔탁하게 이어져 있어서 굼뜨고 느린 느낌이 들 수 있다. 유럽서 잘나가는 왜건도 국내 판매를 시작하면 판매 부진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현대차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격 경쟁력도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i40는 애초 유럽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하면서 차체보다 주행성능을 강조한 모델이다. 주행성능을 높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가의 부품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i40 최저가는 2019년 기준으로 2,567만 원이다. 같은 중형급 세단 모델인 8세대 신형 쏘나타보다 450만 원 정도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이 지점이 바로 ‘세단보다 승차감이 안 좋은데 비싼 차’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긴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상품성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i40가 외면받는 것과 달리 수입차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보 자동차 코리아가 지난 2019년 3월 국내서 출시한 왜건형 차량인 V60 크로스컨트리는 i40에 20배 넘는 판매고를 올린 바 있다. 똑같은 중형 왜건인 데다 가격도 5,000만 원대이니, 2배 정도 비쌌다. 단순히 가격만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SUV의 인기는 i40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왜건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중형 SUV 싼타페 혹은 쏘렌토가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코나와 팰리세이드까지 가세하면서 i40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그러나 여기에 반전이 숨어있다. i40은 애초에 유럽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차라서 그런지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잘 팔렸던 것이다. I40은 기본 차체가 세단이기 때문에 주행감각이 SUV보다 상대적으로 좋고 넉넉한 트렁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유럽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2007년에 유럽서 최초 판매를 시작한 이래 지난 2019년 3월 말까지 유럽 32개국에서 i시리즈는 300만 대가량이 팔렸다. 같은 기간 i40도 무려 16만 9,902대가량 팔렸으니, 국내에서의 처참한 판매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지난 2018년 페이스리프트를 끝으로 i40은 조용히 단종을 맞았다. 2019년 7월, 조용히 역사 속으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2019년 당시 현대차 공식 홈페이지에 i40가 삭제됐다. 또한, 영업 일선에서는 i40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았다.
i40의 단종에는 낮은 판매로 인한 라인업 유지 비용 상승, 모델 노후화로 인한 상품성 저하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대차는 2015년 DCT 변속기 적용을 포함한 부분변경 이후 매년 연식변경을 통해 i40의 상품성을 높이는 노력을 했으나, 동급 중형차 대비 높은 가격과 작은 차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피해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i40에 대해 살펴봤다. 원래도 국내에선 보기 힘들었지만, 거기에 단종까지 맞았으니 정말 보기 힘들어진 모델이다. “왜건과 같은 다양한 차종을 소개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침”이라며 현대차는 낮은 판매율에도 불구하고 애지중지 꾸준히 i40을 판매했던 바 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리고 판매량 역시 저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소비 트렌드가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평가가 i40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글.
차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