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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ug 15. 2022

<한산> 모두의 힘으로 만든 승리

결말을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분명 김한민 감독은 <한산>을 만들면서 그런 고민을 했었을 테다. 특히나 <명량>처럼, 1700만이라는 대성공을 거둔 작품의 후속 편을 만들면서 말이다. 게다가 <명량>은 작품의 흥행과는 별개로 좋지 않은 부분이 많은 영화였으니까. 이순신, 세종대왕을 다루거나 국뽕 영화를 만들면 반드시 흥행할까? 그건 그만큼 양날의 검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조금만 잘못 다뤄도 욕을 먹기 십상이다. 박해일의 잘못은 아니지만, <한산>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박해일은 이 전에 <나랏말싸미>에서 논란이 된 신미 스님 역을 맡기도 했었다. 심지어 그 영화는 역사왜곡 영화라는 딱지 속에 영화가 망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한산>은 잘 나오기 쉽지 않은 영화였다.



쉽지 않은 싸움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한산>은 <명량>과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만든 영화였다. 이순신 트릴로지를 만들면서, 왜 각기 다른 배우들을 주연으로 택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대첩, 한산도 대첩, 노량해전을 만들 기획을 세우면서, 그저 왜놈들을 때려잡는 국뽕 영화를 만들려고 한건 아니었던것 같다. <명량>의 명량대첩은 이순신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꿨음은 물론, 13척의 배로 일본 함대 130여 척을 상대해 승리했다. 게다가 초반에는 이순신의 배 혼자서 모두 상대해 깨부수고 있었다. 즉 해전 자체가 이순신의 원맨쇼에 가깝다. 그래서 <명량>에서는 이순신의 고뇌에 더 집중하는게 맞았다.


하지만 <한산>의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승리는 아니었다. 조선의 전라 경상수군이 총동원되었고, 심지어 도망쳐온 원균도 한수 거들었다. 그리고 새롭게 정비된 나대용의 거북선 또한 그 몫을 톡톡히 했다. 또 항왜의 첩보도 중요했다. 이렇듯 많은 주변인들이 함께해서 이룬 성과였기에, 이순신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활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이순신은 그 안에서 결정권자로써의 모습을 더 강조했다. 여기에서 <명량>처럼 이순신의 고뇌에 집중해서 그렸다면, '모두의 힘으로 만든 승리'인 한산도대첩의 의의가 퇴색될 수도 있었다.



<한산>이 생각보다 뻔하지 않은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일본 장군 와키자카 야스하루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사실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장수지만, 한국에서는 이순신과 여러 번 붙었고 임진왜란 용인 전투에서 조선 육군에 큰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기도 해서 미디어에서 높게 쳐주는 편이다. 특히 <한산>에서는 바로 직전 용인에서의 대승 후라 와키자카의 사기가 충만해있기도 하다. 이순신의 맞수처럼 묘사되어 만만치 않은 장수로 나오는 점이 이 한산도대첩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와키자카가 '학익진'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학익진이 천하무적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감이 더해진다.



게다가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서 받았던 안 좋은 평을 감안한 듯하다. 신파나 로맨스는 철저히 배제하고, 마지막 전투씬도 훨씬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 한산도대첩을 스크린에 이렇게까지 구현한 것은 <한산>이 처음이라 생각될 정도다. 거북선의 활약도 정말 카타르시스를 준다.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인데도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의와 불의의 싸움

영화 시작에서, 항왜는 이순신에게 묻는다. 이 전쟁은 무엇이냐고. 이순신은 이것이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항왜는, 자신을 방패로 삼아 버리고 간 일본 장수보다, 부하들을 위해서 자신이 앞으로 나서서 싸운 이순신을 높게 평가해 조선군에 투항한다. 그럼 단순하게 생각해서 조선은 선한 쪽이고 일본은 악한 쪽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걸까?


의와 불의는 선과 악이 아니다. 조선에서 말하는 의는 유교에서 말하는 의(義) 사상이다. 맹자는 중국의 전국시대에 사람으로, 유교의 의(義) 사상을 중요시했다. 맹자는 인의(仁義)를 강조하며, 인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의 모습, 의는 인간이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실현 방안이라고 보았다. 군신유의라는 말이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가 있다는 말인데, 임금과 신하는 본래 해야 할 마땅한 도리를 해야 인이 지켜진다. 인이 지켜지지 않고 임금이 신하를 부당하게 해하려 한다면, 그 임금을 막는 것이 바로 신하의 의(義)다.



이러한 유교의 사상으로 보면, 조선과 일본은 각자의 곳에서 나라를 유지하는 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인을 저버리고 조선을 침략했다. 인의 질서가 깨진 것이다. 그래서 그 질서를 위해 의(義)를 가지고 일본을 막아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려 한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든 군은 의(義)병이고, 조선 수군은 의(義)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순신이 말한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섬세한 연출을 한 영화냐고 하면 그렇진 않다. 시작부터 대뜸 역사다큐처럼 자막만으로 상황을 설명한 부분이나,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채로 군회의를 하는 부분은 역사를 잘 모르고 보면 지루해 보일 수 있었다. 특히 나대용은 거북선을 만든 중요한 인물인데 그에 대한 서사가 전혀 없었다. 원균도 이전에 판옥선 수십 척을 수장하고 자기 혼자 도망 온 정황을 보여줬어야 했다. 와키자카의 서사를 키우느라 조선수군의 서사가 조금 지루하게 죽어버린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와키자카의 비참한 모습을 더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살아남아서 미역 먹으며 목숨을 꾸역꾸역 연장하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에서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트릴로지, 이순신 유니버스가 이렇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노량>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흥행할만한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다 흥행하거나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한국인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꿰뚫어 제대로 스크린에 박아 넣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다음의 해전까지 이어질 이순신의 명령이 들리는 듯하다.


"전군, 발포하라!"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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