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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ug 21. 2022

<카터> 190억짜리 액션 포트폴리오

영화를 만들 때는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목표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중간에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관객도 지루해지고 영화는 갈 길을 잃어버린다. 감독 스스로도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병길 감독은 목표가 꽤나 명확한 편이다. 액션 하나만큼은 최고로 멋진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이번에 올라온 정병길 감독의 <카터>는 시작부터 끝까지 원테이크로 이어지며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로 카터를 따라간다. 마치 <하드코어 헨리>나 <익스펜더블>에서 나오던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액션을 영화 전체로 늘려,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공개된 이후에는 수많은 혹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칭찬할 부분은, 출연 배우들과 주원의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이다. 영화 줄거리상 맨몸이 오래 나오는데, 그걸 위해서 만든 주원의 근육질 몸은 그 어느 배우보다도 훌륭하다. 마구 벌크업이 된 것도 아니고, 특수요원의 몸을 제대로 만들었다. 다른 배우들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원테이크처럼 촬영해야 하는 설정이라 콘티가 상당히 복잡했음을 감안한다면, 수많은 리허설을 하고 블루스크린 위에서 극한의 감정표현을 해야 하고, 아무리 CG가 들어간다 한들 액션은 어차피 직접 연기해야 하므로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또, 칭찬할 부분은 페이크 원테이크 액션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페이크 원테이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루하지 않게', '편집점의 완벽한 계산', '그럼에도 멋진 미장센을 담는'이 세 가지다. 영화 <1917> 같은 경우에는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이것을 다루었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와도 맞물려서 원테이크가 그저 기술로만 보인 게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선과도 너무나 잘 연결이 되어 훌륭한 영화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페이크 원테이크 영화는 기술적인 부분과 스토리적인 부분, 미적인 부분을 다 감안해서 콘티를 짜야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정말 즐기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혹평을 받기 이전에, 이 영화가 정병길 감독 같은 '액션 하나로 끈질긴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는 다들 동의하게 될 것이다. 모든 미디어들은 무언가 하나에 몰입한 사람들이 발전시켜왔다. 정병길 감독 역시 헐리우드와 홍콩 액션을 따라가는데 급급했던 한국영화 액션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아니 이미 높였을지도 모르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스토리나 연기가 아니라 바로 정병길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액션 연출'이다. 나는 액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서, B급 액션 영화나 저 연령층 액션 영화도 꽤나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그래서 스토리가 아주 단순하고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해도 '액션만 좋으면 됐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액션 연출'이 완성도있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하 액션 스포일러>




기술적 측면에서의 액션

액션을 카메라에 담을 때 몇 가지 기술적인 방식이 있는데, 먼저 빠른 움직임을 컷이나 화면 흔들림으로 보완한다던지 중요 장면을 슬로우로 표현한다던지 하는 촬영기술이다. 카메라를 핸드헬드로 잡고 흔들리게 표현하면 현장감이 있어 좋지만 액션의 합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와이드 롱테이크로 잡는다면 합은 알아보기 편하지만, 액션의 박진감은 조금 떨어진다.


<카터>는 페이크 원테이크 이기 때문에, 컷으로 액션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박진감과 속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드론 촬영과 스테디 캠, 핸드헬드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드론 카메라는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예전이라면 헬기나 지미집 카메라가 했을 공중 카메라 신을 싼값에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공중에서 멈춰서 자연스럽게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것도 가능하고, 드론으로 날리다 사람이 잡고 핸드헬드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요새 K-POP 뮤직비디오가 많이 쓰는 촬영기법인 모핑 기법(앞과 뒤의 컷을 부드럽게 연결해 마치 하나의 컷처럼 만드는 CG)을 이용해 장면을 연결시켰다. 이러한 컷 연결은 아주 조금만 컷이 어긋나도 이번 컷 움직임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면이 흔들린다. <카터>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화 전체적으로 필요 없는 구간에서도 계속해서 카메라를 끊어짐이 느껴질 정도로 흔든다. 그럼에도 카메라의 연결점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서, 그냥 컷으로 연결하면 될걸 왜 이렇게까지 했나 싶을 정도다.


<카터>는 마치 게임 스테이지를 이동하듯, 액션의 배경이 목욕탕에서 길거리로, 자동차로, 비행기로, 스카이다이빙으로 계속해서 바뀐다. 그러나 그 장면이 CG를 이용한 카메라 연출이라는 게 너무도 티가 나는데, 이 부분은 자세한 제작과정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허술하다. 특히 배우들이 맞아서 날아가거나 스카이다이빙 장면에서 움직이는 부분은 뒤에 배경이 덜 따져서 색이 남아있는 게 보이지 않은가? 스카이다이빙 장면은 실제로 다이빙을 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다이빙 장면을 낙하산 없이 했을 리도 없고, 날아가는 총을 잡았을 리도 없으며 화면 안에서 배우들이 저렇게 마구잡이로 돌아가듯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즉 촬영하고 후반 작업으로 더 박진감 있게 CG처리를 한 것인데, 이게 너무 조악했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평하긴 슬프지만, 20년 전 영화 <화산고>를 보는 느낌이었다. 굳이 화려하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 있다. 배우들이 연기를 못했다거나, 블루스크린위에서 하고 CG로 몽땅 채웠다는 뜻이 아니다. 힘들게 힘들게 촬영을 했겠지만, 그 페이크 원테이크 라는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쓸데 없이 소모된 카메라 움직임과 연출들을 CG로 작업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 간의 액션에서도 이런 부분이 보이지만, 자동차 CG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처참하다. 버스나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실내와 색감이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아서 CG인 티가 너무나 난다. 엉터리로 운전하는 운전대와 빛처리도 일치하지 않는 배경.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옛날 숀 코넬리 주연의 007 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요새 CG 기술은 굉장히 발달해서, 어지간하면 CG라는 걸 알아보기 힘들다. <기생충>의 집 배경, <헤어질 결심>의 바다와 자동차 씬도 CG지만 유리에 비치는 배경까지 자연스럽게 CG로 넣는 마당에 <카터>의 CG는 높아진 관객의 눈에 너무도 낮은 퀄리티였다.


게다가 <카터>에서는 달리는 차나 기차, 헬기의 양쪽이 열려있고, 양쪽에서 덤벼들어 액션을 하는 장면이 몇 번이나 반복된다. 보통 액션 영화에서는 이런 독특한 장면 구성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고 딱 한번 쓴다. 그런데 여기선 이런 같은 구성이 계속 반복되는데, 그것도 잘 만든 것도 아니다. 차가 달리는데 옆에서 다른 차를 붙여 매달리고 뛰어드는 액션은, '이 자동차끼리 제대로 붙어 달릴 수 있을까'에 대한 긴장감이 덧붙여진다. 그런데 여기엔 그게 전혀 없다. 그냥 자동차를 세워서 붙여 촬영하고, 달리는 도로와 바퀴를 CG로 넣은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차가 서로 붙었다 떨어지거나, 차끼리 흔들리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안정적이다. 돼지 트럭에 타고 가며 싸우는 장면은 아예 곡선구간이 없는 일직선 도로로 상정해버렸다. 그런 조악한 세트의 티가 너무나 나다 보니, 그 안에서 엄청나게 열연을 하는 배우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런 같은 액션 구성이 몇번이나 반복되는데, 그게 짧지도 않다. 그러니 이런 현란한 액션 영화가 지루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사적 측면에서의 액션

액션 영화에서 액션은, '그저 싸우는 모습을 멋지게 보여줘야지'가 아니다. 로맨스 영화가 눈빛으로도 사랑을 전달하듯 액션 영화는 그 무술이나 동작, 혹은 연출법에서 캐릭터의 감정선과 스토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그 영화의 액션 장면은, 단순히 '기술적인 액션'을 잘 찍으려는 감독 포트폴리오에 불과하다.


기존 영화에서 액션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영화는 단연 홍콩영화다. 거기에서도 이소룡과 성룡은, 무술에 캐릭터와 감정을 부여하기 시작한 배우들이다. 홍콩영화에서는 무협뿐 아니라 현대물에서도 액션은 빠질 수 없었는데, 그 액션은 대사나 연기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감정과 스토리를 채워주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당시 할리우드 액션은 그런 측면에서 홍콩영화에 크게 뒤처져있었다. 헐리우드 액션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건, 홍콩 반환을 즈음해서 홍콩의 배우, 감독, 무술감독 등이 미국으로 진출하면서다. 특히 <태극권>, <취권> 등을 연출했던 원화평 감독은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으로 헐리우드 액션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거기엔 단순히 멋진 액션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선이 담긴 액션 연출이 있어서 그런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최근에도, 여러 영화에서 홍콩 출신 무술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최근 영화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샹치: 텐 링즈의 전설>이다. <샹치>는 액션으로도 기존 성룡의 스트릿 액션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해서 감탄을 했었는데, 무술감독이 바로 성룡이 발탁한 故 브래드 앨런이었다. 브래드 앨런은 성룡과 <빅타임>에서 같이 출연한 적도 있다. 이 사람은 비록 서양인이지만, 무술을 영화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샹치>에서 샹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싸우다 사랑을 하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멋있는 장면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사랑이 담겨있다.


인도영화 <RRR>에서도, 액션을 그냥 쓰는 법이 없다. 인텔리와 도시를 상징하는 라주 라마와, 자연과 원주민을 상징하는 코마람 빔은 쓰는 무술부터가 다르다. 한쪽은 서양 무술인 권투를 베이스로 하고 한쪽은 인도 전통 무술인 칼라리파야투를 쓴다. 이런 지점부터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카터>에서는 이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카터를 보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는 지점도, 카터가 무슨 액션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투 무술인 격술? 아니면 CIA의 특공무술인 크라브마가? 아니면 한국 택견이나 태권도? 그게 아니면 그냥 살기 위한 몸부림? 이도 저도 아닌 움직임인데 거의 슈퍼맨 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카터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의 감정선에 따라 액션이 바뀌거나, 철저히 훈련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기계 느낌도 없다. 그냥 싸운다. 거기엔 감정도 서사도 없다. 넣으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용과 상관없는 기묘한 동양적인 미장센이 반복된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카터>는 '믿기지 못할 액션으로 채워져 있지만 지루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면 이건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 진출을 위한 190억짜리 액션 포트폴리오가 되어버린다. 특히, 20분짜리 '액션'만 편집해 시사회를 한건 관객을 우롱한 처사다. 그 '부분 액션'만 보고 호평을 한 관객들이, '이 영화 액션 쩔어!'라며 입소문을 내주길 바라고 한 마케팅 아닌가. 영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걸 제작한 사람들도 다 알았다는 얘기다. 그런식으로 시사회를 보고 와서 호평을 하면, 나중에 영화 전체를 보고나서 '당했다'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시사회를 본 당사자들도 당혹스럽지 않을까? 시사회가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건 당연하지만, 애초에 말이 안되는 제목장사, 한철장사같은 느낌의 마케팅이었다.


다른 부분은 다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다른 흥행한 영화들도 다 완벽한 건 아니다. 단점들도 있고, 지적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가 전체적으로 잘 조화가 되면, '그건 됐어'하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한산>을 만든 김한민 감독을 보라. 이순신의 설정이나 일본어 연기 등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말하면서도 다들 재미있게 보고 있지 않은가. 그건 전체적인 완성도가 좋고, 특히 중요한 한산도 대첩 씬이 완벽할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카터 역시 다른 부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액션 부분만큼은 완성도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작비가 적어서인 건지 시간이 적어서인 건지, 조악한 결과물에 몰입이 깨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정병길 감독을 욕하거나,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을 조롱하려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충분히 발전하는 한국영화의 한 단계에 있는 영화다. 재미적인 측면에서도, 앞서 말한 몸 좋은 주원의 나체 액션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만으로도 긴장감 놓치지 않고 볼만하다. 한국 영화계에는 정병길 감독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작할 때의 목표는 분명했겠지만 완성은 그렇지 못했다.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말고 기술로써의 액션뿐 아니라 서사로써의 액션도 갖춰주길 바란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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