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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Sep 04. 2022

<서울대작전> 신나게 달리다 전복된 뉴트로 카체이싱

88년 대한민국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말을 내세운 <서울대작전>이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카레이싱이나 카체이싱을 주 소재로 다룬 한국 영화가 없었기에, 자동차 매니아들과 80년대에 향수가 있는 관객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또 안전운전 불감증이 심한 시대였으므로 '총알택시'등이 한창 난리 칠 때였다. <서울대작전>은 그런 시대상을 감안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신나게 달려가는 올드카

<서울대작전>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씬이 많은데, 그 배경으로 80년대의 서울을 대체로 잘 고증했다. 특히 80년대 '김포공항'과, '대한극장'앞에서 카레이싱을 위해 모이는 장면은 고증에 상당히 신경을 쓴 듯했다. 도심을 달리는 배경으로 넣은 CG들도 조금 티는 나지만 나름 많이 신경을 썼다. 영화적 개연성은 실제로 정확한 고증이나 개연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법하게'만들면 관객들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영화다. 애를 써서 재현을 하려고 노력했고,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올드카를 타고 서울 도심을 질주하는 모습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뉴트로 작전의 실패

배우들의 열연과 잔재미들로 영화의 보는 재미는 준수했지만, <카터>에서 나왔던 문제점이 여기에도 드러났다. 극 초반부에만 힘을 집중해 시청자를 잡은 다음, 뒷부분에서는 힘이 빠지는 만듦새다. 그리고 <카터>가 엄청난 액션을 주 무기로 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액션이었듯이, <서울대작전>에서도 카체이싱과 레트로를 무기로 했지만 바로 그 카체이싱과 레트로의 고증 오류가 발목을 잡았다.


시대극을 만들 때, 반드시 역사적으로 완벽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갈 수도 있고, 실제 역사에 없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울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와 완전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예 대체역사물이라는 느낌을 전해줘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작전>은 역사적 사실도 맞지 않고, 배경이나 패션, 소품들의 오류들이 많은 데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관계를 오해할 수 있게 만들어놨다. 특히 1970~2000년대까지는 한국문화와 역사가 1년이 다르게 확확 바뀌던 때라, 조금만 틀려도 당시 사람들은 날을 세우고 보게 된다.


고증 오류라는 것은 '등장하는 소품이나 대사 등에서 오류가 난 것'을 말한다. 영화는 워낙 대규모의 작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꼼꼼해도 실수가 나기 마련이다. 우선 <서울대작전>에서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패션이 그렇다. 아무리 주인공들이 외국물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 패션은 90년대 오렌지족 패션이다. 특히 크롭탑(배꼽티)은 88년도에는 있지도 않았다.


88년 당시 유행하던 데님 패션. 바지도 힙합라인이 아닌 디스코 바지가 유행했다.


88년이라는 시대가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철저한 고증을 하되 '서울대작전'만의 스타일과 룩을 담아내고자 했던 제작진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를 맞추면서도 화려하고 빈티지한 컬러를 사용해, 레트로 한 감성을 녹여냈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철저한 고증과 수집, 복원 제작 등을 통해 천벌 이상을 준비한 최의영 의상 감독은 “각자의 개성은 살리되, 마치 오륜기처럼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성했다”라고 전해 상계동 슈프림팀의 개성이 녹아있으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어우러질 그들의 패션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스포츠W: '서울대작전' 힙합 더한 그때 그 시절 바이브...'백투더 1988' 영상 공개>


철저한 고증과 수집 복원 제작을 했다고 하기엔, 88년도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힙합 감성을 무리하게 섞은 뉴트로 영화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한국 최초의 랩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의 '안녕'도 90년대에 나왔고 서태지와 듀스는 92년이다. 그나마 이들의 초기는 정통 힙합이 아니라 뉴 잭 스윙이었다. 한국에서도 매니악한 힙합패션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빨라야 90년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공들 팀의 이름도 사이먼디의 힙합 그룹이 떠오르는 '슈프림팀'이며, 음악도 힙합 DJ들에게 맡겨 '80년대를 제대로 재현한'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은 코웃음을 칠만한 정도였다. 오히려, 배경으로 나오는 엑스트라들이 80년대 의상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의도해서 이렇게 설정한 거라면, 감독의 전략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철저한 고증을 했다'라는 말을 빼고 '힙합을 역사 속에 버무려 재탄생시켰다'수준으로 이야기를 해서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했어야 했다. 이 영화의 감성은 리얼 레트로가 아닌, '2020년대가 힙하게 추억하며 소비하는 뉴트로'라고 볼 수 있다.




대체역사와 고증 오류의 사이

자동차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서울대작전>에서 자동차 고증의 오류가 많다고 지적이 있다. 당시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차의 뒷모습이 나온다거나, 휠이 88년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휠이라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튜닝의 개념도 88년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라고 한다. 튜닝이야 외국물을 먹은 주인공들이 말도 안 되게 멋대로 고쳤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시대가 맞지 않는 소품에서 오류가 나면 곤란하다. 카체이싱을 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당연히 자동차 매니아들을 타깃으로 하게 되는데, 위와 같은 오류들은 자동차 매니아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다.


80년대 당시 튜닝카의 수준. 출처: 보배드림.


그리고 하필이면 영화의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상계역 인근'과 마지막 서울공항을 모티브로 한 '남서울공항'은, 내가 88년 당시 상계동 주민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성남공항(서울공항) 인근에 살기 때문에 좀 불편한 지점들이 많았다. 아마 88년 상계역 주변 달동네 철거를 생각해서 초반 상계역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만든 것 같은데, 뒷부분에는 언덕으로 표현되어있지만 초반에 나오는 상계역 주변은 너무 광활한 철거지처럼 보인다. 상계역은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의 계곡으로, 주변이 온통 산과 언덕이다. 그리고 상계동 달동네 철거는 이미 86~87년 사이에 다 끝났고, 올림픽 시작 전에는 주변이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으며 언덕에는 아파트들이 공사가 끝난 시점이었다. 내가 영화의 배경 시점인 88년 8월 상계동 아파트에 입주했으니까. 상계동 철거민의 아픔을 은연중에 살리려는 의도였다면 87년이었어야 했다.


87년도의 상계역 주변, 허물어지고 세워진 87년도 상계동 아파트 건설현장.


또한, 영화에서는 88년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시기인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단순히 '독재정권'을 잡아넣기 위해서 한다고만 이야기한다. 영화 <1987>에 나온 6월 항쟁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는 대통령 직선제가 생긴다. 다들 희망을 가지고 선거에 임했으나, 당시에는 부정선거 금품선거가 횡행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도 길을 가다가 노태우 얼굴이 박힌 줄자와 볼펜 등을 받았다. 결국 전두환의 절친이자 육사 동기인 노태우가 당선이 되고,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다시 시위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노태우는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고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다. 그 둘은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정부 인사들은 아직도 전두환의 세력들이 꽉 잡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노태우는 물대통령이라는 비난도 많았다. 그래서 결국 88년 말,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로 임시귀양보낸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나쁘지 않은 조치라 생각했을 것이다. <서울대작전>에는 그 사이에 벌어지는, 노태우 세력(오정세와 검찰)과 전두환 세력(문소리)의 기싸움을 상상으로 풀어낸 것이다. 물론 당시 노태우의 검찰이 전두환을 수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을리가 만무하지만, 그정도는 대체역사로 넘어갈 수 있다.



[이하 스포일러]



대체역사물이 성립되려면 누구나 다 아는, 정립된 역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비틀었을 때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 또, 역사왜곡이 되지 않으려면 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의 주장을 대체역사라는 식으로 표현해 넣으면 안된다. 그래서 <헌트>나 <RRR>은 대체역사물로 볼 수 있었다. <서울대작전>에서도 전체적으로는 그런 지점이 있었으나, 엔딩에서 백담사에서의 전두환 모습은 연결지점이 애매하다. 실제로 전두환이 추징금 150억만을 내놓고 백담사로 가서 자숙한다는 쇼를 한 것을, '주인공들이 작전에 성공해서 전두환이 아무것도 못하고 돈도 다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놨다. 애초에 그런 모습을 바라고 정치적 쇼를 한 것이었기에 영화 전체적인 맥락과 맞지않는 엔딩이다. 역사를 아무렇게나 바꾸고 고증오류나 역사왜곡이 있다고 해도 '대체역사물'이라는 이름으로 퉁쳐서는 안된다. '대체역사물'에도 선이 있다.




CG의 어설픈 배분

앞서도 말했듯이, 초반 도심 카레이싱 장면은 그나마 볼만했다. 그러나 후반부 카체이싱 중간중간 나오는 자동차 드리프트 CG와 배경CG는 너무 튀었다. 보통 카체이싱 영화에서는 멋진 드리프트 장면은 일부러 실제로 촬영해서 그 박진감을 더한다. <탑건:매버릭>에서만 보더라도, CG가 아닌 실제로 촬영된 추격씬은 엄청난 현장감을 전달해준다. 그러나 <서울대작전>에서는 드리프트 장면에서 뜬금없이 CG에 텍스쳐가 덜 입혀진 듯 자동차의 색이 확 튀면서 CG가 너무 드러났고, 배경도 블러 처리를 일관되게 해 버려서 오히려 평평한 느낌을 주었다.


또 가장 힘을 줬어야 할 남서울공항 활주로 카체이싱은 돈과 시간이 모자라서 급하게 마무리한 티가 너무 났다. 일단 모티브가 된 성남의 서울공항은 공군부대 안에 있는 곳이라, 높은 공항 건물이 있지도 않으며 활주로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뜬금없이 높은 건물이 나오고, 확 트인 끝도 없는 활주로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름을 서울공항이 아닌 '남서울공항'으로 바꾼 모양이지만, 그마저도 CG가 조악한 수준이다. 앞부분에 신경 쓴 만큼만이라도 뒷부분에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대담한 시도와 안일한 선택

<서울대작전>은 중간중간 피식거리는 웃음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초반 등장하는 아랍의 가난한 꼬마 이름이 '만수르'라던가, 전두환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듄>에서 하코넨의 사우나 등장신을 패러디했던가 하는 등 말이다. 마지막 하늘에 등장하는 '불탄 비둘기'도 내심 웃음코드다.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대중들에게 만족할만한 웃음을 전해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비록 송민호의 연기력이나 시나리오의 개연성, 등장인물의 힘 조절 등 여러 가지 면에서도 지적이 있을 순 있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재미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마지막 카체이싱만 화끈하게 뽑아냈어도 이런 평가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OTT의 특성상 초반에 시청자를 잡는 게 중요하다지만, 마무리를 이렇게 하면 결국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영화의 시도는 비교적 대담했으나, 연출상 안일한 선택을 한 셈이다.


한국은 유난히 장르영화가 약하다. 그런 지점에서도 <서울대작전>은 한국에서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비록 그렇게 좋은 평은 받지 못했어도 나름 재미있는 부분이 있고, 88년도 거리를 달리는 가상의 카레이싱과 카체이싱은 흥미를 돋울만하다. 80년대를 산 사람도 아니고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보고 싶다면,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영화다. 한국영화는 아직도 도전하고 성장해가는 중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자동차 영화가 뒤를 잇기를 희망한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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