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Oct 08. 2022

<형사:Duelist> 검이 부딪힌 자리에 남은 사랑

"내가 좋아서 따라오는 거요, 쫓아오는 거요, 아니면... 뒤를 밟는 거요."


이명세 감독은 영화가 주는 모든 영화적 경험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이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그것이 대중성 있는 스토리와 맞물려 흥행도 하고 감독으로서 인정도 받았으나, <형사:Duelist>와 <M>에서는 시적인 구성이 더욱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캐릭터나 배경, 대사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일절 없고, 아름답고 극도로 절제된 미장센만으로 설명한다. 때문에 내용의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아름다움만 남는 화보 영상이나 뮤직비디오와 같다고 느껴지고, 이해를 하게 되면 그 안에 절절하게 남아 목놓아 우는 슬픔을 감춘 채 춤을 추는 검무의 시를 듣게 된다.



대중성 있는 영화는 영화 연출 방식에 있어서 일정한 틀이 있다. 이런 편집을 하면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 저런 표현을 하면 저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등이다. 이명세 감독은 그런 것들을 거부한다. 아예 영화적인 것에서 벗어나 연극적이기도 하고, 코믹한 것 같지만 진지하고 슬프지만 웃긴, 근현대인지 조선 후기인지 알기 힘든 어느 곳. 모든 것이 애매하고 모호해진다. 그것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감독이 이끄는 대로 한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남순이와 슬픈눈

'다모(茶母)'는 차를 내오는 여자라는 뜻으로, 관아의 관비였으며 그중에서 포청의 수사를 돕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수사를 할 때 남자만 있으면 수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모는 애초에 체력심사를 통해 선발했으므로 체력이 좋았고, 쇠도리깨 등을 무기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MBC 드라마 <다모>는 방학기의 만화 <다모 채옥이>를 원작으로, 다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 상상력을 가미해서 재미있게 풀어냈다. <형사:Duelist>는 그 이전 방학기가 그린 <다모 남순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채옥이에 비해 남순이는 더 선머슴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남순이(하지원)는 좌포청에 속한 다모다. 그리고 남순이는 좌포청의 안포교와 함께 가짜 돈을 찍어내는 세력의 뒤를 쫓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다 용의자인 병판 대감의 집에서 슬픈눈(강동원)과 마주한다.


70년대 연재했던 방학기 원작의 <다모 남순이>


슬픈눈은 병판 대감의 밑에 있는 검객이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그 어느 여성보다도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린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검객. 남순이는 다모로써 남자들과 같이 험한 일을 하는데, 원래 성격이 그래서인지 표정이나 행동이 괄괄하고 곱지 않다. 그런 남순이는 슬픈눈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단순히 그의 얼굴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남순은 그를 쫒고 쫒다가 달빛 아래 돌담길에서 슬픈눈과 마주한다. 슬픈눈은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내가 좋아서 따라오는 거요, 쫓아오는 거요, 아니면... 뒤를 밟는 거요."




부딪히는 검기와 사랑

이 돌담길 액션씬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기이하다. 쌍칼을 든 남순이와 큰 칼을 든 슬픈눈은 어딘지 모르게 야릇하고 춤을 추는 것 같다. 흑과 백, 빛과 그림자가 마주하고 스며든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서로의 경계가 검과 검이 맞닿으면서 튀는 불꽃에 부서진다. 음악은 탱고로 바뀌며 둘의 검무는 사랑의 춤이 된다. 둘은 검을 나누었지만, 여기에서 이미 둘은 마음을 나누었다.


검기에 담긴 감정. 그것은 남순이가 병판 대감의 집에 기생으로 잠입했을 때, 슬픈눈이 그 집에 모인 양반 손님들 앞에서 추는 검무에도 나타난다. 그는 검을 들고 병판을 죽으려는 듯하나 그러지 못한다. 그의 눈은 더욱 슬퍼 보인다. 병판 대감과 슬픈눈 사이에 기묘한 애증의 관계가 검기로 그려진다. 잔치 가 있던 날 밤 병판대감과 슬픈눈은 후원에서 검을 나눈다. 검 실력으로 슬픈눈이 한수 위지만, 슬픈눈은 마치 그에게 일부러 져준 듯이 보인다. 병판의 눈빛이나 목소리는 예사롭지가 않다.



수염은 남성성의 상징이다. 허나 성인인데도 슬픈눈은 수염이 전혀 없다. 병판 대감은 조선의 양반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게 턱수염만 기르고 있다. 콧수염은 말끔하게 밀고 턱수염은 반듯하게 기른 그의 모습은 그가 양성애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슬픈눈을 어릴 때부터 키워서 아들로 대하지만, 마치 연인을 대하는 모습같이 보이기도 한다. 슬픈눈이 병판 대감에게, 어릴 적부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일을 당해왔을지 자명하다. 슬픈눈에게 전혀 수염이 없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눈이 그렇게도 죽은 사람처럼 슬픈 것이었나.


남자들 사이에서 선머슴아처럼 살고 있고, 본인의 성격도 털털한 남순이. 남성성은 제거된 체 병판의 애정을 받으며 성을 착취당하는 슬픈눈. 자신의 성과 욕망을 감춘 채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 둘은 검과 검이 부딪히며 서로를 알아봤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둘은 섬기는 주인이 다르고, 해야 할 일이 다르다. 남순이는 슬픈눈을 막고 병판을 잡아야 한다. 사랑은 사랑이고, 검은 검이다.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둘은 사랑에서도 남들처럼 평범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남순이와 슬픈눈은 다시 검을 부딪혀 그제야 사랑을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검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결국 검으로 베어질 것이니. 아름다움은 결국 쉽게 깨어지는 것이니. 다시 어둠 속에서 슬픈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좋아서 따라오는 거요, 쫓아오는 거요, 아니면... 뒤를 밟는 거요."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매거진의 이전글 <9명의 번역가> 창작자의 주변에 맴도는 고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