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슈퍼파워집단 자경단이 진정한 정의를 수호할 수 있나. 마블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히어로는 법 위에 존재하는 자경단이다. 스스로 악이라 생각하면 행동하고 처단한다. 이것이 작은 마을이나 커도 도시 정도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국가의 일이거나 국가 단위의 문제가 되면 쉽지 않다.
<블랙 아담>은 칸다크라는 서아시아라 추정되는 가상 국가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이 지역에는 이터니움이라는 마법의 광물이 있다. 이것을 채취하느라 칸다크의 왕은 노예를 혹사시키고, 그 와중에 블랙 아담이 탄생한다. 영화 속에서 현대에도 칸다크라는 국가는 있지만 이터니움을 캐내기 위해 국제 군사조직인 '인터갱'이 칸다크를 지배해, 칸다크 국민들은 여전히 노예처럼 불행한 삶을 산다. 고대의 왕은 이터니움으로 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왕관을 만들었고, 테스 아담은 그 와중에 노예가 일으킨 혁명에 의해 마법사들에게 선택된 자였다. 마법사들은 그에게 힘을 주고, 마법사 샤잠의 이름을 말하면 마법이 완성된다. "샤잠!"
세계를 통제하려는 빌런, 미국
<블랙 아담>은 기존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 우선 히어로가 등장하는 국가가 미국이 아니라 낙후된 중동국가다. 대부분의 중동국가는 종교적, 경제적으로 미국과 갈등이 있는 국가가 많다. 때문에 영화에선 대부분 중동지역 국가는 악당들이 등장하거나, 빌런이 나오는 곳이다. <아이언맨 1>에서도 토니 스타크가 무기를 팔다가 잡혀간 곳도 중동지역이다. 하지만 <블랙 아담>은 정치적으로 간섭하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초강대국 미국과 지구를 지킨다는 히어로 연합의 허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DC 확장 유니버스에서는 슈퍼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배트맨, 플래시처럼 슈퍼파워를 지닌 히어로 연합, 저스티스 리그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작은, 일종의 자경단 히어로인 호크맨을 주축으로 하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있다. 테스 아담이 깨어나 인터갱들을 마구 죽이고 있자,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칸다크로 출동해 아담을 막으려고 한다. 원래 테스 아담은 빌런으로 창조되어 나중에 데드풀처럼 안티 히어로가 되는 인물이지만, 정의를 담당하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막으려는 테스 아담의 모습은 빌런 답지가 않다. 오히려 그들이 더 빌런 같다.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칸다크는 사실 누가 지배하든 미국에 하등 영향이 없다. 저스티스 리그 정도의 힘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힘을 써준다면, 혹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힘을 썼다면 인터갱을 몰아내고 칸다크인들은 노예처럼 위축되어 살지 않고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어로들은,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칸다크가 '자원의 저주'로부터 고통받는 걸 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들이, 과연 정말 세계를 지키는 것일까?
인터갱을 죽이는 모습에서 칸다크 국민들은 테스 아담을 열렬히 환영한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급조된 팀이기도 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테스 아담은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린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관장하는 A.R.G.U.S. 의 국장 '아만다 윌러'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뒤에 있는 것만 봐도, <블랙 아담>이 미국을 어떻게 그리고 싶어 하는지 잘 보여준다. 즉 이 영화에서는 사실 테스 아담과 적대하는 챔피언 악마 사박이 빌런이 아니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바로 빌런이다. <블랙 아담>은 관점을 변화시키면, 히어로가 빌런이 되고 빌런이 히어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 싸워주는 자
미국은 실제로 자신과 적대하는 나라가, 자신을 지킬 방편으로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매우 견제한다. 우라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오래 끈 이유도 그렇고, 현재도 북한과 핵을 가지고 계속 협상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 <블랙 아담>에서는 '미국이 아닌 나라를 지키는 그 나라의 히어로'를 매우 경계하는 모습이다. 마치 현실에서 핵무기를 만들면 미국이 가서 그걸 뺏어오거나 무력화시키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미국에 '중동의 히어로'는 그 자체가 미국을 위협할 핵무기와 같기 때문이다. 위험하니 미국이 관리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정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들이 테스 아담을 막아서자 시민들의 야유를 받는다. 정의의 이름을 한 히어로라면서 자신들이 고통받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자신들을 지켜주고 대신 싸워주는 히어로가 생기자 그것을 막고 빼앗아가려 한다.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 테스 아담을 히어로라고 지칭하지 않고 챔피언(Champion)이라고 부른다. 한국인은 보통, 경기에서의 승리자를 말할 때 챔피언이라 하기 때문에 어감이 잘 와닿지 않지만, 챔피언은 원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해서 싸우는 대전사를 뜻하는 말이다. 히어로가 주인공이나 이상적인 인물로 추앙을 받는 존재라면 챔피언은 더 희생하는 느낌이 강하고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적다. 고통받고 힘없던 고대 칸다크의 노예들, 현재 칸다크의 국민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자일뿐이다. 그는 어떤 지위나 자신이 우상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신처럼 사람들에게 우상화된 다른 '미국의 히어로'들과 그래서 많이 차별화된다.
<블랙 아담>은 미국의 히어로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지위를 비트는 시도를 하는 새로운 히어로 영화다. 싸울 때 시원시원하게 악당을 죽이는 모습도 좋다. 특히 돌비 시네마에서 감상한다면 전투 시 그 웅장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몇몇 부분 조금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투할 때 '주인공에 대한 걱정 없이 상대방이 불쌍할 정도로 시원하게 싸우는' 모습은 마동석의 영화나, 프로레슬링을 보는 듯이 신나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그중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와 비견되는 '닥터 페이트'는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다만 칸다크가 이집트 이전에 있었다고 말하면서 기원전 2600년 경이라 말하는 것은 오류다. 이집트는 기원전 3100년경 초기 국가가 있었고 도시국가로는 기원전 5300년경에 있었다고하니 말이다. 숫자에 좀 더 인심을 써야했다.
<블랙 아담>은 원래 <아이언맨 1>이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기획된 것이었고, 주연이자 제작자인 드웨인 존슨도 이것이 DC 확장 유니버스의 페이즈 1이라고 말하고 있다. 쿠키영상에도 보이듯, 앞으로 <블랙 아담>이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기대된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