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Nov 14. 2022

가을의 막바지 길

지난 금요일, 이제 곧 비가 온다는 소식에 낙엽이 지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성남의 <신구대 식물원>에 갔다. <신구대 식물원>은 성남에 있는 식물원 중 가장 큰 규모다. 미세먼지가 있다고 나왔지만 사진 찍기에는 해가 쨍쨍하게 떠서 나쁘지 않았다. <신구대 식물원>은 야탑역에서 341번을 타고 20분 남짓 버스를 타고 청계산 방면으로 가면 된다. 그 앞에는 큰 카페와 맛집들도 있어서, 외진 곳인데도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드디어 도착한 식물원. 그러나 굉장히 한산했다. 입장할 때도 2000원을 할인해줬는데, 그 이유인즉슨 지금 가을 전시를 치우느라 별로 볼 게 없다고. 그래도 오늘 못 보면 더 볼 게 없을 것 같아 들어갔다.



입구에는 각종 개구리와 두꺼비상, 곤충 모형들이 선반에 놓여있었다. 이것들이 어떻게 식물원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는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입구 옆에 있는 작은 온실에는 동백꽃이 한창 피기 시작했다. 계단을 돌아 올라간 곳에는 장독이 놓여있어 사진 찍기엔 좋았지만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전시를 하다가 마친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풍향계, 백엽상. 푸른 하늘에 폴폴 거리며 돌아가는 게 반가웠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입구 정원에서 국화 분재를 전시하고 있었다. 소나무 분재는 자주 봤었지만 국화 분재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식물원을 걷다 보면 숲 속 곳곳에서 개구리와 두꺼비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개구리들은 각양각색으로 칠해져서 숲 속에 숨어서 뭔가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들을 찾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주 온실로 들어가는 길에는 측우기와 앙부일구(해시계)가 있었다. 앙부일구의 그림자와 시계를 맞춰보니 정확하게 일치했다. 세종대왕님 만세! 온실로 들어가는 길에는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가을색을 내고 있었다.



온실을 나와 억새밭으로 가는 길에, 길 오른쪽 숲에 개구리 떼들이 모여서 어떤 바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길 반대쪽에서도 저 바위를 바라보는 개구리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뭘 저렇게 재미있게 보는 거지- 하고 길 왼쪽 비탈길을 내려다보는데 깜짝 놀랐다. 저 아래에서부터 개구리들이 이쪽을 향해 잔뜩 모여서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재미를 넘어 약간 섬뜩했다. 얘네들, 식물원 폐장하면 모여서 무슨 의식이라도 하는 것 아니야?



억새밭으로 가는 길은 노란 단풍, 초록 단풍,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이렇게 예쁜 단풍숲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다만 이번 여름에 수해가 있어서 길 입구가 무너져, 그걸 복구하느라 차가 바삐 오가고 있었고 길에도 먼지가 많이 났다.



드디어 도착한 억새밭. 가을에는 억새를 한번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비록 하늘정원처럼 넓은 억새밭은 아니고 아주 작고 소소한 억새밭이지만, 정취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억새밭 한가운데 심어놓은 이팝나무. 이제 막 새로 심은 모양인데, 십수 년 뒤 크게 자라나면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지. 꽤 길게 이어진 식물원 길을 걷다 지쳐, 단풍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주말에 비가 오고 나니, 가로수의 은행나무들도 다 낙엽을 떨구었다. 이제 가을은 막바지로, 시린 겨울을 향해 달려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이 부르는 청량산의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