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의 시간을 뚫고 <아바타>의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했다. 전작은 개봉 당시에도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선보이고 3D 영화의 혁신을 일으킨 영화였고, '아바타'라는 소재 자체가 앞으로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올 메타버스를 체험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만드는 영화마다 대부분 초대박 히트를 쳤고, 대부분은 블록버스터였고, 또 당대의 초 현대식 기술력을 들여 영화를 만들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CG는 실사의 일부였고, CG가 주로 나오는 영화들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그 편견을 딛고 2009년 <아바타>로 세계 흥행 1위를 달성했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감독 인생 마지막을 건 것처럼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 그리고 이미 여러 편을 시리즈로 미리 제작하는 등 <아바타> 세계관을 집대성하려 한다. 처음 그가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충격받아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했는데, 사실 그동안 그의 영화는 터미네이터를 제외하곤 이어지는 세계관이 없는 영화였다. 그리고 터미네이터도 다른 감독이 여러 편 맡아 감독하면서, 세계관도 얽히고 평가도 많이 떨어졌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으로서는 <스타워즈> 같은 커다란 영화적 세계관을 완성하는 데는 <아바타>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의 열정이 통했는지, <아바타: 물의 길>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는 중이다.
아바타 없는 아바타
<아바타>에 나오는 '아바타 Avatar'라는 소재는 전작 리뷰 <아바타> 지배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서 말했듯이, 산스크리트어로 '신의 화신'이라는 뜻이며 천상계의 신이 지상에 내려와 신이 아닌 생물의 형상을 한 것이라는 힌두교 용어다. 힌두교에서는 세상이 악에 물들 때, 세상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세상을 유지하는 신 비슈누가 자신의 아바타라अवतार (아바타)를 보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세상을 창조한 비슈누 신의 10명의 아바타가 유명하다. 맛쓰야(물고기), 쿠르마(거북), 바라하(멧돼지), 나라심하(사자인간), 바마나(난쟁이), 파라슈라마, 라마찬드라, 크리슈나, 붓다, 칼키이다. 힌두교에서는 붓다가 자신들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는 이교도나 다름없었으므로, 붓다는 신을 넘어선 인간이지만 그를 신에게 속한 아바타 중 한 명으로 격하시킨 게 재미있다.
영화 <아바타> 시리즈에 나오는 '아바타'라는 개념은 저렇듯 신이 인간의 몸을 하고 내려오는 모티브를 차용해서, 나비종족과 인간의 DNA를 결합해 만든 키메라에 인간 DNA의 쪽의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과 아바타는 손가락의 개수나 눈썹의 유무 등 외형이 조금 다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 아바타로 사용되는 판도라의 지성체인 나비종족 중 주 부족으로 나오는 오마티카야족의 모습이다. 그들은 숲에 살며, 활을 쏘고 푸른 피부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스토리로 보나 코스튬으로 보나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숲에서 활을 쏘는 푸른 피부의 인물은 위에서 언급한 비슈누의 10명의 아바타 중 '라마찬드라'의 모습과 굉장히 닮아있다. '라마찬드라(라마야나)'는 힌두교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인물이라 여러 군데에서 등장한다. 최근 인도에서 개봉한 <RRR>에서도 라마라주의 모티브가 라마찬드라이다. 아바타라는 소재와 용어를 적극 차용하면서 라마찬드라의 모습으로 만든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라마찬드라의 모습. 나비족과 닮았다.
전작 <아바타>에서는 아바타라는 개념이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였다. 또, 아바타에 몰입한 나머지 인간으로서 자신을 잃어가는 제이크 설리의 모습이나 영화 전반에 걸친 인간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환경친화주의적 모습을 이 개념으로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아바타가 나오지 않는다. 제이크 설리는 에이와를 통한 전령(?)으로 이미 나비족과 동화된 상태고, 아바타와 연결할 수 있는 기계도 부서졌다. 그리고 인간들의 목적이 뭔지 다 알게 되었으니, 아바타를 통해 그들을 회유한다는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이후 시리즈에서는 또 어떻게 아바타가 등장할지는 모르나, 적어도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아바타는 없다. 판도라 행성에 존재하는 각각의 생물들만 있을 뿐이다.
아바타 없는 <아바타>. 비주얼적인 면에서 <아바타: 물의 길>은 굉장히 발전했고 풍성한 볼거리를 전해주지만, 이면에 뭔가 맥 빠진 듯한 이야기에는 그 점도 한몫한다. 아바타라는 소재는 인간과 나비족의 경계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하고 서로의 입장이 대비되는 갈등이 더 잘 느껴지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아바타가 없는 <아바타>에서는 그저 원시 부족과 인간, 또 서로의 안에서 생기는 차별이 전부다. 게다가 15년의 세월이 흐른 제이크 설리는,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인간 해병대였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군법을 어기며 사랑을, 약자를 찾아 싸웠던 그의 모험적인 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부족장으로써,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만 남은 꼰대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이 영화가 <아바타 2>가 아니라 <아바타: 물의 길>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전작을 잇는 후속작이 아니라, 이 뒤에 이어질 기나긴 서사시의 시작이다. 캐릭터도, 갈등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래서 전작에는 아예 없던 설정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개연성보다는 대사로 설명을 끝내버린다. 긴 이야기를 위해 새로 판을 짠 것이다. 그러기에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한 전개를 따르고 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판도라의 타잔과 예수
<아바타: 물의 길>에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전작과 많이 달라졌다.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의 이야기는 <늑대와 춤을><포카혼타스>와 같은 식민지 침략자가 원주민에게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형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아바타: 물의 길>에서 이미 토루크 막토로써 제이크 설리는 나비 - 오마티카야족의 족장이고, 재침략한 지구인들에게 삶의 터전인 숲을 잃고 할렐루야 산맥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게릴라전을 한다. 지구인은 '나비족 완전 토벌'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구인의 새로운 목적은 바로 지구인들의 판도라 행성으로의 이주이다. 살짝 언급되었지만 지구 자체의 상황이 매우 안 좋은 모양이다. 지구인은 언옵타늄을 채굴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한다. 나비족의 게릴라전은 상당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지구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진 못한다.
전작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새로운 부분은 쿼리치 대령의 부활과 그의 아들 마일스(스파이더)다. 쿼리치 대령을 비롯한 해병들은 전작의 최종 전투 직전 자신의 기억을 백업해 놓았고, 전사한 해병들과 대령은 그 백업을 아바타에 주입해 나비족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쿼리치 대령이 죽기 전 이미 판도라 행성에서 아들을 낳았었고, 그 아들은 너무 어려 지구로 귀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판도라 행성에 남기로 한 지구 연구원들과 같이 자랐다.
언듯 이 추가된 설정은 흥미롭지만, 조금 작위적이기도 하다. 아바타에 인간의 기억을 넣은 정도로 자아를 가진 인격체로써 살아날 수 있다면, 왜 이전에는 그 어려운 '아바타'라는 기술을 이용해야만 했는가? 굳이 장애인인 제이크 설리를 판도라까지 부를 필요도 없이 죽은 형의 기억을 백업해놨다가 주입하면 되지 않았을까. '아바타'라는 것이 쓸모가 없어지는 이 설정은 사실 <아바타>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야기 개연성을 흔든다.
쿼리치 대령의 아들인 마일스는 자신이 쿼리치 대령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름이 싫어서 스파이더라는 닉네임을 만들어 제이크 설리의 가족들과 같이 지낸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스파이더의 이야기는 약간 따로 겉도는 느낌이 있는데, 스파이더는 전체적으로 <타잔>의 서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타잔>은 소설 원작이기도 하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소설보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스토리가 더 극적이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스파이더는 나비족 몸이 된 쿼리치 대령에게 납치되지만, 쿼리치 대령 부대들이 나비족처럼 생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들을 제이크 설리 가족들이 숨은 곳으로 데려가게 된다. 애니메이션 <타잔>에서도 타잔은 고릴라를 순수하게 연구하려는 제인과 박사의 마음을 알고 고릴라 서식지로 데려가지만, 결국에는 고릴라를 잡아가려는 클레이튼을 끌어들인 결과를 낳았다. 스파이더의 작중 모습 역시 굉장히 타잔과 흡사하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타잔> 원작을 이야기하자면, 타잔의 아버지는 고릴라들의 왕 커첵에게 죽었었다. 그리고 타잔은 커서 커첵을 죽이고 고릴라들의 왕이 된다. 스파이더는 과연 제이크 설리의 가족들과 어떤 관계가 될 것인가? 타잔의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면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바타: 물의 길>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 키리가 등장한다. 키리는 전작에서 사망했던 오거스틴 박사 역의 시고니 위버가 연기를 맡아서 화제가 되었었다. 키리는 오거스틴 박사가 어째서인지 사망 후에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뇌사상태에서 살려 놓고 아이를 출산한다. 여기서 낳은 아이가 키리다.
키리는 예수의 서사를 따라간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임신이 그렇고, 시종일관 남들과 다르게 혼자 사색에 빠지거나 판도라의 여신인 에이와의 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다. 특히 그녀의 능력은 바다로 와 물을 만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받고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던 것과 비슷하다.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는 성자, 야훼는 성부이고 그 둘은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의 교리로 원래 하나인 존재다. 그렇다면 어찌 보면 예수는 야훼의 아바타인 셈이다. 야훼가 인간의 몸을 빌려 나타난 존재가 예수이므로. 물론, 완벽하게 같다는 건 아니고 개념상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키리의 배역을 굳이 시고니 위버가 담당한 것도 이해가 된다. 엄마와 딸은 곧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고, 에이와의 화신이 곧 키리라고 한다면 에이와와 하나가 된 오거스틴 박사의 혼(정확히 판도라에서 그것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을 빌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고니 위버가 키리역을 맡은 것에는 앞으로 에이와가 키리를 통해 보여줄 본격적인 능력들을 암시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스파이더처럼 키리도 조금 더 나아가 본다면, 예수는 본인의 민족에게 배신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하고자 하는 일을 완성했다. 키리가 예수의 서사를 따라간다면 그녀의 비극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분명 재미있지만 재미가 덜한 이유
<아바타: 물의 길>이 비주얼에 비해 스토리가 빈약하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로는 웅장한 전쟁장면이나 새로운 갈등이 쌓이려면, 앞에 제이크 설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구인의 재침공, 무자비한 살육으로 터전을 옮기는 과정등이 짧은 설명이 아니라 한편을 할애해서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나비족이 된 쿼리치 대령이 쿵 하고 판도라에 발을 디디면서 끝났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어서 빨리 물속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사실 뻔해 보이는 서사구조나, 기존의 명작 혹은 신화에서 따온 것 같은 캐릭터는 그렇게 폄하할 일은 아니다. 당장에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 <탑건: 매버릭>만 보더라도, 사실 스토리는 1편을 그대로 답습해 따라간 것에 불과하며 1편 내용은 베트남 전쟁에 지고 실의에 빠진 미군의 사기를 높일 프로파간다적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관객들은 <탑건: 매버릭>에 열광했을까? 그것은 주인공 캐릭터들의 서사가 간단하지만 아주 개연성 있고 깊이 있는 감정선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 - 매버릭이 가진 아날로그 감성의 힘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영화 안에서, 영화 밖에서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이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스토리가 간단했기에 어마무시한 공중전에 몰입할 수 있기도 했다.
전작 <아바타>에서는 ‘아바타’라는 신기한 SF 테크놀로지와, <아바타> 영화를 만드는 최신 그래픽 기술이 맞물려서 크게 상승효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더 향상된 영화적 기술에 비해 영화 안에서 보이는 감성은 더 구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바타’를 보여주지 않을 거라면, 제이크 설리와 지구의 과학자들이 나비족과 하나가 된 이상 에이와와 판도라를 더욱 연구해서 에이와와 판도라의 생물들이 연결되는 방식에 지구의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점은 보이지 않고, 갑자기 끼어든 설정과 캐릭터에 종족과 가족 간의 차별과 갈등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사실 이럴 거였으면 제목이 ‘아바타’가 아니라 ‘판도라’였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이 갖는 감정의 깊이에 대한 연출이 많이 부족했다. 각 캐릭터들마다 고민이 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느라 그 고민에 대한 장면이나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관객들이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나비 언어가 모국어처럼 들렸다’라는 제이크 설리의 대사를 통해 ‘나비족이 나비언어를 하고 있지만 관객에겐 모국어인 영어로 들리는 영화적 설정’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영화적인 표현은 예전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했던 <13번째 전사>라는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아랍에서 북유럽으로 잡혀가면서, 북유럽 사람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해서 일부러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못 알아듣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 점점 언어를 스스로 터득하고 결국 완전히 이해해 버렸다. 그때 그들의 말이 한 단어씩 영어로 들리다가 완전히 영어로 들리게 되는 장면은 <13번째 전사>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연출이다.
어쨌든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그런 캐릭터의 감정연출이 약했다. 쿼리치 대령은 자신이 혐오하는 나비족이 되었음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제이크 설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해병대처럼 꾸리는데 그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없다. 스파이더 역시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큰 화를 불러일으켰음에도 그다지 고민하는 것도 없고 제이크 설리의 가족들도 너무 그에게 쿨하다. 네이티리가 분노에 차서 스파이더에게 악마처럼 비치는 모습은 훨씬 더 잔혹하고 무섭게 보였어야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네테이얌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네테이얌의 이야기나 감정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서 네테이얌이 죽었을 때 슬픈 이야기지만 엄청나게 슬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폴리네시안을 모티브로 한 멧카이나 족은, 네이티리가 속한 오마티카야 족이 보여주는 친환경 판타지보다 더한 걸 보여준다. 그들이 사는 바닷속을 키리의 연기와 함께 너무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바닷가 부족이라면 물고기를 사냥해 요리해 먹고사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실제 생존적인 부분은 철저히 배제했다. 게다가 고래의 형상을 한 툴쿤과는 연결되고 나서도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일 없이 대등한 소통을 이루는데, 이 점은 오히려 '대화가 통하는 지적 생명체'가 아닌 나머지 생명체는 지적 생명체인 툴쿤과 나비족을 도와주는 소품으로 활용된다는 점이 더 부각된다. 이 역시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라 조금 안타깝다.
비록 스토리텔링에서 깊이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 물의 길>이 보여주는 영화적 성취는 놀라울 정도다. 그 스펙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영화관들은 서둘러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장비를 급하게 갖춰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관객들은 이전에 보았던 판도라의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황홀경에 빠질 수 있고, 전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가족과 차별이야기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영리하게 만들었다. 개봉 후 엄청난 관객몰이를 하고 있으며, 스펙이 스펙인지라 특별 상영관에서 보려는 관객들이 줄을 잇고 있어 극장 수익은 훨씬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아바타> 시리즈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제임스 카메론이 바라던 대로 <스타워즈>처럼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는 전설의 시리즈가 될 수 있을까. <아바타>는 이미 3편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스타워즈>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터미네이터>부터 <타이타닉>까지, 그의 모든 영화가 이 안에 녹아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당신은 제임스 카메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