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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Dec 29. 2022

<다산, 어른의 하루> 일력이 내 뼈를 때린다

다산 정약용이라 하면 18세기 대표적인 실학자지만, 나에게 다산이라는 이름은 소풍이나 글짓기, 미술대회를 여는 장소이기도 했다. 남양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마다 팔당댐 근처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에서 '다산 문화재'가 열렸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그곳에서 대회를 마친 후, 글짓기에 대표로 나갔던 친구와 둘이 걷다가 길가에 허름한 담벼락 기왓장에 가지고 왔던 판화 재료, 연필, 원고지 등을 같이 넣어두고 '우리가 나중에 유명해지면 찾으러 오자'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 찾으러 간 적은 없다. 아마 재개발되어서 다 무너졌을지도.


또한 다산 정약용 생가 앞 두물머리 근처는 별을 보기에도 좋다. 1997년 수능 전 주, 형과 같이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러 갔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별똥별을 하룻밤에 몇 개나 보았다.


지금은 남양주 도농역 근처에 다산 신도시가 생겼지만, 여긴 사실 다산 정약용과는 별 상관없는 지명이라 아쉽다. 거기는 먹골배를 재배하던 과수원이 가득한 곳이었고 다산 정약용 생가는 팔당댐 옆이니까 먹골 신도시쯤으로 하면 좋았을 테다. 도농역 근처는 다산하고 차로 몇십 분을 가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름을 왜 그리 지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각설하고, 하루마다 다산 정약용의 글을 보여준다길래 구입한 일력. 사실 일력이라는 건 나 같은 귀차니즘에겐 좋지 않은 물건이다. 매일매일 뒤집어줘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어른이 된 이후에는 누군가 나에게 어른의 말을 전하는 이가 없어서, 오래전 돌아가신 어른이지만 다산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 월마다 상징적인 글귀가 적혀있고, 날마다 새로운 글귀가 작은 동양화 삽화와 함께 쓰여 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첫 장부터 내 뼈를 때린다. 꿈은 기다리지 말고 실천하라. 다산 선생님, 여기 왔다 가셨어요? 혹시나 하여 다음 장도 넘겨보니 다음은 더 엄하다. 내 삶을 어느 한 어른이 꿰뚫어 보고 야단맞는 느낌이다.


그래, 힘차게 내디뎠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돌아섰던 것들이 종종 있지 않았던가. 내가 해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때 마지막 한걸음이 완성시킨 일이 많았다.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자. 마지막 한걸음을 걷기 전까지.


매일매일 일력을 뒤집으며, 다산 선생님에게 혼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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